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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많은 이들이 '알 수 없는' 몸의 증상들로 고민을 하다가 병원을 찾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진단명을 받지 못한 채 여러 가지 검사를 받은 후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참으로 초조하다. 그리고 마침내 내 몸의 증상들에 대해 '이름'을 얻게 되었을 때 설령 그 이름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안도감을 느낀다. 이름을 안 후에야 그것을 다루는 방법들을 알게 되고, 비로소 나를 괴롭혀온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갈 수 있다. 때문에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는다는 건 삶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의심만 늘어가고,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는 나 자신을 탓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휴머니스트, 2021)를 펴낸 신지수 작가는 자신의 심리적 증상에 대해 '이름을 갖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정신과 병원에서 심리검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심리치료를 하기도 하는 임상심리학자인 신 작가는 자신이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충동성 장애) 환자이기도 하다. 아동 ADHD 환자들을 종종 만나온 그녀는 스스로에게 주의력 검사를 실시했다가 자신이 ADHD의 진단범주에 해당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병원을 찾아 서른 살에 ADHD진단을 받는다.

진단을 받은 후 신 작가는 자신의 병에 대해 공부하면서 ADHD에 관한 연구들이 대부분 남성들을 대상으로 해왔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 '미성숙한 사람' '산만한 사람' '못 미더운 사람'이라고 믿어오기만 했지, 그토록 자주 접하는 ADHD의 증상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는지 그 이유를 깨닫는다.

흔히 ADHD 하면 사람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남자아이'를 떠올린다. 하지만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ADHD는 겉으로 드러나는 과잉행동만을 말하지 않는다. 주의력이 부족해 집중을 잘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도 흘려 버리며, 주변 정리가 되지 않고, 약속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역시 ADHD의 주요 증상 중 하나다.

신 작가는 여성들에게 ADHD 증상은 '과잉행동'이 아닌 이 같은 '주의력 결핍'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증상마저 ADHD는 남성적 질환이라는 오해 때문에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많은 여성들이 유사한 다른 질환으로 진단받아 왔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남성을 표준으로 하는 정신의학과 심리학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이름을 붙이지 못 한 채' 부적절감을 느끼며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18일 오후, 신지수 작가를 전화로 만나 봤다.

여성 ADHD 알려지지 않은 이유 "전문가들의 무관심 탓"
  
 신지수 작가는 남성을 표준으로 삼는 정신의학과 심리학이 ADHD진단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신지수 작가는 남성을 표준으로 삼는 정신의학과 심리학이 ADHD진단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 연남책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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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질병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정신과 질환에 대한 편견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 같아요.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내 이야기가 공개되었을 때, 환자들이 나를 신뢰하지 않는 건 아닐까, 내게 치료를 받는 것을 불안해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어요. 하지만 정신과를 찾은 환자들이 저를 보고 저 사람도 약을 먹으면서 잘 살고 있는데, 정신과 약을 먹고 치료를 받는 일이 수치스러운 게 아니구나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겠구나 믿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용기를 내게 했던 것 같아요."

- 진단명을 알고 나서 안도감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진단을 받기 전과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진단을 받기 전에는 제가 지니고 있었던 ADHD 증상들이 내가 부도덕하거나 게으르거나 나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했던 때가 많았죠. 그런데 진단을 받고 이게 ADHD의 증상이라고 이해를 하니 '내가 나쁘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진단명이 있다는 것은 이런 증상을 보이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잖아요. 이런 깨달음은 고립감에서도 벗어나게 했죠. 또 치료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됐어요."

- 진단명을 받는다는 건, 자신의 상태를 잘 이해하고 해결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환자'로 낙인찍는 효과를 가져올 것도 같아요.

"그런 면도 있어요. 저도 예전엔 노력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나는 ADHD환자니까 여기까지가 한계인가보다'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ADHD는 나의 어떤 면들을 설명하는 이름이지 나 전체를 나타내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질병과 상관없이 내가 가진 강점,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죠. 이처럼 질병과 관계없는 나의 모습을 인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해야 할 노력들을 '환자'라는 이름에 가둬서 하지 않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ADHD는 나의 한 측면이고 나는 이것을 넘어서는 보다 큰 존재임을 기억했으면 해요."

