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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2021.8.2
 2일 오후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활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충북 청주 지역 활동가 4명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2021.8.2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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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지시를 받고 미국 스텔스 전투기 F-35A 도입을 반대했다는 혐의로 청주 지역 활동가들이 국가보안법에 저촉돼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진짜 사건인가'. '조작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그것은 이제껏 숱하게 강조된 것처럼, 국가보안법이 겉으로는 북한 정권을 겨냥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민주화운동·노동운동 등을 훨씬 더 많이 겨냥해왔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라기보다는 실은 '보수세력 보안법'처럼 운용돼 왔기 때문에, 이 법에 저촉돼 누군가가 체포될 때마다 해당 사건의 실체보다는 국가보안법 존폐 문제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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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정당·정보기관의 국가보안법 활용 

국가보안법을 발판으로 이 사회를 지배해온 보수정당은 그동안 수시로 이름을 바꿔왔다. 민주정의당(민정당)이 민주자유당(민자당, 1990년), 신한국당(1996년), 한나라당(1997년), 새누리당(2012년), 자유한국당(2017년), 미래통합당(2020년 2월), 국민의힘(2020년 9월)으로 개명되는 과정을 한국 현대사는 지켜봤다.

국가보안법을 실무적으로 운용해온 정보기관들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1981년), 국가정보원(1999년)으로 개명했다. 1948년 4월 설치된 조선경비대 정보처 특별조사과를 계승해 이듬해 10월 출범한 육군본부 정보국 방첩대도 특무대·방첩부대·보안부대라는 이름을 거쳐 국군보안사령부·국군기무사령부에 이어 지금의 군사안보지원사령부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보수정당과 정보기관들이 이처럼 수시로 개명해온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비난 섞인 시선을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국회 정보위원회 2020년도 국가정보원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국정원 로고.
 지난해 11월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국회 정보위원회 2020년도 국가정보원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국정원 로고.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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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가보안법은 이름을 바꾸는 '노력'마저 하지 않고 있다. 사회주의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시행됐지만 실제로는 독립운동 탄압에 악용됐던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까지 포함할 경우에는 '치안유지법에서 국가보안법으로 개명했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1948년 이후로는 원래 명칭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자신을 발판으로 지배권을 행사해온 정당, 자신을 실무적으로 운용해온 정보기관들은 어느 정도의 체질 개선에 더해 개명이라도 하는 태도를 보인 데 비해, 국가보안법은 어느 정도의 개정이 있기는 했지만 원래 취지를 그대로 고수하는 가운데 애초의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뻔뻔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대목이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지금뿐 아니라 1950년대에도 강했다. 자유당이 무술 경위 3백여 명을 동원해 야당 의원들을 끌어낸 뒤 국가보안법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개정안을 통과시킨 1958년 12월 24일의 '보안법 파동' 당시에도 그랬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불신 

이때 언론을 통해 악법에 대한 저항을 외친 인물이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할아버지다. 1959년 1월 10일자 <동아일보> 기사 '법이론적으로 본 보안법 파동'에 소개된 김병로 전 대법원장의 발언 중에 "악법도 법률이라는 논법은 여기에 해당한 것이 아니다"라는 대목과 함께 이런 부분이 있었다.

"가사(假使, 설령) 국회의 절차를 밟아 적법하게 제정된 법률이라 할지라도 그 내용이 헌법 정신에 위배되거나 국민생활에 적합하지 아니한 것이라면, 국민은 그 법률의 폐지 또는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을 일으켜 입법부의 반성을 촉구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전직 대법원장에게서 '국가보안법 폐지 또는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 '악법'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1950년대에도 상당했음을 느낄 수 있다.

김병로 같은 법조인뿐 아니라 국회의원들 역시 '악법'에 대한 충성심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보수 집권당의 거수기로 동원되던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1953년에 벌어진 묘한 풍경이 그런 분위기를 알려준다.

