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30 12:41최종 업데이트 21.07.30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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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안산 여자 양궁대표 안산이 25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 경기에서 활을 쏘고 있다. ⓒ 연합뉴스

 
도쿄 올림픽 여자 양궁에 출전한 안산 선수의 머리 모양을 두고 말이 있는 모양이다. 광주여대에 재학 중인 그의 숏컷 머리를 향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페미니스트 아닌가요", "여대에 숏컷, 페미니스트 조건을 갖췄다", "정치성향 다 떠나서 페미는 극혐이라 저는 안산은 응원 안한다", "페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등등의 반응이 표출됐다.

지난 3월에도 안산 선수는 "왜 머리를 자르나요?"라는 질문을 SNS에서 받았다. 이에 대한 안산의 반응은 이랬다. "그게 편하니까요."


여성의 단발에 대한 일부 남성의 부정적 태도는 2019년 9월 24일 '일간베스트저장소'에 실린 '한국 여자들이 지난 10년간 잃어버린 것'이라는 글에도 반영되어 있다. 30일 오전 6시 30분 현재 916명의 추천과 72명의 비추천을 받은 이 글은 "그것은 사랑스러움이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지난 10년간 잃어버린 게 바로 그것이라고 이 글은 주장한다.

이 글은 숏컷으로 인한 일종의 배신감을 제기한다. "여자 아이돌들도 배 따뜻하고 살 만하면 걸크러쉬니 뭐니 치명적이니 뭐니 바지 입고 단발 하고, 자진해서 여성으로서의 사랑스러움을 버린다"고 한 뒤 "이 사랑스러움을 버리는 것은 반강제적인 메인스트림이 되어" 있다고 말한다. 뒤이어 "잘 웃는 미소가 아름다운 햇살 같은 여자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고, 무표정에 신경질적인 여자들만이 살아남고 있다"고 한 다음 "대한민국에(서) 사랑스러운 여자는 멸종해가고 있다"고 탄식한다.

그런데 이런 지적과 반응들,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약 100년은 퇴행적이다.

성큼 잘너 버리십시오

기록상으로 등장하는 한국 여성 최초의 단발은 약 100년 전인 1922년에 있었다. 기생 강향난이 그 주인공이다. 애인에게 배신당한 강향난은 남자에 대한 의존을 버리고 남자처럼 살아보겠다며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 뒤 해외 유학을 다녀오고 기자가 되었다.

'모던걸'로도 불리고 '못된걸'로도 불린 '신여성'들이 전통적인 댕기머리를 자르고 단발을 선택하는 현상은 1919년판 촛불혁명에 적지 않게 힘입었다.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다 뛰어나와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3·1운동의 경험이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자신감을 부여한 결과였다.

2007년에 <사학연구> 제87호에 실린 한상권 덕성여대 교수의 논문 '1920년대 여성해방론 - 단발론을 중심으로'는 "3·1운동에서 크게 나타났던 민족의 힘은 남녀평등을 내세우고 여권 신장을 주장하는 운동으로 번져갔다"며 "더욱이 그것은 여성 계몽운동, 여성 교육의 확장이라는 실제적인 활동으로 나타났다"고 한 뒤 이렇게 설명한다.
 
이 중 인습타파와 관련하여, 여성을 봉건적인 압박에서 해방하기 위해 의식주 전반에 걸쳐 생활개선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가운데 1920년대 논쟁의 초점이 되었던 사회문제 중의 하나가 여성 단발이었다.
 

신여성 윤심덕(1897~1926). ⓒ 위키백과

 
단발령이 없었는데도 스스로 단발을 선택한 여성들은 여성해방이라는 목적의식을 갖고 그렇게 했지만, 단발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의 태도는 의외로 덤덤했다. 여성 단발이 세상을 망치고 있다는 식의 과도한 반발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2004년에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제6권 제2호에 수록된 전혜숙 동아대 교수와 임윤정 동아대 대학원생의 논문 '근대 여성사적 측면에서 본 단발의 사회적 변화'에서 그런 이들의 반응을 접할 수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20년대 언론 기사들에 등장하는 단발 반대론자들은 '머리카락을 자주 자르다 보면 소비가 늘게 된다', '단발 이후에 머리를 자주 감게 되면 시간적인 손해가 생긴다', '여성의 보배인 머리채를 자르는 것은 미(美)라고 할 수 없다',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을 위해 단발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해서 여자가 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등등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들이 여성의 단발을 반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까지 격렬하지 않았다. 단호하게 '안 된다'라고 하지 않고, '소비가 늘어난다'느니 '시간을 허비한다'느니 하는 구구한 논리들을 동원했다. 딱 부러지게 단발을 반대할 명분이 마땅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지지론자들은 평등이나 여성해방보다는 실용적 측면에서 응원을 보냈다. "그게 편하니까요"라는 안산 선수의 말처럼, 편리성을 높여준다는 이유로 단발을 지지했다.

당시의 미술평론가 안석주는 단발의 편리함을 지적한 뒤 "성큼 잘너 버리십시오"라고 권했고, 독립운동가 이상재는 "남자니 여자니 할 것 업시 머리를 깍는 것은 됴흔 일이오"라며 "위선(우선) 제 몸뎅이 하나만이라도 개죠(개조)를 해놓고" 보라고 권유했다.

또 <조선일보>에서는 건강 측면에서 단발을 추천하는 기사도 나왔다. "<조선일보> 신문에서는 '단발을 하면 긴 머리를 살리고 잇던 영양은 짤븐 머리에만 모히게 됨은 머리털을 위하야는 조흔 것입니다"라고 보도했다고 위 논문은 말한다.

신여성들을 가장 많이 접하는 여성학교 교육자들 중에는 단발을 적극 지지하는 이도 있었고, 지지도 반대도 하지 않는 이도 있었다. "여학교장들이 보는 단발에 관한 인식은 매우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단발을 개개인의 취미에 따라 하는 것이지 사회 전체가 따라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시각으로 나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논문은 말한다. '단발은 안 된다'며 적극 반대하는 여성학교 교육자들은 별로 없었던 셈이다.

여성학교의 남자 교장이라고 해서 반드시 여성해방론 지지론자는 아니다. 이런 이들이 오히려 더 보수적일 수도 있다. 이런 교육자들도 대체로 편리성의 측면에서 여성 단발을 바라봤다. 적극적 지지자의 반대편에는 적극적 반대자가 아니라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입장'이 있었다. 신여성을 가장 많이 접하는 남성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단발이 주는 실용적 이익이 생각 외로 많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편리하니까

단발을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극렬한 반대 논리가 나오지는 않았다는 점, 여성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장들이 적극 지지 혹은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은 여성 단발을 최초로 경험한 시대의 사람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시대 사람들은 전통적인 여성 헤어스타일과 새로운 여성 헤어스타일을 모두 다 경험했다. 그런 세대가 위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여성해방 여하를 떠나 새로운 스타일이 더 낫게 인식됐음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성 단발에 관한 논란은 1930년대로도 이어지지만, 단발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만한 설득력 있는 논리는 등장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100년 전의 논쟁은 단발 반대론자들의 패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1세기나 지난 오늘날에 와서 여성 단발에 관한 논란을 다시 일으키려 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는 느낌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 뒤 여성의 단발이 대세를 이루었으며, 단발을 하는 여성이나 지켜보는 사회가 이를 여성해방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주의·주장을 떠난 단발의 편의성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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