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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예방 백신을 맞았다.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1년 넘게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맹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델타변이'라는 이름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 다시 확산되는 중이다. 거침없는 확산세에 다시 빗장을 걸어야 할 판이다. 아마 코로나의 영원한 종식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문명의 몰락

기후재난, 감염병의 창궐, 빈곤과 양극화, 전쟁과 학살이 여전한 세계에서 절망은 켜켜이 쌓여가는데 희망은 쉬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지금 나는 '더 이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부디 다가올 미래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있기를 바란다. 

축적과 욕망의 바벨탑이 무너진 다음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극소수만 올라탄 '설국열차'가 무한 질주하는 모습일지, 아니면 '파피용' 같은 '노아의 방주'를 타고 새로운 행성을 찾아 지구를 탈출하게 될지 알 수 없다.

문학예술은 다양한 모습으로 문명의 몰락 이후 세상을 상상해왔다. 그 미지의 영역에 대한 상상력을 '고양이 문명 건설'이라는 기상천외한 호기심으로 풀어낸 소설이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문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문명> 표지 .
▲ 베르나르 베르베르 <문명> 표지 .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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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문명이 몰락했다. 어쩌면 '예고된 결말'일지도 모른다. 드디어 고양이 문명을 세울 때가 되었다. 암고양이 바스테트는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를 규합하고,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을 포함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연대하는 새로운 문명을 세우기로 결심한다. 

고양이가 '무리'가 아닌 '문명'을 세우기 위해서는 사랑, 유머, 예술이라는 세 가지의 개념이 필요하다. 사랑, 유머, 예술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바스테트는 죽음을 넘나드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어렴풋이 알아나간다. 

사랑, 유머, 예술은 인간이 지구 위에 문명을 세운 원동력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차 사랑, 유머, 예술을 잃어갔다. 그러면서 인간의 위대한 문명은 힘을 잃어갔다. 작가는 이 '문명의 역설'을 통해 오늘의 세계가 위기와 혼돈에 처한 이유를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심판의 시간

종말과 심판은 하나의 카테고리다. 죄지은 자가 드러나고 죄의 경중이 선명하게 가려진다. 소설에서는 바스테트의 인간 집사인 나탈리와 연구원 로망이 '돼지공동체'의 재판에 회부된다. 

돼지들의 왕 아르튀르에게 포로로 잡힌 인간들의 죄를 묻는 법정 안. 검사는 잔인한 공장식 축산업으로 얼마나 많은 돼지들이 끔찍한 학대와 죽임을 당했는지 고발한다. 거위도 증인으로 출석해 인간들의 고문 행위를 증언한다. 
 
"어떤 고통인지 다 아시겠지만 제 입으로 다시 말씀드리죠. 인간들은 돼지들을 옆구리가 벽에 닿을 만큼 좁은 철제 우리에 넣습니다. 가로대 두 개 사이에 머리를 끼우고 주둥이는 항상 먹이통에 잠겨 있게 해놓죠. 왠지 아시죠? 강제로 피둥피둥 살을 찌워야 하니까. 그렇게 평생 옴짝달싹 못하게 해 놓고 살을 찌워 육즙이 많고 기름진 고기를 만드는 거예요. 오로지 수익을 위해서. 최대한 빠른 시간에 최대한 많이 살을 찌어야 이익이 되니까요." (2권 68쪽)

동물들이 절규하고 인간들의 처형을 부르짖는 장면은 꽤 '설득력 있는' 공포로 다가온다. 소설처럼 동물들의 재판이 열린다면 인간은 '유죄'일 것이다. 인간이 인간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물종들을 수단화하고 착취한 대가는 혹독할 것이다. 코로나19 유행, 폭염, 산불, 홍수, 지진 등 빈번하게 발생하는 재난이 파멸의 경고가 아닐까. 

제3의 눈

인간이 몰락한 지구는 기하급수적으로 개체가 늘어난 쥐 떼들이 점령하고 있다. 땅이 보이지 않고 마치 갈색 카펫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끝도 없이 밀려드는 쥐 떼의 공격에 살아남은 모든 생물종들이 속수무책이다. 이로부터 바스테트는 종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것"(22쪽)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 
 
내 안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이 감지된다. 자연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득실을 따지기보다는 사랑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소통을 위해서라도 우선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다. (2권, 253쪽)

소설에서는 인간과 고양이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다른 생물종들이 소통을 하는 매개체로 '제3의 눈'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첨단과학기술의 결정체인 '제3의 눈'을 이마에 장착하면 종의 한계를 넘어 소통이 가능하다. 

바스테트는 '제3의 눈'을 통해 다른 종들과의 소통, 연대, 협력을 도모한다. 독수리를 구해주고 비둘기와 연대하며 심지어 적들과도 소통하려고 한다. 그는 "생명계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서 조화롭게 작동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이롭다는 사실"(260쪽)을 설득한다. 

종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던 바스테트가 실제로 고양이 문명 건설에 성공했을지는 알 수 없다. 세상이 디스토피아로 변해버리기 전에 소통, 연대, 협력, 조화, 공생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파괴와 경쟁의 논리를 버리고 더불어 함께 사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 편의 우화가 보여준 묵직한 메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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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사려깊고 유쾌하고 유능한 동료들과 함께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좌충우돌하는 마을학교를 운영하면서 날마다 협동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작지만 커다란 변화는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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