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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전 3차례 북미합의, 미국 측 사정으로 파기돼

1994년 제네바 북미합의는 NPT 체제 내의 다자회담이 아니라 북미 양자 직접협상이었다. 제네바 합의는 미국 하원이 관련된 예산의 지출을 거부하여 파기되었다.
2000년 '조미공동콤뮤니케' 역시 양자 직접협상이었다.

그런데 공화당 부시정부가 민주당 클린턴정부의 합의인 '조미공동콤뮤니케'를 파기하였다. 9.11테러 이후 분풀이 대상을 찾던 부시정부는 9.11테러와 관련이 없는 북까지 '깡패국가(Rogue State)'로 지목하였기 때문이다.

북미협상이 중단된 사이에 북이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자, 미국은 마지못해 2005년 6자회담에서 9.19선언에 합의하였다. 6자회담은 양자 직접회담을 꺼려하는 미국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었다.

미국은 9.19선언 직후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예치된 북의 자금에 추가 제재를 하는 등 협상을 파기하였다. 이에 북이 2006년 연달아 중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발사 시험과 최초의 원폭 실험으로 맞대응하였다.

전략적 인내 끝낸 트럼프, 국내 여론 때문에 최종 합의 연기

미국은 북의 공세에 BDA에 동결된 북의 자금을 풀어주었지만 추가적인 대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대화도, 전쟁도 할 수 없었던 미국은 트럼프정부 때까지 10년 동안 북과 양자 직접대화를 거부하였다.

미국은 유엔 등을 통해 북이 NPT 체제로 복귀하도록 압박하였다. 미국은 자신의 대북정책이 수렁에 빠진 상태를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고 합리화하였지만, 북한은 그 사이에 핵무기를 거의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5월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란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2018.5.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5월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란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2018.5.8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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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싱가포르선언에 합의하였지만 2019년 하노이 회담을 결렬시켰다. 그 이유는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뮬러 특검의 조사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에서 탄핵의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의회의 비판을 수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오바마와 트럼프 사이에서 협상 방식 고민

또한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레이스를 앞두고 깡패국가의 정당성을 합리화시켜 준다는 미국 내 주류 여론을 고려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기몰이 쇼는 하되 도장은 찍지 않는 드라마를 보여준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이후 북미정상회담을 재개할 속셈이었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가 결국 북에게 핵무기를 완성할 시간을 주었다는 민주당 내 비판을 그 당시 부통령으로서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트럼프가 협상의 전시효과를 보여준 상태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북미협상을 거부할 경우 자신에 대한 외교 역량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바이든 행정부에게 남은 문제는 북의 핵무기 완성을 부인하고 다자간 비핵화 협상 구도를 계속 고집하느냐, 아니면 일부 대북 전문가의 충고처럼 북의 핵무기 완성을 사실상 인정하고 핵확산 저지 등 양자간 군축 협상 구도를 택하느냐이다.

바이든, 핵동결을 최소 목표로 미국 우위의 다자비핵화 대화 시도
 
지난 2015년 9월, 시진핑 중국 주석(왼쪽)과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메릴랜드 주 앤드류스 공군 기지에 도착해 활주로 위를 걷는 모습. (AP/ Carolyn Kaster)
 지난 2015년 9월, 시진핑 중국 주석(왼쪽)과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메릴랜드 주 앤드류스 공군 기지에 도착해 활주로 위를 걷는 모습. (AP/ Carolyn Kaster)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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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는 국내 여론이 악화될 수 있는 북의 핵무기 관련 시험을 계속해서 중단시키려면 협상 모드를 유지해야 한다. 미국의 협상 목표는 북의 핵무기 완성을 부정하고 NPT 체제로 북을 복귀시켜 북의 핵무기 완성을 늦추는 것이다.

즉 미국이 북과 선호하는 협상구도는, 다자 구도의 비핵화 논의이다. 다자구도에선 오로지 다자간의 공통사항 즉 비핵화만 논의된다. 따라서 미국이 북의 체제를 인정할 필요도 없고 다자합의와 달리 미국 독자의 제재도 유지할 수 있다.

다자구도에선 동맹을 앞세워 북과 대리전을 치르게 할 수 있다. 심지어 북이 핵 강대국이 되는 것에 부담스러워 하는 중러의 협조도 얻을 수 있다. 그런 협상이 주변국이 참여했던 2005년의 6자회담 방식이나 2015년 이란 핵합의 방식이다.

바이든, 북미 직접대화 원하는 북에게 이란식의 절충안 제시 가능

다만 이란 핵합의는 미국과 양자 직접대화를 통해 관계를 정상화하고자 하는 이란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즉 내용과 과정은 양자대화이지만 형식과 결론은 다자대화이다. UN 상임이사국과 독일 및 유럽 연합은 미국과 이란이 비밀협상을 통해 마련한 이란 비핵화 방안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미국과 이란의 양자 직접대화의 결과를 다자협상으로 포장한 것이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이다. 따라서 미국은 다자대화를 북에 요구하고 북이 거절하면 이란핵합의와 같은 절충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북은 원래 미국에게 종전조약과 관계정상화 및 체제보장을 목적으로 양자 직접대화를 요구해왔다. 그 연장선에서 북은 핵 개발을 미국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지렛대로 삼았다. 그런데 미국이 대화를 거부하는 사이에 북이 핵무기를 거의 완성한 결과가 되었다.

북, 미국의 보상에 따라 비핵화 혹은 군축을 제기하는 모호 전술 구사

북은 핵무기 완성 이후 다자비핵화 논의구조인 NPT 체제로 돌아 갈 이유가 없다. 북은 미국으로부터 핵무장국가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중러와 같이 대등한 지위에서 북미정상회담과 같은 양자회담을 선호한다.

또한 북은 미국의 태도에 따라 핵무장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모호한 전술을 채택하며 미국의 전략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즉 북은 미국이 근본적인 양보를 하면 비핵화에 동의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핵무장의 주권을 행사하여 핵 군축 협상에만 응한다는 것이다. 즉 북은 비핵화와 군축 양자 모두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협상의 로드맵은 북미 직접 포괄협상을 통해 최고 목표에 합의하고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상호 상응조치들을 단계별로 이행하는 것이다. 제네바협상, 조미공동콤뮤니케, 6자회담, 북미정상회담에서 이런 로드맵은 기정사실화됐다.

북의 판정승?

그간의 북미 외교 전쟁을 보면 북이 판정승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내용적으로 북은 외교전을 병행하면서 핵 무력을 사실상 완성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총비서(자료사진)
 김정은 총비서(자료사진)
ⓒ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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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북과 종전체제, 관계정상화를 논의할 필요가 없는 다자협상을 주장하였지만 결국은 북의 주장대로 최고위급 양자 직접대화인 북미정상회담을 세 차례나 허용하였다. 한국과 일본 같은 동맹과 중러를 지렛대로 삼는다는 미국의 전략이  사실상실패한 것이다.

미국은 원래 한반도 분단체제를 유지하면서 긴장만 관리하는 실무협상을 선호했다. 하지만 미국은 정상회담 의제에서 보듯이 결국 북의 주장대로 종전조약, 관계정상화는 물론 주한미군 문제까지 논의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미국은 지금껏 북의 선비핵화 조치를 대화의 요구사항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미 6자회담부터 북은 쌍방이 대등한 조치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관철시켰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뒤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등을 저술하였습니다.


태그:#북미정상회담, #북핵, #바이든, #이란핵합의,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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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12년간 기관지위원회와 정책연구소에서 일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연방제 통일과 새로운 공화국』,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 마르크스의 실천과 이론』 등의 저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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