구형법이라 불리던 일본 형법이 폐지되고 신형법으로 지칭되는 대한민국 형법이 제정된 1953년 9월 18일로부터 얼마 전이었다. '이참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관련 규정을 신형법에 넣자'는 주장이 국회 내에서 제기됐다. 2004년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행한 <국가보안법의 운영 실태와 개정 방안>은 그때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1953년 7월 국회 법사위에서 신형법안을 성안하는 단계에서 법사위 안(案)의 기초자들은 1948년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염두에 두고 그 내용을 신형법(안)의 내란선동·선전죄, 각종 외환죄의 선동·선전죄, 폭발물사용선동죄에 흡수하고,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마련하여 본회의에 상정한 바 있다."

본회의에서 부결되기는 했지만, 표결 결과가 약간 묘했다. 위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본회의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관한 투표 결과는 제1차 투표에서 재석 원수(員數) 102인, 가(可)에 11표, 부(否)에 0표로, 제2차 투표에서는 재석 원수 102인, 가에 10표, 부에 0표로 나타났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인가'에 관한 본회의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 2차 투표에서 찬성표만 각각 11표, 10표가 나왔을 뿐이다. 대다수 의원들이 기권표를 던졌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결됐지만, 반대표가 아닌 기권표에 의해 부결됐다는 사실은 1953년 당시의 국회의원들이 보안법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그처럼 이미 오래 전부터 부정적 인식이 존재했는데도, 이 악법은 70년 넘게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보수 정당이나 정보기관들과 달리, 이 악법은 이름도 바꾸지 않은 채로 뻔뻔하게 서 있다.

'국보법 폐지' 오래 제기됐으나 좌절된 이유 

그런 국가보안법을 겨냥해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으나, 그럼에도 번번이 좌절돼 왔다. 이 법을 옹호하는 세력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약해져 왔는데도, 이 법률만큼은 변함없는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시민사회 원로선언 참가자들이 지난 6월 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 임기 내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시민사회 원로선언 참가자들이 지난 6월 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 임기 내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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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가능했던 것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하는 세력이 아직까지 한 번도 제대로 된 전면전을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본다. 다른 이유들도 함께 작용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싸움을 걸어본 적이 없다는 점도 이 법을 무너트리지 못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라고 보인다.

제대로 된 국민적 '폐지 투쟁'이 벌어질 경우에 그 결과가 어떨 것인지 전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세력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의 최대치가 최근 두 사례를 통해 인상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016년 촛불혁명과 2019년 검찰개혁 촛불집회에 대항해 일어난 맞불집회들은 한국 사회에서 냉전을 옹호하는 세력이 동원할 수 있는 물리적 역량을 모두 다 보여줬다. 그런 집회에 참여한 수구세력들은 미군과 국군의 반란까지 촉구했다.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대상을 죄다 드러낸 것이다.

그런 맞불집회를 통해 증명된 것은 수구세력의 힘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한국 사회의 운명을 결정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에너지를 상대하기에는 그들의 힘이 한참 부족하다는 점이 명확히 입증됐다고 본다. 이는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으로 인해 향후 분란이 일어난다 해도 그들이 대세를 당해내기 힘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하는 이유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역설하고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보안법 폐지를 당론으로 정했는데도 결국 수포로 돌아간 결정적 원인 중 하나는, 개혁 주체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막연한 공포심 때문이었다고 본다. 이 문제에 손댔다가는 뭔가 큰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 색깔론에 대한 학습화된 두려움 같은 것이 보안법 폐지를 가로막은 원인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더는 그런 공포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2016년과 2019년은 잘 보여주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막기 위해 거리로 몰려나오는 세력이 있다 해도, 그들이 더는 한국 사회를 움직이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가질 만한 이유들이 이미 충분히 제시돼 있다.

간첩이 있다면 당연히 체포하고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보안법만큼은 더 이상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짜인가, 조작인가를 의심케 하는 국가보안법을 계속 적용하게 되면, 구성원들의 한국 사회에 대한 신뢰심만 더욱 낮아질 뿐이다.

국민들이 간첩 사건을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려면, 일단은 국가보안법부터 폐지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면, 이 법에 손대면 큰일이 날지 모른다는 우리 마음속의 막연한 공포심부터 떨쳐버려야 한다. 이미 약해진 수구세력보다는 우리 마음속을 향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외치는 것이 국가보안법과 이별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태그:#국가보안법, #스텔스 전투기 F-35A , #간첩사건, #자주통일 충복동지회, #한반도 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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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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