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09 07:18최종 업데이트 21.08.0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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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유명 쇼핑센터인 선택시티. 토요일 점심시간임에도 봉쇄조치로 인해 문을 닫은 가게가 많고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입구에는 체온측정 및 방문기록 확인을 담당하는 직원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 이봉렬

 
지난해 8월 이후 아홉 달 이상 코로나19 일일 확진자를 한자리 수 이하로 관리하면서 세계 최고의 방역모범국(<블룸버그>가 4월에 발표한 코로나 회복성 순위에서 1위)으로 불리던 싱가포르. 하지만 델타변이 바이러스 유입으로 인해 다시 확진자가 증가했고, 그로 인해 올 해에만 두 번이나 봉쇄를 해야 했습니다.

두 번의 봉쇄

첫 번째 봉쇄는 지난 5월 16일이었습니다. 싱가포르의 한 종합병원을 시작으로 공항과 이민국까지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코로나 클러스터가 늘어나자 싱가포르 정부는 집합 최대인원을 2명으로 줄이고, 모든 식당의 문을 닫고 포장 및 배달만 허용하는 조치를 내렸습니다. 봉쇄 첫날의 지역감염 확진자 수는 38명. 우리 입장에서는 큰 숫자가 아닌 듯하지만 싱가포르는 인구가 580만 명인데다 그동안 계속 한자리 수 이하로 관리가 되던 터라 일일 확진자 수 38명은 큰 위협으로 느껴졌습니다.

봉쇄가 해제된 건 4주 후인 6월 14일. 하지만 이때도 모임이 가능한 인원이 다섯 명으로 바뀌었을 뿐, 실제로 식당이 문을 열고 최대 다섯 명까지 외식이 가능해진 건 봉쇄 후 5주 후인 6월 21일부터였습니다. 봉쇄를 해제할 당시 일일 확진자 수는 10명 수준이었고, 이후 날이 갈수록 확진자 수는 줄어들어 7월 초에는 확진자가 없는 날도 있었습니다.
 

싱가포르 코로나 확진자 추세. 1차 확산에 비해 다섯 배 이상의 확진자 급증을 보여준 2차 확산. 8월 10일부터는 확진자 수가 아직 높은 수준임에도 봉쇄를 해제하기로 했습니다. ⓒ 이봉렬

  
그러다 7월 중순 KTV(유흥업소)와 수산시장에서 다수의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수산시장과 연결된 감염자가 3주 동안 1천 명 넘게 나오면서 싱가포르 최대의 코로나 클러스터가 되었습니다.

결국 7월 22일, 봉쇄를 해제한 지 한 달 만에 다시 2차 봉쇄를 단행해야 했습니다. 식당은 다시 문을 닫았고, 모임이나 행사가 축소되었습니다. 2차 봉쇄 첫 날의 확진자 수는 162명입니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 초기에 싱가포르 전체를 멈춰 세웠던 서킷브레이커 기간에도 100명을 넘은 적이 없었던 것에 비교하면 이 숫자가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지난 8월 6일, 싱가포르 정부는 애초 8월 18일까지라고 했던 봉쇄기간을 8월 9일까지로 바꿔 10일부터 봉쇄를 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발표 당일 확진자 수는 93명으로 이것만 보면 아직 봉쇄를 풀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지난 5월에는 일일 확진자 수가 38명 나왔다고 봉쇄를 단행했던 싱가포르가 8월에는 93명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봉쇄를 풀겠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직 확진자 많은데... 왜?
 

싱가포르 백신접종률. 지난 해 12월말 이후 8개월 만에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백신을 맞았습니다. ⓒ 싱가포르 보건부

 
그건 바로 달라진 백신접종률 때문입니다. 5월 1차 봉쇄 당시 싱가포르의 백신접종률은 1회 이상의 경우 33.3%, 완전 접종은 22.8%였습니다. 작년 말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백신을 도입한 나라가 싱가포르지만 5개월 동안 이뤄진 백신 접종은 기대만큼 높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봉쇄를 해서라도 막지 않으면 코로나 감염이 어느 수준까지 가게 될지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2차 봉쇄를 해제하기로 한 8월 7일 현재 접종률은 1회 이상의 경우 78%, 완전 접종은 67%로 싱가포르 독립기념일인 8월 9일까지 전체 인구의 3분의 2 이상 완전 접종을 하겠다는 목표를 이미 달성했습니다. 특히 코로나에 취약한 70세 이상 노인의 경우 완전 접종 비율이 76%에 달합니다. 이 상황에서는 봉쇄를 하지 않더라도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그리 크지 않고, 대신 봉쇄가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갈수록 커지기 때문에 봉쇄 해제를 선택하는 게 더 큰 이익이라는 게 봉쇄 해제의 이유입니다.

