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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지사가 대선출마선언 후 1일 오후 경북 안동시 도산면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해 이육사 시인 외동딸 이옥비 여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차담회가 열린 곳은 이육사 생가를 복원한 육우당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선출마선언 후 1일 오후 경북 안동시 도산면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해 이육사 시인 외동딸 이옥비 여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차담회가 열린 곳은 이육사 생가를 복원한 육우당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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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대단한 후폭풍을 낳고 있는 말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말이다.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나.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되지 못해서 이육사 시인 같은 경우도 독립운동 하다가 옥사하셨다. - 2021년 7월 1일 경북 안동 이육사문학관에서

일파만파

'미 점령군'이라는 표현은 학술적 규명을 시도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해방 25일 뒤인 1945년 9월 9일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조선주둔 일본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미 제24군단 하지 중장은 당일자로 한국인들에게 성명을 발표했다.
 
조선인민 제군이여! 태평양방면 육군사령관이요 연합국총사령관 맥아더 대장을 대신하여 나는 오늘 남조선 지역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았다. 주한미군사령관으로서 법률과 질서를 유지하는 동시에 조선의 경제 상태를 앙양시키며 인민의 생명·재산을 보호하며 기타 국제법에 의하여 점령군에게 과하여진 기타 제(諸)의무를 이행하노니, 점령 지역에 있는 제군도 또한 의무를 다하여라.
 
하지는 일본군을 제압하고 일본군의 항복을 받은 자신의 부대를 '점령군'으로 지칭했다. 또 한국인들을 '점령 지역에 있는 제군'으로 불렀다. 점령군이니 점령이니 하는 용어는 하지가 독단적으로 사용한 게 아니었다. 9월 7일 발포된 미국 태평양육군총사령부 포고 제1호에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도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일본국 천황과 정부와 대본영을 대표하여 서명한 항복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 휘하의 연합군은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지역을 점령함.
 
그런 뒤 맥아더는 '점령에 관한 조건'을 포고했다. 이 조건 제4조에서 그는 "점령군에 대하여 반항 행동을 하거나 또는 질서 보안을 교란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함"이라고 선포했다.
 
'미군은 점령군'이란 말은 미군 자신만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해방 당시의 한국인들도 그렇게 말하곤 했다. 엄연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언론도, 이승만도, 보수 정치인도 
 
대한민국정부수립경축식에 참석한 이승만(맨 오른쪽)과 하지(왼쪽), 맥아더(가운데).
 대한민국정부수립경축식에 참석한 이승만(맨 오른쪽)과 하지(왼쪽), 맥아더(가운데).
ⓒ NARA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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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문 보도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김구와 이승만에 관한 기사인 1948년 2월 11일 치 <경향신문> '김구씨 의견을 돌변'은 AP통신 보도를 인용해 "당초 양씨(兩氏)는 조속한 독립 급(及, 및) 미·소 양군의 철퇴에 찬성하였으나, 그러나 소련이 북조선 군대를 건설하고 양(兩) 점령군대가 철퇴하는 경우에는 북조선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은 용이히 남조선을 접수하리라는 것이 명백히 되자 이 박사와 김구 양씨는 태도를 변경"했다고 보도했다. 주한미군 철수에 관한 김구·이승만의 입장을 보도하는 기사에서 미·소 두 군대가 '양 점령군대'로 지칭됐다.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해방 직후의 최대 보수정당인 한국민주당(한민당)의 송진우 총무는 1945년 12월 21일 서울중앙방송국을 통한 정견 방송에서 '점령'이란 용어를 썼다. 다음날 <조선일보> 기사 '민족의 균등한 생성 발전'에 실린 방송 연설문에 따르면, 송진우는 한민당의 입장을 이렇게 천명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국가 수립을 기(期, 기약)합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제국주의의 통치로부터 이탈하엿지마는 아직 자주독립이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북위 삼십팔도를 계선(界線, 경계)으로 그 이북은 소군(蘇軍)이, 그 이남은 미군이 보장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로바삐 전 민족이 일치단결하야 임시정부를 절대 지지하므로써 완전한 독립국가로 승인을 밧지 안흐면 안이 되겠습니다.
 
