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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방울토마토 모종 10개를 사다 화분에 심었다. 아침마다 '어화둥둥 내 사랑아'를 부르며 물을 주는 시간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키가 쑥쑥 자랐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철사로 된 옷걸이를 펜치로 자르고 펴서 지지대를 세웠다.

내 정성에 기대 토마토가 똑바로 자라는 모습을 보는 건, 심성이 올바르게 커가는 자식을 보는 기분이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토마토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왜 심었냐고? 22살이 된 아들이 키워보고 싶다고 해서다.

22세 아들이 벌인 베란다 농사

아들은 큰 모니터를 정중앙에 켜두고, 왼쪽에는 태블릿, 오른쪽에는 노트북, 무릎에는 휴대폰을 올려두고 밤낮없이 바쁘다. 흡사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가 아닐까 싶지만, 세계 주식시장과 가상화폐에는 관심 없다.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와 치료 중인 아들은 화상 수업이 끝나면 주로 게임과 음악, 영화, 유튜브를 보고 있다.

어느 날 나는 엄마 노릇을 하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 아들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라고 했더니 아들 왈, 글은 엄마가 쓰시고 자기가 떡을 썰겠단다. 가래떡을 잘라 떡볶이를 하겠다고. 순간 떡볶이가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글 쓰는 일은 내 일이니까 그러라고 했다. 음… 이 찝찝함은 뭐지? 하여튼 그런 아들이 토마토를 키워보고 싶다고 하니 말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왼쪽부터 감자꽃, 감자 열매, 수확한 감자.
 왼쪽부터 감자꽃, 감자 열매, 수확한 감자.
ⓒ 문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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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보다 아들은 토마토에 진심이었다. 시작만 같이하고 다 내 일이 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말이다. 때마침 싹이 나서 버려야 하는 감자가 있었는데, 아들이 인터넷을 보고 알아낸 정보에 따라 큰 화분에 이 감자도 심었다.

덕분에 감자꽃이 이쁜 줄 처음 알았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열리는 것도 알았다. 물론 이 열매는 먹지 못한다. 외려 뿌리로 가는 영양분을 뺏을 수 있어서, 줄기는 잘라주는 게 좋다는 농부 친구의 조언을 듣고 줄기를 자르는데 왠지 손이 부들부들(이 죄책감은 뭐지?).

토마토 키가 너무 자라 지지대를 높게 했더니 무게 중심이 무너져 잎새에 이는 바람에 넘어지고 말았다. 진딧물 같은 것도 보였다. 큰 화분과 흙을 주문하고 비료와 친환경(?) 농약도 주문했다. 이제 슬슬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고 있다.

흙과 큰 화분이 도착하자 아들과 나는 커다란 김장 비닐을 베란다에 깔고 분갈이를 시작했다. 똥손인 아들과 나는 네 손이 합쳐도 웬만한 두 손만 못하다. 그러다 보니 입만 시끄럽다. 여길 잡아라, 저길 잡아라, 내가 줄기를 잡을 테니 네가 흙을 더 부어라 마라, 누가 들으면 인테리어 공사라도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큰 화분에 겨우 옮겨심고, 베란다 천장에 달린 빨래 걸이에 명주실을 매달아 줄기를 세워 묶었다. 아들 돌잔치에 돌잡이로 놨던 명주실을 이런 용도로 쓸 줄이야. 
 
데롱데롱 매달린 방울토마토와 내 방 창문 앞 풍경.
 데롱데롱 매달린 방울토마토와 내 방 창문 앞 풍경.
ⓒ 문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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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는 이제 천장에 닿을 정도로 키가 커버렸다. 더는 방법이 없으니 이대로 살아야 한다. 처음 방울토마토 딱 한 개가 익었을 때, 콩 한 조각을 나눠 먹는 심정으로 열 십자 모양으로 4등분을 해서 한 조각씩 입에 넣었다. 우린 4인 가족이니까. 맛을 느끼기보다 헛웃음이 나왔다. 원래는 집안에서도 거리두기를 하느라 잘 모이지 않은 편인데 이 작은 게 우릴 한데 모았다.

가장 좋은 점은 빨래 걸이가 내 작업실 창문 바로 앞에 있어서 창문 너머 보이는 토마토 줄기가 이국적인 식물원 분위기를 내준다는 것이다. 여기 앉아 글을 쓰면서 뉴욕 재즈를 틀어놓으면 난 뉴요커가 되고, 파리 카페 ASMR를 켜 놓으면 파리지앵이 된다. 비라도 내리는 날에 사극풍 OST를 틀어놓으면 조선시대 시간 여행도 프리패스다. 꼼짝할 수 없는 이 시기에 얼마나 유용하고 아름다운 선택인가.

베란다 농사만큼이나 공들인 책
 
다락방 클래식
 다락방 클래식
ⓒ 문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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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 바가지의 토마토를 땄다. 놀랍게도 이 세상 달콤함이 아니다. 창문 앞에는 지금도 방울토마토 몇 개가 익어가고 있다. 보고 있자면 마음이 이유 없이 풍성해진다. 내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소식이 하나 더 있다. 작년까지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클래식 기사들을 모아 책이 나왔다. 제목은 <다락방 클래식>.

벌써 세 번째 책이다. 감격보다는 글에 대한 책임감이 더 커짐을 느낀다. 3년이 넘는 시간을 쉬지 않고 미술, 사는이야기, 음악 기사를 연재했다. 지면을 기꺼이 내어주신 오마이뉴스, 고맙습니다.

감자도 토마토도 사실 기울인 정성에 비하면 수확은 보잘것없다. 하지만 내겐 여느 농작물에 비할 수 없이 소중하고 특별하다. 키우는 동안 마음을 주고 정성을 쏟았으니까. 책도 그렇다. 클래식에 관한 더 훌륭한 책들이 많을 테지만, 쓰는 동안 정보와 감동을 전달하고자 온전히 마음을 쏟았다. 읽는 사람들에게도 그 마음이 닿았으면 하는 소심한 바람을 가져본다.

내가 애정하는 시인 윤동주 님은 서시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쓰셨다. 바람에 흔들리는 토마토를 보며 같은 마음을 가져본다.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 성실히 더 깊은 사유가 담긴 글을 써야겠다고.

코로나도 극성인데, 날씨까지 한술 더 뜬다. 힘든 사람들이 점점 더 힘들어져서 걱정이다. 내 글이 지친 어느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휴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덧붙이는 글 | 책이 나오는 이 시점에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내 글의 최초 독자이자 멋지게 편집해주신 최은경 기자님, 부족한 날 처음부터 지지해주신 이주영 기자님, 응원의 글을 보내 주신 독자분들, 고맙습니다.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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