흥미로운 사실들

싱가포르 보건부의 코로나 현황 자료를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 도표는 최근 28일 동안 코로나 확진자 현황입니다(8월 7일 기준). 전체 코로나 확진자 중 완전 접종자가 1133명(42%)로 가장 높습니다. 그 다음이 1차 접종 완료자 868명(33%)이며,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665명(25%)으로 가장 낮습니다.
 

전체확진자 중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의 수가 가장 많습니다. 이는 인구의 67%가 접종을 완료했기 때문입니다.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에 안 걸리는 게 아니라 덜 걸리는 겁니다. ⓒ 이봉렬

 
이 도표만 보고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에 더 많이 걸린다고 해석하면 곤란합니다. 전체 인구 중 백신접종자 비율이 높아서 발생하는 착시입니다. 백신 완전 접종 비율은 67%인데 전체 확진자 중 완전 접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42%입니다. 델타변이 바이러스가 주 감염원이 된 후로는 백신을 맞은 사람도 코로나에 걸리는 경우가 크게 늘었지만, 그래도 백신을 맞지 않은 경우보다는 덜 걸린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백신이 코로나를 예방하는 게 아니라 그냥 덜 걸리게 하는 수준이라면 꼭 백신을 맞아야 하나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래 도표는 그래도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백신접종여부에 따라 중환자 수를 비교해 보면 미접종인 경우 7.8%가 산소호흡기가 필요한 상태 이상의 중증이고 사망자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반면 백신접종을 마친 경우 중증 이상이 0.7% 수준입니다. ⓒ 이봉렬

 
백신을 맞지 않은 상태에서 코로나에 걸렸을 경우 6.4%는 산소호흡기가 필요했고, 1%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지난 28일 동안 2명의 코로나 확신자가 사망했는데 둘 다 백신 미접종자였습니다. 반면에 완전 접종자인 경우 99.3%가 가벼운 증상 혹은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고, 산소호흡기가 필요한 경우는 0.5%,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는 0.2%인 2명이었습니다.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백신 접종 여부에 따라 산소호흡기가 필요한 중증 이상이 될 확률이 0.7%와 7.8%로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겁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지금까지 나이별로 정해진 기간 동안 백신 예약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백신 접종률이 70%를 넘기면서 백신을 맞으려는 사람은 줄어드는 반면 백신은 이미 확보가 된 상태라 백신접종센터에 가면 어느 때라도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싱가포르는 코로나 확산을 막고 백신접종률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특별한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특단의 대책

8월 10일, 봉쇄해제 조치로 식당이 다시 영업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백신 완전 접종자만 식사가 가능합니다. 백신 미접종자는 야외로 개방된 형태의 호커센터(노점을 한군데 모아 놓은 싱가포르의 야외식당)에서만 두 명 단위로 식사가 가능합니다.
 

8월 10일 이후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에 한해 다섯 명까지 식당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은 호커센터에서 두 명까지만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왼쪽 : 식당, 오른쪽 : 호커센터 ⓒ 이봉렬

 
종교시설에서도 모든 신자가 접종을 완료했을 경우 최대 500명까지 모임이 가능하지만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신자가 섞인 경우는 50명으로 제한합니다. 결혼식 역시 백신접종 여부에 따라 500명과 50명 규칙이 적용됩니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백신을 맞으라는 강력한 권고입니다.

싱가포르는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날 때마다 봉쇄를 통해 그 수를 줄이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7월의 봉쇄가 코로나로 인한 마지막 봉쇄가 아닐까 하는 예상을 해 봅니다. 아직 하루 100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봉쇄를 해제하는 것은 70%에 육박하는 백신접종률을 바탕으로 코로나를 가벼운 감기처럼 취급하며 공존하는 쪽으로 확실히 방향을 잡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백신 맞으면 코로나 안 걸린다'가 아니라, '백신 맞고 가볍게 이겨내자'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입니다.

강력한 봉쇄에도 불구하고 확진자 수가 더 이상 크게 줄지 않는 싱가포르의 사례에 비춰 보면, 4단계 거리두기를 하는 중에도 좀처럼 확진자가 줄지 않고 있는 한국의 상황 역시 거리두기나 방역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전염성이 높은 델타변이 바이러스의 특성 자체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상황에서 거리두기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백신접종률을 높여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큰 문제 없이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것 말고는 없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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