송진우는 미소 두 군대가 일본의 항복을 보장받기 위한 보장 점령을 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런데 '미군이 38도선 이남을 점령하고 있다'는 그의 발언은 문젯거리도 되지 않았다. 미군이 남한을 점령했다는 것은 이념적 억측의 결과가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당시의 다른 정치인들도 다 그랬지만, '미군 점령군'을 특히 많이 언급한 정치인이 있었다. 친미 정치인의 선두주자, 이승만이다. 위의 <경향신문> 기사에도 그가 백범 김구와 함께 미군 점령을 운운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승만이 '점령' 용어를 쓴 다른 사례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당시의 신문기사에 따르면 이승만은 그런 언급을 자주 했다. 일례로, 1947년 2월 21일 치 <조선일보> '남조선에 임정 수립 요망'에 따르면, 그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재차 촉구하면서 "남조선과도정부에 대하여는 점령 기타 중요 문제에 관하여 소련 급(及) 미국과 교섭할 권리를 부여"할 것을 촉구했다. 미군정 하의 한국인 기관인 남조선과도정부가 '점령' 문제를 놓고 미국과 교섭할 권리를 언급했던 것이다.
 
그는 미군정이 끝난 뒤에도 '미군 점령군' 발언을 계속했다. 1949년 5월 18일 치 <동아일보> '한국 방위 서약 요구'에 따르면, 미국을 겨냥한 담화에서 미국이 한국을 책임져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남한을 미국이, 북한을 소련이 점령하여 한국을 분할한 것은 한국이 알지도 못하게 양국 간에 행하여진 것이오. 이 분할의 책임을 양국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며, 자연 미국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하여 우리들을 계속 원조할 것으로 기대하는 바이다. 우리는 이를 비평하려는 정신에서 말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며, 한·미 양국민의 상호의 입장을 서로 정당히 이해시키고저 말한 것이다.
 
'소련군은 북한을 점령하고 미군은 남한을 점령했다'는 점은 해방 당시의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보수 친미파인 이승만도 대수롭지 않게 '미군 점령군'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는 '미군이 우리를 점령했으니 책임져라'는 위와 같은 담화문까지 발표했다.

역사적 사실일 뿐인데도... 공격 또 공격 
 
1945년 9월 9일, 미군의 경례를 받으면서 조선총독부 광장 국기게양대에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게양되고 있는 모습.
 1945년 9월 9일, 미군의 경례를 받으면서 조선총독부 광장 국기게양대에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게양되고 있는 모습.
ⓒ NARA/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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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군이 점령군이 아니었다고 말하면, 그게 되레 이상하다. 점령군이 아닌데도 일본 식민지인 한국에 주둔했다면, 이는 미군이 일본의 연합군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군에 패배해 항복하러 들어왔거나 포로가 돼 끌려온 패잔병 군대였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미군이 점령군이었다는 지적은 미군을 욕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재명 지사의 발언에 대해 매우 신랄한 공격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사람인 양 몰아세웠다. 지난 5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는 "지리산에 들어가 빨치산을 하든지 하라"는 발언까지 퍼부었다. 지리산 빨치산들을 빨갱이로 욕하던 당시 사람들도 '미군 점령군'을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공격이다.
 
맥아더는 포고문에서 '점령군에 대하여 반항 행동을 하는 자는 용서 없이 엄벌하겠다'고 경고했다. 맥아더가 경고한 것은 점령군에 대항하는 것이지 점령군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군의 남한 점령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맥아더의 포고문을 따를 것 같으면, 미군의 점령을 현실로 받아들인 이재명 지사의 발언은 엄벌 대상과는 거리가 멀다.
 
보수 정치인으로 변신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그는 '셀프 역사왜곡,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제목의 글을 지난 4일 페이스북에 실었다. 그는 "요즘 저를 포함해 많은 국민들께서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라면서 이재명 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을 꼬집었다.

보수 정치권에서만 이런 공격이 나오는 건 아니다. 같은 당에서 대선 경선을 치르고 있는 정세균 전 총리는 5일 "민주당 대통령들은 단 한 번도 이런 식의 불안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라고, 이낙연 의원 역시 "정치인은 어떤 말이 미칠 파장까지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25일 '6.25 50주년 기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6.25라는 동족 상잔의 전쟁을 치렀습니다. 수백만의 사람이 희생되었고, 국토가 초토화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전쟁이 일어나야만 했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서로 총칼로 대립했기 때문입니다.

분단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 원인은 일제 지배에 있었습니다. 일제가 패망하자 우리가 일제의 영토였다는 이유로 소련군과 미군이 각각 한반도의 남과 북을 점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미국이 한국보다 위에 있는 것을, 한미관계가 수직적이고 불평등한 것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자주 취한다. 그들은 한미관계를 평등하고 합리적으로 재조정하려는 노력을 위험시한다. 그러면서도 '미군이 한국을 점령했다'는 객관적 사실은 부정하려 한다. '점령'이 풍기는 뉘앙스로 인해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조장되지 않을까 염려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관계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서술하는 게 바람직하다.

태그:#미군 점령군, #주한미군, #이재명, #윤석열, #맥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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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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