- 성인 여성의 ADHD가 잘 알려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전문가들의 무관심이라고 생각해요. 의학이나 심리학 연구 자체가 남성들을 표준으로 설정해서 연구되어 온 부분이 너무나 크죠. 여성은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도 부차적인 존재로 배제되어 왔어요. 때문에 여성들이 나타내는 증상들은 오인되거나 관심을 받아오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중구속에 갇힌 여성들"
 
 신지수 지음,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 2021, 휴머니스트
 신지수 지음,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 2021, 휴머니스트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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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지적하신 문제들은 의학과 심리학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여전히 사회는 남성중심적인 시각을 '정상인 것'으로 바라보고 있고, 여성은 쉽게 대상화됩니다. 이런 남성 중심의 사회 분위기가 여성의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들을 미칠까요?

"여성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저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이중구속'이라고 생각해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은 '관계 지향적'이고 '돌봄을 제공하고' '자기주장을 하지 말라'고 사회화됩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은 관계를 중시여기고, 가정 안에서 돌봄을 담당하고, 순종적인 사람이 되지요. 그런데 이렇게 살다보면 '의존적'이라는 비난을 받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이런 특징들 때문에 '의존성 성격장애'라는 진단을 받기도 해요. 하라는 대로 했더니 그건 잘못된 거다, 너무 의존적이다 라고 비난을 퍼붓는 거죠. 반대로 의존성이 부족한 여성들에게는 이기적이다라든가 저 밖에 모른다고 비난해요. 즉 여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중구속에 갇혀 있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건강한 정신으로 온전하게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 결국 여성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이중구속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를 자기 자신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스스로를 존중하며 살아가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요?

"
저는 우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먼저 안 사람들이 글로 정리해 준 걸 읽어야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도식들을 깰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게 되겠지요. 여성들의 상태를 설명해줄 수 있는 언어를 알고, 지금 나의 상태는 내 잘못이 아니라 사회와 연결된 데서 온 것임을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그 다음엔 공부한 걸 다른 여성들과 나누는 거예요. 여자들끼리의 대화는 서로의 틀을 깨주고, 내가 이해한 것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해주고, 이중구속을 인지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게 해주죠.

또 다른 하나는 여자를 위한 것들을 하루에 한 가지씩 실천하는 거예요. 이 책을 내기 전에 독립출판물 <여자 프렌들리>를 텀블벅 후원 받아서 출간한 적이 있었어요. 친구랑 여자를 위한 무언가를 하자는 취지에서 여자들에게 다정한 이야기를 하는 책을 기획했는데 정말 많은 여자들이 후원을 해주고 손을 내밀어 주었어요. 그 때 저는 매일 여자들을 위해서 사소한 것 한 가지를 하자고 마음 먹었고 실천하고 있어요. 길에서 만난 여자를 도와주기도 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고민을 호소하거나 공격받는 여성들에게 따뜻한 댓글을 달아주기도 해요. 온라인에서 고민을 토로하는 여자들의 글을 보면 참 속상한 지점이 있어요. 바로 '자책'을 너무 많이 한다는 거예요.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폭력을 당해도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는 글들을 많이 봐요. 이럴 때 '네 잘못 아니다. 다른 사람, 이 세상을 탓해도 된다'고 격려해주는 댓글 한 줄은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믿어요."
 
 신지수 작가는 남성의 관점으로 정의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은 여성들을 이중구속에 시달리게 한다고 말한다.
 신지수 작가는 남성의 관점으로 정의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은 여성들을 이중구속에 시달리게 한다고 말한다.
ⓒ 연남책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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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상태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 여성들이 있을 거예요. 정신과 병원을 찾는데 용기가 필요한 여성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이런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저 역시 환자로서 정신과 병원을 찾는 일이 편하지는 않아요.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긴장도 되고 오묘하고 복잡한 기분이 들지요. 하지만 치료를 받으면서 달라진 점들을 생각하면 이런 불편감 정도는 견딜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진료실에 들어갔다 나오면 어떤 이름을 갖게 될 확률이 높고, 그건 그 이름을 가진 다른 동지들이 생겨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이름을 가진 동지들이 엄청 많이 생기고,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진료실 안에는 혼자 들어가지만, 저처럼 치료를 받고 있는 많은 동지들이 진료실 밖에서 당신을 응원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진단을 받고 해당질환의 커뮤니티에 가입해보는 것은 큰 힘이 될 때가 많습니다. 성인 ADHD 같은 경우는 '에이앱 (https://a-app.co.kr)'같은 웹사이트를 추천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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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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