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1 13:04최종 업데이트 21.07.0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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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에서 온 다큐멘터리팀과 인터뷰에서 두 번의 자살시도 사실을 털어놓았다. ⓒ unsplash

  
얼마 전 한국 성소수자들의 삶을 듣고 싶다며 독일에서 온 다큐멘터리팀과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되었고, 질문지는 사전에 공유 받지 않았다(이들은 그쪽이 더 생생한 반응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고, 나도 그 방식이 더 재밌을 거 같아 그러자고 했다, 분명한 건 그건 내 선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질문이 전달되면 나는 아주 직설적인 답을 했다.

물론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이야기는 대부분 예상한 수순으로 흘러갔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은 미리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인터뷰 진행자는 나에게 한국이 징병제 국가임을 언급하며 동성애자인 내게 군대가 힘든 공간은 아니었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네, 너무 폐쇄적이라 질식할 것 같은 곳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두 번의 자살시도를 했고, 사람들은 그런 저를 멸시하거나 혹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어요."

진행자의 눈빛에서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 일은 지나간 과거일 뿐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고 답했다. 딱히 숨길 경험도 아니라고 말했다. 이후 인터뷰는 화기애애하고 편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고, 마지막에 우리는 포옹을 나누며 헤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일은 내게 궁금증을 남기기도 했다. 군대에서의 자살 시도는 분명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전역 때 나는 그 경험을 평생을 지고가야 할 멍울처럼 여겼다.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그 일은 그저 과거, 말을 해도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어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를 회복시킨 '우울'에 대한 이야기

우울증과 자살시도는 심각한 일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희박한 일도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나는 페미니스트 공동체와 성소수자 공동체에 발을 디디고 있고, 특히 후자의 경우 사회적으로 만연한 차별이나 혹은 사적 관계에서 경험하는 혐오로 인해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이나 친구 관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하는 직장에서 혐오를 마주할 때 이를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당사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공동체에 소속된 성소수자들에게 다른 구성원들의 우울과 자살시도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날 누군가 긴히 할 말이 있다며 따로 만나는 약속을 잡는다? 높은 확률로 그 사람들은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지만, 지금은 상담과 약의 힘으로 잘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곤 한다. 사실 정도만 다를 뿐 성소수자 공동체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상황도 비슷하다. 한국은 정말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아닌가. 이는 자살을 시도한 사람도 매우 많다는 뜻이다. 

때문에 나는 SNS 등을 통해 간접적이든 아니면 직접적인 고백을 통해서든 간에 주변 사람들이 우울을 겪고 죽음을 생각했던 일들을 자주 듣곤 했다. 때로는 내 주변에 상담을 받고 약을 먹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런 환경이 이미 자살시도를 경험한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겪은 일이 있으니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공감하기가 쉽다. 그리고 같은 일을 경험한 이들이 주변에 많을수록 내 상황이 특수하지 않은 게 되어버리기도 한다. 특수하지 않은 건 특별하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경험에 몰입하지 않게 되었고 멀리서 바라보는 게 가능해졌다.

고통이 남긴 교훈
 

자살 시도라는 낙인을 나는 스스로도 모르게 내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경험을 말하기 힘들어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신뢰와 용기 속에서 점진적으로 회복해 나가고 있었다. ⓒ unsplash


물론 나는 내 경험을 '무의미한 날벼락' 정도로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자살 시도 이후에도 군대에 남았고, 그건 극도의 소수가 되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내가 나약하고 쓸모가 없으며 당장 죽을지도 모르니 건드리지는 않지만 경멸은 해도 괜찮은 대상이라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팔자가 사납고 불쌍한 존재라 여겼지만 도움을 주고 싶어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해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는 다시 같은 '사고'를 저지르지 않게 잘 관리해야 할 위험 요소였다. 거의 1년이 넘는 시간을 그런 공간에서 살았다.

이는 군대를 전역한 이후의 상황과 극단적으로 상이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한국여성민우회에 가입해 회원활동을 시작했다. 페미니스트 공동체는 여성주의적 가치에 동의하고 이를 실천한다면 내가 누구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자살을 시도했건 동성애자건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공동체 안에서 다시금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일상을 회복해나갔다.

인생의 커다랗지만 성격은 판이했던 이 두 시기는 내게 이해받고 존중받을 어떠한 자원도 없는 환경에서 극도의 소수자가 되는 게 어떤 일인지를 알려주었다. 단순히 '힘들겠다'는 정도의 인식이 아니라 아예 피부로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도 내가 내 경험에서 멀어지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회복할 수 있는 소통 방식을 찾아서
      
우울과 자살시도는 쉽게 말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낙인은 분명히 존재한다. '나약한 이들·정신 나간 이들이나 저지르는 비상식적인 일, 그렇기에 함부로 꺼내선 안 되는 수치스러운 일'과 같은 것. 이런 낙인을 나는 스스로도 모르게 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경험을 말하기를 힘들어 했다. 이 말은 누군가 나에게 같은 경험을 이야기 했을 때, 그 행동에는 나를 향한 신뢰가 담겨있음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나는 그 신뢰와 용기 속에서 나도 모르게 점진적으로 회복해 나가고 있었다.

자살·우울과 같은 이야기는 꺼내기도 듣기도 쉬운 일이 아닌 게 맞다. 그래서 일상을 살아가는 내내 그 이야기만 할 수는 없다. 고백은 용기 있는 일이지만 청취가 늘 의무는 아니다. 만약 그런 경험을 듣는 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이라면 이를 감내할 필요까지는 없다. 자신을 보호하는 게 먼저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꺼낸다면, 비록 당황스러울 수는 있어도 상대방이 보인 용기와 신뢰에 고마움을 표해보는 게 어떨까. 왜냐하면 그런 식의 듣기는 상대방의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만, 내가 이미 겪었거나 혹은 언젠가 경험할지 모르는 고통에서 빠져 나오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고통을 가운데에 놓은 소통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때로 양자 모두에게 고통이고 관계를 망가뜨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회복할 힘을 전달할 수 있는, 고통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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