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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메타버스
 책 메타버스
ⓒ 플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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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을 열면 '메타버스'란 용어가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가상 혹은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죠. 김상균 교수는 자신의 책 <메타버스>에서 메타버스를 디지털화된 지구로 총칭하는데요. 이 책 <메타버스>는 디지털화된 지구가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체감하게 합니다. 

이 책은 메타버스의 영역을 4가지-증강현실, 라이프로깅, 거울 세계, 가상 세계-로 나누고 그 영역별 사례들을 통해 메타버스의 현상과 의미를 전달합니다. 코로나 이후 아이들의 원격수업에 이용되는 Zoom, 아이들이 좋아하는 온라인 게임 마인크래프트, 10대들의 놀이터 제페토, BTS팬이라면 모를 수 없는 위버스(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팬 커뮤니티 플랫폼), WoW, 포트나이트, 사이버펑크2077 같은 가상 온라인 게임 등의 사례들을 만날 수 있죠. 

특히 이 책은 저에게 '진짜 경험'을 불러왔습니다. 몸에 와 닿았다가 특별한 생각이나 감정으로 전환되는 과정 말이죠. 저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메타버스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찾아보고 책에 소개된 메타버스 가상공간에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40대 아줌마의 제페토 도전기
 
제페토Zepetto
▲ 제페토Zepetto 제페토Zepetto
ⓒ 현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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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0대들의 놀이터라 불리는 제페토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팔로워가 많은 초등생 조카 덕에 운 좋게 팔로워들을 바로 만들 수 있었죠. 제페토 월드에 들어가 게임을 하고 춤을 추고 사진을 찍고 자전거도 타며 놀았습니다. 현실에선 만날 수 없지만 아바타 세상에선 아무 때나 만나서 같이 놀 수 있습니다.

대면 접촉이 불완전해진 코로나 세상에선 이렇게 놀 수밖에 없는 건가 싶어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요. 그것 또한 저의 고정관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온라인 세상이 익숙한 아이들은, 때때로 아날로그 방식을 그리워하는 저 같은 세대와는 분명 다를 테니까요.

아이들은 이곳에서 아바타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중요한 건 이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고 불완전하더라도 그걸 실현시켜주는 것이 제페토에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페토에 들어가 본 후에야 초등생 조카의 제페토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논다는 건 단순히 오락에 빠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죠. 코로나가 아니어도 아이들은 언제나 놀고 싶어 했습니다. 어른의 시선에선 10대들의 메타버스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 전에 그들이 제페토에 있는 이유만큼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 이 책 202페이지에 소개된 온라인 게임 '댓 드래곤 캔서 That Dregon, Cancer'를 플레이 해보았습니다. 이 게임은 소아암으로 아들 조엘을 잃은 라이언 그린과 에이미 그린이 만든 게임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아픈 조엘을 돌보는 과정을 체험하기도 하고 조엘에게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부모의 입장에 놓이기도 합니다. 

요즘 이런 게임들을 소셜 임팩트 게임(Social Impact Game)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위안부' 이야기라든가 독립운동의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들이 이미 출시되어 있습니다. 게임에 왜 이런 스토리를 사용하느냐는 반대의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게임이 슬픔과 고통에 대한 공감을 주제로 삼거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선한 영향력을 주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발상의 전환이자 온라인 게임의 지평을 확장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사이트 시스템즈 Sight Systems라는 제목의 영상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이트 시스템즈는 이스라엘 디자인 학교 학생들이 졸업작품으로 제작한 영상인데요. 이 영상에서는 증강현실 렌즈가 남녀의 데이트 과정에 개입합니다. 상대의 호의를 얻기 위한 말, 행동, 표정 등을 지시하죠.

