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빛나는 순간> 관련이미지.

영화 <빛나는 순간> 관련이미지. ⓒ 명필름

 
<빛나는 순간>은 파격 멜로다. 33살 나이차 때문에. 그러나 사랑에 방점을 찍는다면, 새 지평을 연 올곧은 멜로다. 그저 애틋하다 여기던 상사화를 달리 보게 하는. 해녀 삼춘 진옥(고두심 분)과 멍텅구리 경훈(지현우 분)이 피운 상사화는 두 아픔이 용해된 심정에 돋은 맑은 그리움이다. 숨비소리를 주고받으며 서로 울음 뚝, 웃음으로 떠나보내는 장면이 아름다운 이유다.
     
제주도 돌담길과 상사화, 그리고 숨비소리가 어우러진 멜로를 칠순의 고두심은 수줍은 떨림의 몸맨두리로 전한다. 한국말(제주말)을 들으며 자막(표준말)을 봐야 하는 색다른 신선함을 빼쏜다. 삼동(김중기 분)의 선입관 "역겨워"와 거리 멀다. 상영관을 나와서도 "이녁 소랑햄수다"가 내 속에서 메아리친다. 그만큼 소준문 감독의 감성 연출 솜씨가 빛나는 지점이 또 있다.

세상 물정에 어둘 것 같은 육짓것 경훈의 인터뷰 요청에 영등할망으로 불리는 진옥은 냅다 멍텅구리라며 내친다. 그러다 제주 바다에 얽힌 경훈의 트라우마가 물꼬된 진옥의 아픔 토설에서 소 감독은 제주4.3의 한을 해녀살이의 숨 고르는 고달픔과 짜깁기해 밝힌다. 그 느닷없는 역사적 상황에 노출된 내가 공감하도록. 물질하지 않는 어떤 일상에서든 숨 고를 일이 흔하다는 걸 일깨우듯.   
   
숨비소리는 숨 참는 시간을 겪은 후에야 낼 수 있다. 진옥은 그 영역의 제일인자다. 경훈은 진옥과 공감하며 숨비소리를 익힌다. 진옥의 귀지를 파내거나, 경훈의 바닷속 헤엄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행위처럼 일반적 상사화나 멜로가 놓치기 쉬운 아픈 맥락 보듬기다. 슬픈 전설이 담긴 제주 민요 <이어도사나>를 구성지게 부르며 일하는 해녀들처럼.   
   
<빛나는 순간>에서 나는 굳이 둘의 '빛나는 순간'이 언제인지 헤아리지 않는다. 연상되는 내 인생의 것도 마찬가지다. 그 헤아림은 과거 지향이어서 앞날을 가리는 닫힌 인식이니까. 대신 그 순간을 짓는 사랑의 진심에 주목한다. 진옥과 경훈이 상대의 아픔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다독이는 위로 같은 것 말이다. 코로나19가 견고하게 쌓은 마스크 삶터에서 절실한 것도 그런 거라 여기면서.
    
 영화 <빛나는 순간> 관련이미지.

영화 <빛나는 순간> 관련이미지. ⓒ 명필름

 
그렇게 보면 <빛나는 순간>은 사랑에 대해 새삼 곱씹게 한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플라토닉러브든 인류애든 경계 없이. 33년 나이차는 '고작'에 불과할 정도로 오랜 세월 동서고금 성인들이 누누이 강조한 자비(사랑과 연민이 어우러진)가 와 닿는다. 경훈이 앵글 맞춘 상사화를 보며 "멍텅구리"라 혼잣말하던 진옥이 바다로 나가 "이녁 소랑햄수다" 전하는 그리움이 닻을 내릴 지점이다.    
    
진옥의 말처럼 바다는 아픔만 낳지 않고 아픈 마음까지 품는다. 그러니까 일상도 바다다. 아픔과 그리움이, 상처와 위로가 혼재하다 번갈아 불거지며 때론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심히 굴러간다. 그러다 언제든 '빛나는 순간'이 나를 찾아올 수 있다. 물론 그 주인공이 되려면, 진옥처럼 경훈처럼 제때 진솔해야 한다. 자기 성질을 잃지 않으면서 그릇 모양대로 담기는 물처럼 살면서.   
  
암튼 내게 <빛나는 순간>의 압권은 진옥과 경훈이 숨비소리로 화답하며 돌아서는 장면이다. 자기 자리로 돌아갈 줄 알만큼 제어 가능한 사랑은 욕망을 넘어선다. 그 숨비소리 깃든 상사화가 참 좋다.  
덧붙이는 글 https://brunch.co.kr/@newcritic21/67
반짝이는 순간 고두심 해녀 이어도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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