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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컨대 우리나라는 바다 밖에 치우쳐 있는 곳이라 예로부터 전해오는 것은 오직 활과 화살 한 가지 기예만 있을 뿐입니다. 검과 창의 경우에는 다만 그 무기만 있을 뿐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것을 익히고 사용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기예질의(技藝質疑) 中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전통적으로 조선의 '최종병기'는 칼이 아니라 활이었다. 조선인들이 검(劒)과 검술에 대해 소홀했던 바는 당대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조총을 발사한 후, 칼을 뽑아 들고 달려드는 단병접전술을 구사했는데, 이때 조선군은 '칼을 칼집에서 빼보지도 못하고' 적의 칼날에 쓰러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때껏 활쏘기만을 중시하던 조선군은 일본군의 검술에 호되게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검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다양한 검술을 수입하게 된다.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왜검(倭劒) 천유류(千柳流)를 시연하는 기자의 모습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왜검(倭劒) 천유류(千柳流)를 시연하는 기자의 모습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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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의 영향으로 유행하게 된 '도검문학'

전란의 영향은 칼에 대한 사대부들의 인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조선 후기 유행했던 한문 작품들에서 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고상한 담론이 지니는 아정한 향취가 한문학의 주류를 이루던 이전 시기와 확연히 비교되는 문화였다.

특히나 17세기는 병자호란의 패배로 인한 좌절감과 울분을 문학 속의 칼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 시기였다. 외적에 대한 적개심이 칼이라는 기물을 통해 문학적으로 응축되어 한문학 작품 속에서 표출된 것이다.

<조선후기 도검문학 연구>는 17~18세기 동안 조선에서 창작된 도검을 소재로 한 도검문학을 통해 당대 사대부들의 의식을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저자 조혁상은 조선의 도검에 관한 한시와 명(銘), 야담(野談)과 전(傳), 부(賦)와 책문(策問), 각종 한문 산문 등 200여 편의 다양한 작품들을 수록하였고, 경인미술관 및 개인소장 희귀 조선도검의 사진들까지도 함께 첨부하였다. 박물관에서도 쉽게 만나보기 힘든 희귀 도검 사진들은 한 편의 도록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저자는 성균관대에서 한문학을 전공한 한문학자이면서 실제로 칼을 수집하고 검술을 연마하는 무인(武人)이기도 하다. 검도 뿐만 아니라 종묘제례악의 검무인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를 익히고, 지방에서 전승되는 전통검술들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칼덕(칼덕후) 중 칼덕이다.

칼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도검문학의 소개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도검문학 속에서 언급된 칼의 형태와 제작기법에 대한 고증까지도 구현해냈다.
 
 <조선후기 도검문학 연구>
 <조선후기 도검문학 연구>
ⓒ 학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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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검의 상징, 임경업의 두 자루 칼

도검문학 속에서 도검은 국방용 기물인 호국검(護國劒)과 난신적자를 베어 죽이는 의물(儀物)인 의검(義劒), 벽사의 기물인 신검(神劒), 심성을 가다듬는 수신물(修身物)인 수양검(修養劒) 등 다양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호국검의 상징으로 저자가 소개하는 대표적인 칼이 바로 임경업(1594~1646)의 두 자루 칼이다. 그에 따르면 성해응(1760~1839)은 <임장군검명>(林將軍劒銘)에서 임경업 칼의 유래를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임경업 장군이 일찍이 소농권관이 되어 백두산에 들어갔다가, 어떤 요물들이 안개 속에서 싸우는 것을 보고 둘 다 베어죽이니, 바로 두 마리의 교룡이 한 덩이의 철을 다투는 것이었다. 그 철로 두 자루의 검을 만드니, 한 자루는 길고 한 자루는 짧았는데, 장군이 늘 차고 다녔다. - 143쪽.

위에서 언급된 두 자루의 칼은 각각 추련도(秋蓮刀)와 용천검(龍泉劒)이다. 용천검은 해방 후까지도 전해내려오다 6.25 전쟁 와중에 망실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추련도는 그 실물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추련도와 용천검에는 각각 다음과 같은 검명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時呼時來否在來 (때여 때여 다시 오지 않나니)
一生一死都在筵 (한 번 살고 한 번 죽는 것은 여기 있네)
平生丈夫報國心 (장부 한 평생 나라에 바친 마음)
三尺秋蓮磨十年 (삼 척 추련도를 십 년 갈았네)

三尺龍泉萬卷書 (석 자 용천검에 만 권의 책이니)
皇天生我意何如 (하늘이 나를 낳은 뜻이 무언가)
山東宰相山西將 (산동의 재상에 산서의 장수라 하지만)
彼丈夫兮我丈夫 (저들이 대장부라면 나도 대장부다)


임경업 장군의 두 자루 칼에 새겨진 검명은 나라가 위기에 처한다면 언제든 칼을 잡고 나아가 적을 베어버리고자 하는 굳건한 충심과 영웅의 웅혼한 기상을 담은 호국검으로서의 성격을 보여준다. 

