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6 07:06최종 업데이트 21.07.0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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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가짜뉴스와 프로보커터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종 사회 이슈부터 정치담론에 이르기까지, 왜곡과 소란을 일으키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맹위를 떨친 가짜뉴스와 프로보커터들의 활동을 조명하고, 이에 대한 각 나라의 고민과 대안을 소개합니다. 이와 함께 이 현상을 역사적으로 톺아봅니다.[편집자말]
 

소르본 대학 도서관. 14세기에 전 유럽에서 가장 많은 도서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장서가 고작 1300여 권이었습니다. ⓒ Vysotsky

 
정보의 역사는 크게 두 시대로 나뉩니다. '당신 이전' 시대와 '당신 이후' 시대.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태어난 후 생산된 정보의 양이 그 전까지 인류가 생산한 모든 정보를 합한 것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14세기 초, 유럽 최대의 도서관은 파리의 소르본대학 도서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도서관에 소장된 도서 수는 고작 1300여 권이었습니다. 이는 지금 전 세계에서 하루 출간되는 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애서가 중에 이 정도의 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디지털 정보입니다. 이제 훨씬 많은 정보들이 디지털 문서나 영상 형태로 탄생하니까요.


정보생산의 주체도 바뀌었습니다. 이제 평범한 사람들이 전문가들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생산하니까요. 실감나지 않는다면, 인터넷에서 영화, 책, 전자제품, 식당 등에 대한 평을 검색해 보시면 됩니다. 십중팔구 일반인이 올린 글이나 영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탓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이미 2012년에 "(전문가가 주도하는) 전통적 마케팅은 종말을 고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시간에도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트위터, 카톡, 블로그, 위키, 팟캐스트를 통해 쉴 새 없이 정보가 쏟아져 나옵니다. 2021년 현재, 하루에 트위터에 올라오는 글이 5억 개가 넘고, 페이스북에 하루 3억 5천만 장의 사진이 올라오며, 유튜브에는 매일같이 72만 시간의 영상이 업로드 됩니다. 72만 시간이 얼마나 긴지 상상이 안 되지요? 잠도 안자고 24시간을 봐도 83년이 걸리는 분량입니다. 한국인 기대수명이 83년이 조금 넘으니, 유튜브 하루치만 봐도 한 평생이 걸리겠네요.

이처럼 정보량과 생산주체의 변화는 정보에 관한 논의 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과거에 모든 이들의 관심사는 '어떻게 정보를 손에 넣느냐'였습니다. 정보가 귀하던 시절에는 정보 획득이 곧 힘과 돈의 원천이었기 때문이지요. 귀족이 읽고 쓰는 능력을 독점했던 까닭도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현대에 들어 이 논의는 '정보민주주의', 즉 '어떻게 평등하게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하느냐'로 바뀌었습니다.
 

정보는 더 이상 드물고 값진 희소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 문제지요. ⓒ elements.envato

 
하지만 정보는 더 이상 드물고 값진 희소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 문제지요. 따라서 이제 핵심 사안은 '정보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지킬 것인가'입니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는 사람을 압도하기 때문에 정보를 선택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제 누구나 정보를 생산해서 유포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내용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허위정보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해당 주제에 대해 지식이 부족하거나 단순한 실수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고, 더러는 정치적, 상업적 이익을 위해 일부러 사실을 비틀거나 존재하지도 않는 거짓을 꾸미기도 하지요. 이런 거짓 정보들이 그럴듯한 뉴스 형태로 유통되는 것을 '가짜뉴스'라고 부르지요. 사실 거짓 정보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인류가 소통하기 시작한 이래 줄곧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최근 들어 논란이 되는 것일까요? 가짜뉴스는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사람들은 어떻게 여기에 속아 넘어가는 것일까요?

'팩트체크'는 가짜뉴스를 이길 수 있을까

저는 디지털 매체를 연구하는 커뮤니케이션학자입니다. 사람들은 '정보' 하면, 흔히 사실을 알려주는 실용적 정보를 떠올립니다. 학자들은 이것을 ('깨닫게 한다'는 의미에서) '인지적(cognitive) 정보'라고 부르는데, 정보는 그 밖에도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기쁨, 슬픔, 분노 등의 느낌을 전하는 '감정적(emotional) 정보'가 있고, 아름다움, 추함, 완결성 등에 대한 '미학적(aesthetic) 정보'가 있으며, 옳고 그름의 가치관에 대한 '도덕적(moral) 정보'도 있습니다. 정보는 흔히 이 네 가지가 혼합된 형태로 유포됩니다.

