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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4일 오후 경기도 파주 미라클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4일 오후 경기도 파주 미라클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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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장으로서 법과 원칙을 지키며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임기 6개월을 남기고 감사원장직을 사퇴하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출마선언문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이랬다. 그가 감사원장직을 사퇴한 것은 지난 6월 28일. 그렇게 37일 만에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전직 고위 임명직 공무원의 입에서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는 출마의 변이 나온 것이다.

출마의 전제 자체가 현 정부의 '안티 테제'임을 숨기지 않은 최 전 원장은 현 정부를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으로 규정했다. 전후 맥락이나 선언문 전체의 기조를 따져봐도 바뀔 건 없었다. 그러니까 이전 정부까지 멀쩡했던 대한민국을 무너뜨린 것이 현 정부라는 최 전 원장의 출마선언문 속 문제의식은 "이 정부 반대로만 하면 부동산 풀린다"는 한 마디로 집약된다.

이 정부의 반대? 미안하지만 그 '반대' 정권의 수장들은 지금 줄줄이 구속수감 중이다. MB식 법치주의와 개발지상주의의 폐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 조사결과 속 꼴찌에 가까운 MB의 순위를 보라. 박근혜 국정농단을 단죄한 것도 촛불을 든 국민이었다. 그렇게 '박정희 이데올로기'와의 결별과 청산이 이뤄졌다.

그렇다면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되살리겠다는 최 전 원장의 지향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출마선언 당일 최 전 원장측이 공개한 한 장의 사진에 단서가 담겨 있었다. 가족 명절 모임에서 온 가족이 국민의례를 하는 사진을 공개한 최 전 원장은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다"고 부연해 많은 이들을 경악케 했다. 그 누구라도 전체주의를, 국가주의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게 수십 년 된 건 아니고요. 몇 년 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애국가를 끝까지 다 부르자, 그렇게 해서 시작하게 됐죠(...). 국가주의, 전체주의는 아니죠. 나라 사랑하는 거하고 전체주의하고는 다른 말씀 아닙니까? 저희 집안 며느리들은 기꺼이 참석하고 또 아주 같은 마음으로 애국가 열창했습니다."
- 최재형 전 원장, 5일 CBS 라디오 인터뷰 중


퇴행을 뛰어넘는 준비 부족

적지 않은 이들이 영화 <국제시장>을 떠올렸다. 1980년대까지 평일 매일같이 국기 하강식을 하고 국기에 경례를 했던 그 국가주의의 전제와 군사정권의 폐해를 말이다. 이러한 최 전 원장의 국가관은 최근 논란을 자처했던 "일자리 빼앗는 최저임금 인상은 범죄"(지난달 31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라는 노동관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헌법이 정한 최저임금 보장 정책을 '범죄'라 몰아세우는 이러한 최 전 원장의 노동관은 얼핏 노동자들을 기계처럼 인식하는 퇴행적 사고라 볼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그런 법률가 출신 정치인은 또 있었다. '주 120시간 노동' 발언으로 역시나 물의를 빚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 말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앞서거니 뒤서거니 국민의힘에 입당한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이 꽤나 겹쳐 보인다. 둘 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법률가 출신이다. 현 정부에서 고위직 공무원을 역임했으나 중도 사퇴한 것도, 현 정부의 탈원전 관련 수사를 합작한 것도, 뒤이어 나란히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도 공통점이다.

