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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강원 화천군 간동면 도송리에서 농민들이 애호박을 산지 폐기하고 있다. 강원지역 농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애호박 판로가 막혀 가격이 폭락하자 300t 규모의 산지 폐기를 진행하고 있다.
 25일 강원 화천군 간동면 도송리에서 농민들이 애호박을 산지 폐기하고 있다. 강원지역 농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애호박 판로가 막혀 가격이 폭락하자 300t 규모의 산지 폐기를 진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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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말이 되나 싶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 지금까지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그런 일이 분명 있다. 농산물의 산지 가격과 소비자가 사이의 당최 납득할 수 없는 차이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8㎏ 한 상자가 50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1000원짜리도 수두룩합니다. 지금 팔아봤자 박스 값도 나오지 않습니다." 

지난 26일, 인터넷 포털에 애호박 관련 기사가 종일 화제였다. '8㎏들이 애호박 한 상자가 500원까지 떨어졌다며, 팔아봐야 상자값도 안 나온다는 농민들의 애끓는 목소리를 실었다(<한겨레>, "박스값도 안 나와요"…한 상자에 500원 애호박 '눈물의 폐기'). 애호박 최대 주산지인 강원도 화천군이 가격 폭락에 자율 감축, 곧 폐기 처분에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14%가량 늘었는데, 코로나로 소비가 부진하면서 가격이 무려 40% 이상 폭락했다. 작년부터 학교 급식이 중단된 데다 방역지침의 강화로 외식이 뜸해지면서 식당에서의 소비가 현격히 줄어든 탓이다. 그렇다고 여느 농산물처럼 장기간 저장도 쉽지 않다.

천만다행으로, 보도가 나가자마자 화천산 애호박을 사려는 주문이 폭주했다고 한다. 당장 폐기 처분을 멈추고 주문 물량을 맞추기 위한 손길이 바빠졌다는 희소식이다. 단 하루 사이에 주문량이 무려 112t에 이르렀는데, 이는 내달까지 폐기하기로 한 213t의 절반이 넘는 양이다. 

애호박 한 개 값으로, 50kg을 살 수 있다니 

같은 시간, 난 애호박 등 찬거리를 사기 위해 가까운 마트를 찾았다. 채소 가격이야 날씨에 따라 등락이 심하다지만, 요즘엔 채소별로 유독 널뛰기가 심해 하나를 사는 데도 몇 번을 집었다 놓았다 한다. 연이어진 폭염에 지금 상추는 '금추'고, 대파는 '금파'다. 

여기저기서 물가 대란 운운할 만큼 채소 가격이 심상찮은 요즘이다. 방역지침만 아니라면 차라리 외식하는 게 더 싸다고 생각될 만큼 밥상 물가가 부담스럽다. 그 흔한 달걀찜이나 된장국 하나 끓이는 데도 파나 애호박의 절반을 덜어내야 하나 싶을 정도다.

마트에서 무농약 친환경 애호박 가격은 개당 3190원. 화천산 애호박은 8kg 한 상자에 500원. 물론 내가 산 것은 무농약 친환경 농산물이라 가격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건 해도 너무 한다 싶다. 내가 산 친환경 애호박 한 개 값으로 화천산 애호박 50kg을 살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이미 텅 빈 진열대의 다른 애호박 가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작은 것이 개당 1200원 안팎. 가격 폭락으로 산지 폐기 처분한다는 게 가짜 뉴스처럼 여겨질 만큼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다. 사실 상추나 대파 등 다른 채소 가격이 워낙 비싼 까닭에 도드라지지 않았을 뿐이다.   
  
 제가 오늘 마트에 가서 구입한 친환경 애호박. 개당 가격이 3,190원. 강원도 화천군에서 가격 폭락으로 산지 폐기 처분한다는 소식을 접한 뒤, 부러 다시 가서 찍었습니다.
 제가 오늘 마트에 가서 구입한 친환경 애호박. 개당 가격이 3,190원. 강원도 화천군에서 가격 폭락으로 산지 폐기 처분한다는 소식을 접한 뒤, 부러 다시 가서 찍었습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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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대학 재학 시절 농활 갔을 때가 떠올랐다. 낮에는 무논에서, 축사에서, 배추밭에서 땀 흘려 일하고, 밤에는 실제 농민들의 삶에 대해 듣고 배우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때 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턱없이 낮은 산지 농산물 가격에 대한 불만이었다. 

건장한 대학생이 들기에도 묵직한 배추 한 포기의 당시 산지 가격이 200원이 채 안 됐다. 놀랍게도 소비자가는 2000원이 훌쩍 넘었다. 수익은커녕 수확 후 트럭에 싣는 인건비조차 감당이 안 돼 애지중지 키워낸 배추를 갈아엎는 일을 일손을 돕는답시고 했던 시절이었다. 

그때까진 무지했다. 농산물이 산지에서 도매상과 소매상을 거쳐 소비자에 전해진다는 건 상식이지만, 유통 과정에서 열 배도 넘는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는 건 설마 했다. 중간 상인들의 이윤과 운송료가 농산물 가격보다 비싸다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이라 여겨서다. 

그때 농민들은 복잡한 유통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등 농산물의 유통 과정을 간소화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원인도 해법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 모든 것이 그저 '시장의 원리'인가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공정무역 커피가 사회적 이슈였다. 다국적 기업이 장악한 커피의 유통 시스템이 커피 농장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환경을 파괴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사회 운동이었다. 직거래를 통해 유통 과정의 거품을 빼고 커피 농장의 생산 원가를 보장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당시 우리가 카페에서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면, 고작 25원이 커피 재배 농민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커피 가격의 무려 99.5%가 운송료와 가공비, 중간 상인과 판매자의 이윤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도 문제는 다국적 기업이 틀어쥔 유통 시스템이었다.

공정무역을 통해 커피 농장의 노동자는 정당한 노동력의 대가를 받을 수 있고, 착취에 의한 환경 파괴도 막을 수 있다.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스스로 윤리적 소비자임을 인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아가 국경을 넘어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생을 도모하는 방책이 됐다. 

이처럼 겪을 만큼 겪었고 배울 만큼 배웠는데도, 산지 가격과 소비자가가 천양지차인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산지에서는 가격이 폭락했다며 멀쩡한 농작물을 갈아엎고, 소비자들은 너무 비싸서 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저 '시장의 원리'라고 눙칠 수 있을까.

3190원짜리 애호박을 썰어 된장국에 넣으려니 은근히 화가 났다. 남보다 비싸게 사서 손해를 봤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리 시장이 모든 걸 결정하는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수십 배의 가격 차이를 용인할 수 있을 만큼 시장의 역할이 중요한지 의문이 들어서다. 

자칫 오해를 살까 두렵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8kg 한 상자에 500원인 애호박을 몇 배로 부풀려 판매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시장에서 수요가 없으면 가격은 내려가기 마련이지만, 법칙은 왜 생산자에게만 적용되는가. 마트의 애호박은 예외인가.

강원도 화천군이 보여준 것처럼, 농민의 참담한 현실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리 없다. 오늘도 모두가 전가의 보도처럼 복잡한 유통 구조가 소비자가를 올리는 주범이라며 한마디씩 거들고 있다. 과연 정부의 시장 개입 없이 시민들의 합리적인 소비만으로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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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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