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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말들 :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공감하기 위하여>는 19만 구독자를 보유한 북튜브 '겨울서점'의 주인장 김겨울의 에세이집이다. 김겨울은 스스로를 '글과 음악 사이, 과학과 인문학 사이, 유튜브와 책 사이에 서서 세계의 넓음을 기뻐하는 사람'이라 칭한다.  

긴 영상을 끈기 있게 보지 못하는 편이라 몇 번씩 들르기만 했던 유튜브 채널이었는데, 최근 올라온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 카인드>를 리뷰하는 영상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끝까지 봐버렸다. 

"어쩌면 저렇게 두껍고 어려운 책들을 쉽고 알차게 요약 정리 및 전달할 수 있을까?" 

두꺼운 책들을 읽은 후기를 전하는 그의 모습에 기쁨이 가득해 보여서 이 사람에게 책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이 생겼었는데, 마침 그의 이름으로 내놓아진 책들이 많기에 방학의 힘을 빌려 책과 독서, 그리고 글쓰기 대한 김겨울의 생각을 읽어보고자 했다. 

<책의 말들>은 그중에 첫 번째로 읽은 책인데, 저자가 읽은 100권가량의 책 가운데서 뽑은 문장과, 문장에서 비롯된 저자의 생각, 사유의 흔적이 함께 담겨있다. 

평소 책과 독서, 글쓰기에 대한 나의 생각과 다른 면도 없잖아 있지만 그것은 각자의 생각일 뿐이고, 김겨울의 글을 읽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이 다르기에 다음 책이 더욱 기다려지기도 한다. 

여기에는 그의 글 중 가장 많은 공감과 내적 탄성을 불러일으킨 몇몇 부분을 옮기고 싶다. 
 
"멍청한 짓을 저지른 후 그걸 수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글쓰기가 멍청한 짓을 무마해 주어서가 아니라 내가 멍청한 짓을 했다는 걸 받아들이게 해 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노트는 자신의 한심함과 부족함, 답답함, 슬픔, 종내는 그럼에도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한다는 체념으로 가득 찬다. 노트 속에서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둡다. 그러나 빽빽이 채워진 노트는 세상에 대한 그 빽빽한 미련으로 오히려 세상과 자신을 가장 사랑했다는 증거, 더 나아가 사랑하고 싶지 않았으나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열렬한 러브 스토리의 증거로 남는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을 미워하면서 사랑하고, 세상을 미워하면서 사랑한다."  

나의 독서 노트에도 김겨울이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감정들이 많이 적혀있다. 다시 들추어보면 이불킥을 선사하는 글들이지만, 그 모든 순간이 지금 존재하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기에 소중히 간직하고픈 것들이기도 하다. 절대로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글은 멍청한 짓을 수습해주는 가장 좋은 도구라고 말한다. 우리가 읽으며 공감하고 눈물 흘리고, 때로는 분노하는 작품들은 어쩌면 누군가의 멍청함을 수습하는 도구이지 않을까. 우리는 어떤 이의 멍청한 과거의 흔적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슬프면서도 즐겁다. 
 
"어린 시절에는 뭘 읽는지도 모르고 읽었던 책이 너무나 많고, 그렇게 읽은 책이 없었다면, 그리고 뭔지도 모르고 신나서 떠든 그 이야기들을 친절히 들어 준 어른들이 없었다면 나는 무척 위축되어 아마 책에 흥미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어린이들이 실컷 읽고 실컷 떠들도록 두어야 한다." - p.89

"유년기의 책장은 우리 집에 있지 않다. 유년기의 책장은 남의 집, 학급문고, 도서실, 도서관, 만화방 등에 산재해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 주는 책이 나의 책이 되고 너의 책이 된다." - p.103

어린 시절의 책 읽기에 대한 김겨울의 생각은 두 페이지에 걸쳐 남겨졌지만 맥을 나란히 한다. 어떤 책이든 읽는 것이 중요하고, 재밌게 독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책과 친해지는 습관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독서 습관을 결정한다는 것. 따라서 좋은 책만 읽으라 강요하는 것보다는 어떤 책이든 읽게 하고, 아이들이 읽는 책에 관심을 가져주는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 존중해주고 대화해주는 대상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19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의 탄생 또한 어린 김겨울이 가졌던 책에 대한 좋은 추억들이 쌓인 결과일 것이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책을 읽기만 하던 아이가 19만 구독자에게 책을 전하는 북튜버가 되었다는 사실이 곧 '아이들에겐 재밌게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반증한다.

그럼에도 고리타분하게 '00대학교 추천 필독서 목록' 등을 들이대며 '좋은 책'만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어른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애통할 따름이다. 아이들은 고사하고 성인의 독서량도 현저하게 떨어지는 시점에 우리는 책을 읽는 아이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박수쳐 줘야 하는 것 아닐까? 

김겨울은 나오는 말을 통해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바라는 과정이 독서로 말미암아 이뤄진다고 말하고, 그것은 곧 이 세계의 무언가를 부정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이 세계의 무언가를 부정하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 칭하는 그의 말처럼 독서는 분명 내가 존재한 현재의 어떤 것을 부정하고,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바라는 것을 가능케 한다.

실제로 해리포터 시리즈에 빠져지냈던 초등학교 시절, 언젠가 11살 생일 아침에 우리 집 문밖에 해그리드가 찾아와 나를 호그와트로 데려가진 않을까 생각했으니 말이다. 호그와트를 기대하는 나이는 훌쩍 지나 이제는 현실을 외면하기만 할 수는 없는 처지에 놓여있지만, 삶에서 진행되는 꾸준한 독서는 분명 단조로운 일상 속에 파격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좋은 작가의 좋은 글을 읽게 되어 기쁘다. 김겨울의 다른 책들이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기자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책의 말들 -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공감하기 위하여

김겨울 (지은이), 유유(2021)


태그:#김겨울, #책의말들, #독서, #독서의묘미,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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