둘의 관계가 틀어진 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자는 무언가를 선택합니다. 그것 역시 증강현실의 기술을 이용한 것인데요. 저에겐 이 부분이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유튜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8분짜리 짧은 영상이지만 이것은 증강현실이 인간관계에 미칠 파급 효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그러나 염려되는 것도 있다

메타버스가 강력한 트렌드라고 해서 마냥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저자도 그 부분을 확실히 지적하고 있죠. 온라인 게임 '거상'에서 발생한 자원 독점 행위들이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고 있는 사례를 들기도 했는데요. 이밖에도 사용자들의 공격성 문제, 게임 아이템을 비롯한 디지털 데이터 소유권 논쟁, 가상 세계에서 인공지능을 (잔인하게) 대하는 인간의 도덕성 문제 등도 상존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 염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책의 끝부분에는 세계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아마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넷플릭스, 페이스북, 심지어 빅히트엔터테인먼트도 AWS(Amazon Web Service)의 클라우드를 사용한다고 하죠.

저자는 아마존을 '메타버스의 거대한 손'이라고 지칭했는데요. 분명 메타버스는 네트워크 자산과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의 엄청난 자금력과 투자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티스트들을 보유한 대형 기획사들과 IT 기업들이 이 메타버스에 빠른 속도로 올라타고 있죠. 메타버스를 아는 저같은 사람들은 메타버스에 들어가 '플레이'(Play)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 네이버 영화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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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발간된 <2050 미래사회보고서>는 미래 사회가 4개의 계급으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플랫폼 소유주(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플랫폼 스타(정치엘리트, 연예인, 예체능 스타), 인공지성(이 책에서는 인공지능을 인공지성으로 표현함), 그리고 플랫폼에 접속해서 살아가는 프레카리아트입니다. 문제는 프레카리아트가 전체 인구의 99.9%를 차지하고, 이들이 점점 더 가난해진다는 것이죠. 

그런데 2018년에 개봉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역시 비슷한 상상력에 기반해 있습니다. 식량파동과 인터넷 대역 폭동으로 빈민으로 전락한 많은 사람들이 우울한 현실로부터 도피해 오아시스라는 가상 세계에 접속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가상세계마저 장악하려는 거대 기업 IOI가 있습니다. 

이 가상세계 안에서 IOI와 IOI의 야욕으로 부터 오아시스를 지키려는 자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영화는 플레이어들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런데 이 전쟁의 과정과 결말은 가상세계 속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가상세계 속 전쟁이 어떻게 현실과 결부되어 있고, 또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지도 보여주죠. 아마도 이 영화는, 가상세계에서도, 현실에서도 선(善) 혹은 인간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승리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메타버스라는 새 세상, 기본으로 돌아가기

메타버스는 누구에게나 처음 열린 세상입니다. 메타버스에 올라탄 우리는 사용자이면서 동시에 크리에이터이기도 합니다. 플랫폼을 만들 자본을 누구나 가질 수는 없지만 우리에겐 상상력과 공감능력, 플랫폼을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채울 스토리텔링 능력이 있습니다. 특히 메타버스 세상에서 저보다 더 오래 살게 될 아이들을 생각하면, 모험과 상상력으로 가득한 그들만의 세상을 더 잘 지켜주어야겠다는 비장한 생각도 하게 됩니다.

메타버스를 알기 위해 이 책을 들었던 저는 이제 '기본'에 대해 생각합니다. 메타버스가 진화될 수록 우리가 인간을 이해하는 일에 더 성실해야한다는 것 말이죠. 디지털화된 지구를 채우는 건 인간입니다. 우리가 그곳에서 놀고 싶은 것도, 자본의 이기적 욕망과 전쟁을 선포하는 것도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실재하는 현실과 무엇이든 가능할 것만 같은 메타버스 세상 사이에서 '스스로' 균형을 찾는 열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기자 본인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https://blog.naver.com/fullcount99


메타버스 -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김상균 (지은이), 플랜비디자인(2020)


태그:#메타버스, #서평, #가상세계, #증강현실, #제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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