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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 신데렐라
 해방자 신데렐라
ⓒ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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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기다운 삶을 살길 바라!'

책 <해방자 신데렐라>에서 가장 크게 들려오는 목소리다. 이것은 나의 딸에게 메아리처럼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딸의 진로를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결혼과 출산을 전제로 해서 말이다. 그때는 왜 자아 성취를 중심에 두고 결혼을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지 못했을까. 성 역할에 매여 거기까지 상상력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겠지. 

지금은 결혼을 인생의 필수로 생각하는 엄마도, 결혼이 자기 인생을 구원해줄 것이라 생각하는 여자 청년들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이런 시대적 흐름이 작가 리베카 솔닛을 부추겨 신데렐라 이야기를 다시 쓰게 한 것일까.

리베카 솔릿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저자로, '맨스플레인(man과 explain의 합성어)'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사람이다. 그렇다면 <해방자 신데렐라>를 관통하는 주제는 페미니즘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겠다. <해방자 신데렐라>는 페미니스트인 그녀가 추구하는 인간상이다. 

왕자비에서 해방자로 재탄생한 신데렐라 

<해방자 신데렐라>의 전반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결말은 완전히 다르다. 리베카 솔릿에 의하면, "변신의 매혹과 아이가 겪는 역경의 이야기는 유지하면서, 더 마음에 드는 결말을 고안해 내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한다. 

계모 밑에서 하루 종일 재를 뒤집어쓰고 부엌일을 하는 신데렐라. 왕자 주최로 열리는 무도회에 의붓언니들은 초대장을 받지만, 신데렐라는 초대받지 못한 상황. 대모 요정의 마법으로 호박이 유리 마차로, 6마리의 생쥐가 얼룩무늬 말 6마리로, 커다란 회색쥐 한 마리가 여자 마차꾼으로, 6마리의 도마뱀이 6명의 여자 말구종으로 변한다. 

"새와 나무와 빗방울이나 눈물방울 같은 수정이 수놓은 아름다운 파티 드레스"를 입고, "마차처럼 짙은 파란색 유리로 만든 구두"를 신고 무도회장에서 왕자와 춤추는 신데렐라. 왕자가 이름이 뭐냐고 묻자, 당황해서 급히 무도회장을 빠져나오다 구두 한 짝을 잃어버리고, 그 구두 주인을 찾는 왕자와의 재회. 여기까지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결말은... 훨씬 더 매력적이다. 우리 시대에 맞는 이야기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신데렐라는 왕자와 결혼하지 않는다. 작가는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결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여자의 경제적 지위와 신분이 결정되지 않으니 왕자와 결혼하는 부분도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해방자 신데렐라는 자기가 정말 하고 싶었던 케이크 가게를 열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원한다. 케이크 가게는 신데렐라의 독립의 터전이자 다른 사람의 해방을 위한 소중한 공간이다.
 
신데렐라는 대모 요정은 아니지만 마법 능력이 없어도 해방자가 될 수 있었어. 해방자란 다른 사람들이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도록 돕는 사람이야. - 39쪽

신데렐라는 저자의 삶을 거울처럼 비추는 듯하다. 리베카 솔릿이 자신을 해방하고 다른 사람의 해방을 돕기 위해 작가이자 여권 운동가로 활동하듯, 신데렐라도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나다운 삶'을 돕기 위해 열심히 케이크를 굽는다.

왕자님도 해방이 필요하다

신데렐라가 왕자에게 묻는다.
 
"당신 꿈은 뭐예요?"

"가끔 내가 왕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왜 자기들은 가진 게 부족한데 왕자는 저렇게 많이 가졌을까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요. 농장 소년이 입는 옷을 나도 입고 싶어요. (...) 무언가를 길러 내는 법을 배우고 싶고 낮에 땀 흘려 일하고 밤에 푹 잘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성에서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거든요. 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왕자와는 친구가 되지 않아요." - 33~34쪽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왕자님도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친구도 사귀고 싶다. 신데렐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둘이 친구가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해방자 신데렐라>는 이렇듯 모두가 자유롭고 자기다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이야기요, 신분과 계급을 초월해 친구가 되는 이야기다. 와! 이 책만큼 작가가 추구하는 페미니즘을 아름답게 그리고 쉽게 표현한 책이 또 있을까.

고정된 틀을 깨는 장치들도 유쾌, 통쾌하다
   
아서 래컴의 실루엣 삽화, 인종적 선입견이 들어설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아서 래컴의 실루엣 삽화, 인종적 선입견이 들어설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 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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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C.S. 에반스의 신데렐라 이야기(1919년)에서 아서 래컴이 그린 실루엣 그림을 삽화로 가져온다. 솔닛이 이것을 선택한 것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인종이 결정되어 있지 않은 느낌 때문이었단다. 인종차별적 생각의 틈을 남기지 않는 작가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살짝 반전하는 장면도 읽을거리다. 마차꾼과 말구종이 여자로 등장하는 것, 유리 구두가 특별하지만 썩 편하지는 않다는 것, 노동으로 굳어진 신데렐라의 발이 작지 않고 크다는 것, 오히려 편하게 지내는 의붓언니들의 발이 크지 않고 작다는 것 등등.

우리의 선입견을 깨트리는 장면 장면이 깨알같이 유쾌, 통쾌함을 선물한다. 그 외에 할머니가 손녀에게 들려주듯, 이 시대 점점 잃어가는 귀중한 가치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마음에 쏙 들어온다. 

아! 신데렐라, 그 이름의 유래를 아는가. 엘라(ella)는 신데렐라의 본명이다. 여기에 재투성이(cinder)라는 별명이 덧붙여진 것이다. 이제 신데렐라는 자기다운 삶으로 해방되며 본래의 이름을 되찾는다. 엘라!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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