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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교 다리 인근에서 홀로 살고 계신 73살의 A 어르신은 기초생활수급자다.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지원을 받는 것이 수입의 전부. 그래도 건강이 허락했던 3년 전에는 매일같이 폐지나 고물을 모아 판 돈 몇 푼이라도 벌었다. 하지만 허리를 다쳐 수술을 했고, 더 이상 폐지나 고물을 모으러 다니지 못한다. 1종 수급자여서 병원비가 들지 않았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이제 이웃들이 모아주는 고물이나 재활용품을 모아 한 달에 두 어번 내다 판다. 한번에 4천 원에서 5천 원 정도를 받으니 한달 2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이 A 어르신의 한 달 가외 수입의 전부다. 이것도 작년에 비하면 2배 이상이 뛴 것이다. 폐지와 고물값이 오른 덕이다.

#2 벽산 아파트 근처 연립주택에 사는 B 어르신은 77세다.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외에는 마땅한 수입은 없다. 지금은 수십 년 전 마련한 연립주택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오래된 집이 재산으로 잡혀 있어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은 아니다. 당진의 주택가격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평생 살아 온 집을 팔고 나가기에는 부부의 나이가 너무 많다.

다행히 B 어르신은 나이에 비해 건강한 덕에 새벽 2시부터 종이박스 수집에 나선다. 이른 아침에는 손수레에 담아 100kg이 넘는 종이박스를 모아서 고물상에 넘긴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오전에 30kg, 오후에 30kg 정도의 종이박스를 수집한다.

그렇게 손에 쥐는 돈은 하루 약 2만 원. 지난해 같으면 같은 양의 종이박스가 9천 원도 채 되지 않았으니 2만 원은 이제 제법 큰 돈이다. 요즘 같은 무더위 아래에서도 현금으로 바로 손에 쥘 수 있는 2만 원을 포기할 수 없어 B 어르신은 계속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당진어시장을 돌며 폐지를 줍고 게신 어르신의 모습.
▲ 폐지 줍는 어르신 당진어시장을 돌며 폐지를 줍고 게신 어르신의 모습.
ⓒ 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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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와 함께 끝없이 올라가는 것은 무더운 날씨뿐만이 아니다. 기름값이 올랐고 폐지 가격 역시 올랐다. 흔히 종이박스라고 하는 폐골판지 가격은 작년에 비해 2배 가량 오르고 있다.

환경부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서 공개한 지난 6월 폐지(폐골판지) 1kg당 가격은 충남이 128원. 이는 작년 6월의 가격인 63원보다 약 51% 가량 오른 가격이다. 72원 가량이었던 올해 1월과 비교해도 44% 가까이 올랐다. 환경부 공개자료대로 실제 당진 시내 지역 고물상에서 매입하는 가격은 120~130원 대다.

오른 가격 덕분에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수입이 늘었을 거라 짐작하기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코로나로 매장에서 배출하는 종이박스량이 확연히 줄었다.

종이박스가 늘어난 곳은 아파트의 택배 박스다. 하지만 아파트에는 어르신들이 들어가지 못하니 수거 대상은 아니다. 당진전통시장과 원룸촌 등에서 배출하는 폐지와 고물 등이 수거 대상이다. 

트럭을 이용한 수거자도 어르신들에게는 경쟁자다. 일정하지는 않지만 트럭 한 대가 수거하는 종이박스는 대략 500kg~600kg. 시세가 올라 트럭 한 대가 들어오면 고물까지 포함해 보통 6만 원에서 8만 원대를 벌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름값을 빼더라도 수입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종이박스 가격이 낮을 때는 없었던 '트럭 수거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트럭을 이용한 수거자들 역시 대체로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종이박스 자체를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자전거나 손수레를 사용하는 상대적으로 더 나이든 어르신들의 어려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당진에서 고물상을 하고 있는 C씨는 "평년에 남자 어르신 한 분이 150kg을 가져왔다고 하면 지금은 100kg 정도 가져오시기도 힘들다. 여자 어르신들은 40~50kg을 들고 오신다. 그래도 작년보다 폐지 가격이 워낙 올라 어르신들 수입은 나아졌다. 하지만 그 줄어든 박스 배출량 때문에 같은 양을 수거하기 위해서 더 오랜 시간 박스를 줍기 위해 다니신다"라고 말했다.

노인빈곤과 노인노동 사이

2021년 6월 기준으로 당진 지역 내 65세 이상 어르신은 3만1909명이다. 이 중 기초생활 생계급여를 받는 어르신은 1851명이다. 당진 지역 내 5.8%의 어르신이 최저생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이야기다. 생계급여 지급 기준은 1인 가구일 시 548,349원이고 2인 가구는 92만6424원. 다른 소득(기초연금 등)이 지급된다면 생계급여가 깎이는 구조다.

박노문 당진시 노인복지팀장은 "기초생활수급자이신 어르신들이 그 이상의 수입이 필요한 경우라면 일선 복지팀에서 그 수요를 조사해 지원해야 한다"며 적극적인 복지행정의 역할을 말했다.

하지만 폐지를 모으러 다니는 어르신들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초생활 수급자이신 어르신들 상당수는 이미 노동력 자체를 상실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된 노동에 참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 

그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으나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노인들이 일상 유지를 위한 '수입'을 위해 돈벌이에 나선다고 보는 것이 현실에 가깝다. 

언론에 보도된 국민연금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독거노인이 한 달에 필요한 생활비는 129만3000원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이 형성돼 있지 않은 노령층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일 수밖에 없다보니 노인노동은 폭염과 혹한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

전문직이 아닌 평범한 노인 일자리는 한정돼 있다. 직장이 아닌 폐지줍기와 같은 돈벌이에 나서는 이유다. 당연히 공공부문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의 선호도가 높다. 

당진의 경우 공공부문에서 제공하고 있는 2021년 노인일자리는 2397개다. 받을 수 있는 급여가 많다고 할 수 없는 금액을 받기 위한 어르신들의 지원 경쟁은 치열하다. 하지만 이런 일자리에 기초생활수급 대상 어르신들은 지원할 수는 없다. 중복 지원으로 인한 소득역전이 우려되기 때문이라는 것.

2017년도의 조사에 따르면 일을 하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이 31%에 달한다.(통계청, 2021) 그리고 대한민국의 노인 빈곤율은 44%에 달한다.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당진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 역시 이미 19%를 넘어서고 있다. 이미 고령 사회이며, 20%가 기준인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당진시의 보다 적극적이고 세심한 노인복지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당진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폐지, #노인노동, #노인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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