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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프리랜서로 다시 글 쓰는 일로 복귀한 지 올해로 2년 차,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날 만난 대학 선배의 선물 같은 제안이 있었다. 선배가 하는 출판사의 편집자 일을 함께해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꿈만 같던 그 일을 흔쾌히 수락하고 올해 초 함께 하게 되었다. 다시 신입의 자세로 호흡을 가다듬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원고를 응시하게 되었다. 

그렇게 올해 3월 봄날의 설렘과 함께 만나게 된 나의 첫 번째 작가님, 바로 거칠부님이다. 거칠부님은 산을 좀 탄다는 사람들에게는 유명 인사셨고, 이미 네팔의 히말라야를 다녀오신 이야기를 담은 여행 에세이를 두 권이나 내신 프로 작가님이셨다. 혼자였으면 절대 맡지 못할 작가님이셨지만 편집장인 선배와 함께였기에 운 좋게 작가님의 세 번째 책을 맡게 된 것이다.

내 곁으로 다가온 파키스탄 히말라야
 
책표지
▲ 거칠부의 환상의 길, 파키스탄 히말라야  책표지
ⓒ 김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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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부의 환상의 길, 파키스탄 히말라야> 원고를 처음 받고 읽게 되었을 때 심정은 일단 놀람과 부끄러움이었다. 히말라야는 네팔 이외의 여러 나라에 걸쳐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놀랍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그런 나의 무지에 부끄럽기도 했다.

'이슬람' 하면 떠오르는 국가인 파키스탄에 히말라야 K2가 있었다니! 게다가 '히말라야' 하면 나는 늘 네팔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등 눈발 날리는 정상을 향한 등반기만 떠올려졌는데 거칠부님의 글을 통해 접한 히말라야는 그렇지 않았다. 정복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하고픈 풍경으로 히말라야는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거칠부님이 직접 찍은 수많은 사진들은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느끼는 데 톡톡히 한몫했다(책 표지부터 책 속 사진을 고르는데, 너무 멋진 사진들이 많아 행복한 고민에 잠겼었다는 후문. 결국 책 시작부터 화보 페이지가 촤라락~). 이번 책의 표지이기도 한 설산 아래 야생화 풍경은 그야말로 내 머릿속 틀에 박힌 히말라야 풍경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설산이 가져다주는 신성함과 노란 야생화가 가져다주는 황홀함이라 '환상'이란 단어를 넣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을 풍경이었다.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여정은 아찔한 벼랑길이며 가도 가도 되돌이표 같은 빙하길, 푹푹 발이 빠지는 넓은 모래밭 같은 모험의 순간들도 있었지만 정상을 향한 등반이 아닌 걸어가는 트래킹이었기에 일행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자연과 함께 늘 그곳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 경계심 없이 타국인을 향해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 하며, 일정 시간이 되면 그들의 신 알라에게 기도를 하던 경건한 사람들의 모습까지. 파키스탄 히말라야만의 풍경으로 내게 다가왔다.

빙하 산들이 선사하는 웅장한 모습에 압도되었다가도 한적한 초원 위 오두막 같은 목가적 풍경에 마음이 편해지는 곳, 파키스탄 히말라야는 정말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 같은 곳이었다.
 
정녕 이게 세상의 풍경이란 말인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난생처음 마주한 풍경 앞에서 가슴이 벅찼다. 발아래를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문득 살아있음이, 내가 이곳에 있음이 못 견디게 좋았다. 히말라야에서 궁금했던 건 단 한 가지였다. '그곳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절정이 머지않았음을 알았다. 시나브로 파키스탄이라는 곳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갔다.
P.111~112 /Chapter 2 빙하 대탐험(비아포–히스파르빙하)

불편한 감정도 여정의 일부
 
우연히 펼쳐도 명장면
▲ <거칠부의 환상의 길,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펼치며 우연히 펼쳐도 명장면
ⓒ 김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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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히말라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에 대한 거칠부님의 감상도 좋았지만 사실 나를 더욱 사로잡았던 것은 거칠부님만의 솔직 담백한 글이었다. 처음에는 그 솔직함이 어색했다.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서술이라 '이렇게 써도 되는 것일까?' 물음표를 달기도 했었다.

내가 봐왔던 여행 에세이의 서사는 대부분이 '풍경이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며 모든 것이 그저 좋았다'로 요약됐다. 하지만 거칠부님의 글은 달랐다. 처음으로 팀원을 모집해 떠난 여행이었다. 그 여행에서 느낀 자신의 감정들에 대해, 그리고 그 상황들에 대해 가감 없이 써 내려갔다. 어떻게든 미화시키고 싶은 게 작가의 마음일 것 같았는데 거칠부님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그때 그 순간 감정을 충실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동반한 여행에서 갈등이 없을 수 있을까? 만약 없었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단순한 관광이 아닐까? 여행지 풍경이 선사해 주는 감동만큼 불편할 수 있는 감정 역시 여정의 일부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히말라야에서 더 많은 것을 보겠다고 팀을 꾸렸다. 이 방식을 유지하는 한, 나는 갈등을 숙명처럼 안고 가야 할지 모른다. 얻은 것에 대해 치러야 할 대가인 셈이다. 세상엔 거저 얻어지는 게 없다. 이유 없이 생기는 무언가는, 나중에 반드시 이유 있는 대가를 치르게 되니 말이다.
P. 204 /Chapter 3 신들의 광장(K2 트레킹–곤도고로라)

거칠부님 덕분에 내 인생 버킷 리스트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직접 가보는 것이다. 빼곡히 보이는 빙하와 야생화가 만나 선사하는 조화로움도 직접 보고 싶고, 아슬아슬한 비탈길을 따라 쫄깃해지는 마음도 느껴보고 싶다. 빙하 둔덕을 지나 삐죽삐죽 솟은 세락의 풍경을 직접 보는 그 느낌은 어떠할까? 투명한 호수에 비친 반영을 만난 그 아침은 또 얼마나 황홀할지 생각만 해도 벅차오른다.

더욱 심해지는 코로나19 탓에 집 밖은 위험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거칠부님의 글과 사진은 내게 잠시나마 답답한 일상 탈출을 가능하게 해줬다. 부디 이 책을 접하는 독자에게도 그러한 해방감을 주며 마음을 달래줄 수 있기를... 초보 편집자는 그렇게 리뷰를 쓰다 밤을 지새우고 책을 펼치고 또 펼쳐보고 있다.

거칠부의 환상의 길, 파키스탄 히말라야

거칠부 (지은이), 책구름(2021)


태그:#환상의길파키스탄히말라야, #책구름, #거칠부, #히말라야의길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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