정치뉴스를 예로 들어볼까요? 먼저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을 한 명 떠올려 주십시오. 자, 방금 속보가 떴습니다. 그가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되었다고 합니다. 이 보도를 통해 독자는 사건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동시에(인지), 정치인이나 검찰의 행위를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게 되며(도덕), 그 결과 분노하거나 환호하게 되지요(감정). 여기서 정보가 의미와 효과를 발생시키는 데 있어 수용자의 입장과 역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황우석 줄기세포 사건을 거치며 한국에 널리 알려진 심리학 용어입니다. 사진은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조작과 관련해 대국민사과와 함께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히는 동안 동행한 황 교수팀의 한 학생이 울먹이고 있는 장면. 2005.12.23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황우석 줄기세포 사건과 심형래 <디워> 사태를 거치며 한국에 널리 알려진 심리학 용어이지요. 사람들은 이미 습득한 지식과 가치관의 틀에 맞춰 세상을 바라보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존의 관점과 충돌하는 정보를 접할 때, 두 가지 선택안이 있습니다. 하나는 두 정보를 면밀히 저울질한 후 더 타당해 보이는 입장을 채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새로운 정보를 무시하거나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첫 번째 대안이 더 합리적이지만, 사람의 판단과 인식이 작동하는 방식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새 정보를 받아들여 인식의 토대를 재설정하는 작업은 자신의 세계관이 흔들리는 '부조화'의 혼란과 불쾌감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런 분들은 사고가 유연하고, 뛰어난 지식 습득 능력과 겸손한 삶의 자세를 지닌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저 같은 학자들이 갖춰야 할 태도이지만,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 한 이루기 어려운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불편한 새 정보를 무시하고,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정보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 결과 기존의 관점은 화석처럼 굳어지고, 새로운 정보는 설 자리를 잃게 되지요. 이런 심리상태는 '가짜뉴스'가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유세 집회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QAnon'을 뜻하는 Q 사인을 들고 있는 트럼프 지지자. QAnon은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2018.8.2 ⓒ 연합뉴스

 
기존 입장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식의 토대가 되는 지식이나 가치관은 그저 머릿속에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인식의 토대'라는 절대적 가치를 갖게 되니까요. 잘못된 뉴스에 대한 정정보도나 '사실 확인(팩트체크)'이 애초의 뉴스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허위정보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깁니다. 하지만 절대다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럴듯한 형식의 글, 그림, 영상을 통해 구성하고 그것을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송할 능력과 수단을 갖추게 된 것은 길어야 15년 안팎입니다. 읽고 쓰는 일은 공교육의 확대로 거의 모든 사람이 할 수 있게 됐지만, 정보를 작성하고 유포하기 위해 필요한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카톡 등 소셜미디어는 2005년에서 2010년 사이에 보편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빗나간 예언의 땅에서 벌어지는 혈투

1993년, 인터넷이 처음 대중에게 공개됐을 때 학자들은 웅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사람들이 무한한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어 고른 정보를 섭취하고,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토론하면서 개방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지요.

세계적 베스트셀러 <디지털이다>의 저자이며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였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인터넷이 인류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1997년에는 "20년 뒤 우리 아이들은 '민족주의'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지요. 세계의 인류가 국경 없는 인터넷에서 교류하게 될 터이기에, 속 좁은 국가주의는 설 자리가 없으리라는 판단이었습니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디지털이다>의 저자이자, 매사추세츠공대 미디어랩의 공동설립자입니다. 그를 포함해, 다수 전문가들이 낙관했던 디지털 세계의 미래는 전혀 다른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 Gin Kai/Alfred A. Knopf