일본도 수집이 취미였던 사대부들

18세기 이후로는 사대부들 사이에서 오래된 도검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고동(古董)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장혼(1759~1828)은 깨끗한 물건(淸供) 80종 중에 두 번째로 고검(古劒)을 꼽았고, 청아한 일(淸課) 34가지 중에서 검을 감상하는 일을 하나로 언급하기도 했다.

저자는 당대 사대부들 사이에서 일본도(日本刀) 역시 명검(名劒)으로 인식되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언급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조귀명(1693~1737)이 지은 <남씨단검명>(南氏短劒銘)을 소개하고 있다. <남씨단검명>은 남이웅(1575~1648)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일본도의 유래에 대해 언급한 작품이다.

남이웅은 임진왜란 당시 적에게 사로잡혔다가 적진에서 몰래 탈출한 인물이다. 그는 탈출 당시 왜적이 허리에 찬 날카로운 단검을 몰래 훔쳐왔다고 한다. 훗날 그가 북경에 갈 때 그 칼을 차고 가니 풍랑의 위험을 면할 수 있었고, 칼을 물려받은 아들과 손자 역시 근심이 없었다 한다. 이에 남씨 가문에서는 이 칼을 영험하게 인식하면서 조귀명에게 검명을 지어달라 부탁했다.

出於蠻夷之鄕 (오랑캐의 땅에서 나와)
進於禮義之邦 (예의의 나라로 들어왔으니)
猶鳥之遷耶 (새가 골짜기에서 높은 나무로 옮겨간 것과 같네)
抗之則鎭黃扉 (칼을 들면 재상의 집을 지킬 수 있고)
抑之則餙靺韋 (칼을 차면 장수의 옷을 빛낼 수 있으니)
猶龍之詘伸耶 (마치 용의 굴신과 같다고 해야 할까)
辟魑魅伏蛟鰐 (도깨비를 물리치고 교룡과 악어를 복종시키며)
履險阻安袵席 (험한 일을 무릅쓰고 자리를 편안하게 하니)
是則無間於後前 (이야말로 전후의 간격이 없다는 것이네)


한편 남공철(1760~1840)의 경우 <일본도>라는 시에서 "오호라! 어찌하면 용맹한 무사를 얻어 이 칼을 떨쳐 단숨에 왜국으로 건너가 괴물고래(왜적을 상징)를 베리오"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만든 일본도를 가지고 역으로 왜적들을 베어 원한을 설욕하고자 했던 당대인들의 기개가 엿보인다.

비록 왜란 당시 번뜩이는 일본도의 칼날 아래 많은 피를 흘렸으나, 그 칼을 '요사스러운 칼'로 천시하고 기피하기보다는 뛰어난 효용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자 했던 사고방식이 엿보인다. 실제로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왜검(倭劒) 역시 뛰어난 일본의 검술을 연마하여 국방을 튼실히 하고자 했던 당대 조선인들의 사고의 산물이었다.

주목해야 할 우리의 칼
 
세계 무기사에 있어 조선의 도검에 관한 자료는 소개된 바가 드물다. 동아시아 무기사에서 중국과 일본의 도검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과 달리, 조선의 도검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실정이다. - 298쪽.

저자가 도검문학 연구에 천착하고 있는 이유다. 중국, 일본의 도검에 비해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우리 칼의 위치에 씁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의 도검을 해외에 소개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조선도검에 대한 문헌 연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안타깝게도 조선시대 도검들은 남아있는 유물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앞으로의 과제로 제시한 바와 같이 도검문학이라는 문헌적 연구 뿐만 아니라 사라진 우리의 칼(대표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쌍룡검)을 찾아내려는 시도 역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도검 유물의 발굴과 문헌적 고찰을 통해 한국도검사(史)가 풍부해지고 세계인들이 한국의 칼에 주목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조선후기 도검문학 연구>, 조혁상 저, 학자원, 2021.


조선후기 도검문학 연구

조혁상 (지은이), 학자원(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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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선열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자 하는 역사학도 / 聖文神武를 꿈꾸는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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