윤 전 총장이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 항명으로 몇 년간 좌천됐을 뿐 둘 다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 잘 나가던 법률가였다. 또 최 전 원장은 1956년생, 윤 전 총장은 1960년생으로 두 사람 모두 1970~80년대에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를 거쳤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출마 선언 전후 최 전 원장은 '예상보다 훨씬 더 극렬한 보수'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는 헌법 가치를 가장 잘 지킨 대통령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꼽았다. 애초 '중도'를 아우르겠다던 윤 전 총장은 연일 극우와 다를 바 없는 언사로 입길에 오르는 중이다. 두 사람이 지난해까지 '태극기 부대'를 품었고 이준석 대표 취임 이후 젊은 보수에게 손짓 중인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은평갑 당원협의회를 방문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은평갑 당원협의회를 방문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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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의 조국 일가족 강제수사에 대해서도 둘은 뜻을 같이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일명 '시무 7조'로 유명해진 논객 조은산씨는 3일 자신의 블로그에 윤 전 총장을 만났다며 '조국 수사는 정의도 아니고 정치도 아니었다. 그건 상식이었다'는 윤 전 총장의 전언을 공개했다.

최 전 원장도 5일 한 인터뷰에서 "조국 사태는 당시 검찰에서 제대로 수사를 하고 기소를 했던 것 아닌가"라는 뜻을 내비쳤다. 2년 전 서초동에서, 여의도에서 '검찰개혁'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반길 만한 평가는 분명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퇴행의 흔적을 뚜렷이 느끼는 것은 바로 여성들이다. "페미니즘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던 윤 전 총장의 발언은 분석부터 발언 그 자체까지 문제 투성이었다. 최 전 원장의 가족 모임 사진이 공개된 직후 인터넷 상에서는 '나는 저기 며느리로는 못 갈 것 같아'와 같은 비난 글이 쇄도했다.

두 사람이 입당한 국민의힘에 대한 여성들의 지지율이 고르게 하락 중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처럼 여러모로 공통점을 공유하는 두 법률가 출신 정치초년생의 진짜 문제는 본인들이 자처하는 '퇴행의 정치'조차 아직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 누구도 등 떠민 적 없다

"부족함이 있었다는 점은 솔직히 인정하지만 감사원장 마치고 또 저희 아버님 장례 치르고 제가 정치에 입문한 지 한 20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제가 마치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정책 이런 거를 제시했다면 저 사람 감사원에 있으면서 정치할 준비를 했나, 이렇게 또 보시지 않았겠습니까? 앞으로 기대해 주십시오."
- 5일 최재형 전 원장, CBS 라디오 인터뷰 중에서


전날(4일) 비대면 기자회견에서 '준비가 안 된 것 아니냐'는 돌직구 질문에 당황해하던 최 전 원장이 내놓은 변명은 이랬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준비가 안 된 것을 양해해 달라"며 여러 번 사과 아닌 사과를 했던 최 전 원장을 과연 '준비된 대통령 후보'로 여길 이가 얼마나 될까.

'검증의 시간'이 우선일 것 같던 윤 전 총장의 경우는 어떤가. 여권으로부터 '연쇄 망언범'이란 별명을 득한 윤 전 총장은 '주 120시간 노동'에 이어 '부정식품' 발언 등 1일 1사고를 자처하며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을 국민들 모두에게 되새기는 중이다. 또 5일엔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는 <부산일보> 인터뷰 발언이 문제가 돼 윤 전 총장 캠프가 해명에 나서야했다. 연일 언론 보도를 장식하는 논란에 대한 해명마저 의뭉스럽기 짝이 없다. '주위에서 들은 것'이라거나 '책에서 본 것'과 같은 윤 전 총장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들을 이들이 얼마나 될까.

누구도 두 사람에게 정치 일선에 나서라고, 대통령에 출마하라고 등 떠민 적도 없다. 두 정치초년생의 활약 앞에 '차라리 박근혜는 준비된 정치인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싶다. 5일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의 페이스북 촌평은 시민들에게 설득력이 있다. 

"한분은 하시는 발언마다 갈팡질팡 대변인 해설이 붙고 진의가 왜곡 되었다고 기자들 핑계나 대고, 또 한분은 준비가 안되었다고 이해해 달라고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국정은 연습도 아니고 벼락치기 공부로도 안 되는 겁니다."

태그:#윤석열, #최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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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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