 
20여 년이 훌쩍 흐른 현재,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는 여러분들께서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인터넷은 치열한 배타적 민족주의의 장이 되었지요. 민족주의뿐인가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사람들은 정치적 견해에 따라 사방팔방으로 나뉘어 서로 맹렬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간혹 이성적인 토론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고, 인터넷 공간을 남을 돕는 이타적 도구나 폭력적 권력에 대항하는 저항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대다수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다준다거나, 온라인에서 토론자들이 다른 견해를 지닌 상대와 열린 태도로 대화하리라는 예언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어쩌면 인터넷에 대한 낙관론은 인터넷에 대한 오해보다 사람들의 보편적 심리와 태도를 오해한 데서 출발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대개 내 말에 반대하는 사람보다 '맞다'고 맞장구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합니다. 여기서 가장 친한 친구를 떠올려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내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닌가요? 같은 이유로, 사람들에게 정보의 선택권을 주면, 내 견해와 충돌하는 정보보다 부합하고 지지하는 정보를 고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커뮤니케이션학자 다이애나 머츠는 <반대편에 귀 기울이기>라는 책에서 인터넷이 정치양극화의 온상이 된 이유를 '끼리끼리' 심리의 결과로 설명합니다. 누구든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사귀고 싶어 하니까요. 하지만 정치 진영 간의 갈등과 대결이 사람들의 보편적 심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런 성향을 부추기고 증폭시켜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얻는 정치인, 뉴스매체, 유튜버, 논객에게도 책임이 돌아가야 합니다.

'무플보다 악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관심유발이지 정확성, 공정성, 균형이 아닙니다. 이목을 끌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방법은 민감한 주제를 골라 '우리 편'과 '적' 사이에 명확한 선을 가른 뒤에, 감정적 언어로 상대편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뜨거운 싸움판이 만들어지고, 사람들과 관심이 고조되었을 때 상대를 통쾌하게 '발라'버리면 금상첨화입니다.

이제 기성 정치인까지 '토론 배틀'이라는 말을 쓰더군요. 토론 '배틀'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이겼냐'는 결과이지, 토론 내용이 아닙니다. 승패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흥행인데, 그런 탓에 상대의 뼈를 꺾거나 심장에 칼을 꽂는 스펙터클이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됩니다. 토론은 원탁에서 이뤄지지만, '토론 배틀'은 증오와 조롱의 함성이 가득한 원형 경기장을 무대 삼아 벌어집니다. 인터넷에서 논쟁을 즐기는 사람을 검객에 빗대 '논객'이나 '키보드 워리어'라고 부르는 게 우연이 아닌 셈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전사들은 '팩트'를 강조하는데, 이들이 제시하는 증거를 들여다보면 부분의 진실이나 맥락을 무시한 정보들을 짜 맞춰 놓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방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특정 입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보들을 찾아 엮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요.

위기감, 가짜뉴스의 토양
 

'무플보다 악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관심유발이지 정확성, 공정성, 균형이 아닙니다. ⓒ Colin

 
다트머스 대학의 브렌든 나이한(Brendan Nyhan) 교수는 '가짜뉴스'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정치학자입니다. 그는 2020년 <워싱턴포스트>에 '허위정보에 대한 5가지 신화'라는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그가 지적한 오류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정체불명의 웹사이트에서 허위정보를 대량소비하고 있으리라는 추측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정치성향에 따라 매체를 선택하는 것은 분명하나, 대부분은 널리 알려진 매체에서 뉴스를 얻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람들이 이용하는 뉴스 사이트 중에서 출처 불분명한 뉴스를 유통시키는 곳은 6퍼센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곳을 주요 뉴스원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보수 성향 집단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물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얻고 있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용자들의 논평이나 주장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이한은 가짜뉴스에 의존하는 동기를 '소속감'과 '위기감'의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성적 존재로 보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집단을 이뤄 사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인데, 이때 나와 비슷한 대상과 무리를 짓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무리를 이루고 나면, '내편'에 안정감을 느끼는 만큼 상대 집단에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조직이 위태롭다고 느끼는 상황이 발생하면, 평상시 믿기 어려운 정보에도 쉽게 현혹됩니다.

"~가 대통령 되면 광화문에 인공기 휘날릴 것"
"~당의 집권 못 막으면 전쟁 날 것"
"우리가 선거에 못 이기면 나라 거덜 날 것"
"차별금지법 통과되면 에이즈 확산"


허위정보가 긴박한 위기감을 유발하며 찾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야 터무니없는 정보가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 편'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동일한 재력, 권력, 이해관계를 나누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집단의식이나 소속감마저 허구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사실은 사회심리학자 헨리 타이펠이 오래 전 실험으로 입증한 바 있습니다.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을 동전 던지기로 편을 갈라도 소속감을 느끼는 게 사람이니까요.

여기에 '상대편'과 긴장을 유발하는 정보가 유포되면 소속감은 쉽게 상대에 대한 적대감으로 바뀝니다. 그런 점에서, 허구적 소속감과 위기의식을 털어내는 것은 가짜뉴스에 속지 않는 첫 번째 비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믿기 어려운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한 구절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아무리 악당이라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순진하고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 자신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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