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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퀴어문화축제를 지지했던 유럽 3개국 (오른쪽 부터)야콥 할그렌 스웨덴 대사, 피터 뱅스보 덴마크 대사관 이노베이션 센터장, 빼까 메쪼 핀란드 대사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지지했던 유럽 3개국 (오른쪽 부터)야콥 할그렌 스웨덴 대사, 피터 뱅스보 덴마크 대사관 이노베이션 센터장, 빼까 메쪼 핀란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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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비가 퀴어축제의 공식후견인이며 성소수자 국민의 69%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하며 살고 있는 덴마크, '성적 지향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을 세계 최초로 제정한 노르웨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1987년부터 형법으로 금지된 스웨덴, 차별금지법만 7번 개정한 핀란드.

이들 북유럽 4개국은 성소수자 인권 보장에 있어서는 전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선도적인 국가다. 네 국가 모두 동성혼을 허가했으며, 차별금지법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단호하게 대응하고 있다. 

4개국 주한 대사관에서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터. 이들은 매년 열리는 서울퀴어퍼레이드에 행사 부스를 내며 '연대'를 표명했고, 온라인으로 열린 2021년의 서울퀴어퍼레이드에도 4개국은 함께 '#NORDICS4EQUALITY' 라는 구호를 내걸고 함께 참여했다. 동시에 각 대사관에서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인터뷰를 진행해서 유튜브에 게시했다.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는 성소수자인 김조광수 감독을, 프로데 술베르그 주한 노르웨이 대사는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만났다. 니나 보울 덴마크대사관 보건의료 참사관은 성소수자 청년단체 '다움'을, 빼까 메쪼 주한 핀란드 대사는 성소수자 부모모임 하늘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각 국가를 대표해 한국으로 온 이들은 한국의 성소수자 차별 문제 개선과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그리고 4개국이 비로소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7월, 20여일 동안 온라인 퀴어퍼레이드를 비롯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이끌었던 양선우(활동명 홀릭) 조직위원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야콥 할그렌 스웨덴 대사, 빼까 메쪼 핀란드 대사, 피터 뱅스보 덴마크 대사관 이노베이션 센터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성북구 덴마크대사관저에서 모였다.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지지했던 유럽 3개국 (오른쪽 부터)야콥 할그렌 스웨덴 대사, 피터 뱅스보 덴마크 대사관 이노베이션 센터장, 빼까 메쪼 핀란드 대사가  '코펜하겐 2021'의 공식 굿즈인 '레인보우 팔찌'를 착용하고 엄지를 세우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지지했던 유럽 3개국 (오른쪽 부터)야콥 할그렌 스웨덴 대사, 피터 뱅스보 덴마크 대사관 이노베이션 센터장, 빼까 메쪼 핀란드 대사가 "코펜하겐 2021"의 공식 굿즈인 "레인보우 팔찌"를 착용하고 엄지를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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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 모두 '코펜하겐 2021'의 공식 굿즈인 '레인보우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에서 세계 최대 성소수자와 엘라이(연대자)들의 축제인 월드 프라이드(WorldPride)와, 성소수자 스포츠 행사인 '유로 게임'(Eurogames)을 동시에 개최했는데, 이를 합쳐 '코펜하겐 2021'이라고 한다(노르웨이 대사관 측에선 급한 일정이 발생해 참석하지 못했고 추후에 서면으로 의견을 전했다).

대사들이 증언한 북유럽 4개국이 쌓아온 '평등'의 전통은, 한국이 앞으로 '인권 선진국'이 되기 위해 따라가야할 길이 분명해 보였다. 동성혼 합법화는커녕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말이 유력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한국의 혐오 구조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하나의 작은 균열처럼 다가왔다.

"성소수자 인권 보호는 사회의 기반, 그리고 정의"
 
피터 뱅스보 덴마크 대사관 이노베이션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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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정부는 오랜 기간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해 왔으며, 젠더나 성 정체성, 성적 지향과 무관하게 모두가 평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사회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피터 뱅스보 덴마크 대사관 이노베이션 센터장)

"젠더 혹은 젠더 정체성을 불문하고 모든 국민이 사회와 자신의 삶을 형성하는데 동등한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스웨덴의 정책이다. 그것은 곧 민주주의와 정의와 직결된다." (야콥 할그렌 스웨덴 대사)

북유럽 4개 국가들은 성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를테면 덴마크는 동성 커플의 결혼, 입양, 난임 치료에 대한 권리는 물론 2020년에 다양성을 위한 자유(Freedom to Diversity) 전략을 통해, 성 정체성에 따른 개명 절차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트랜스젠더 미성년자에게 주민등록번호 변경 기회 등을 부여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2009년 공동결혼법으로 동성혼을 허용하고, 2016년에는 트랜스젠더의 자기 결정에 근거한 법적 성별 변경을 허용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북유럽 4개국이 말하는 차별금지법의 '가치'
 
빼까 메쪼 주한 핀란드 대사
 빼까 메쪼 주한 핀란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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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사회적으로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성소수자들을 위한 보호장치, 즉 법제화가 얼마나 되어있는지를 봐야 한다. 법이 없으면 의견 뿐이다." (빼까 메쪼 주한 핀란드 대사)

빼까 메쪼 대사는 좌담회 내내 성소수자 인권을 보호하고, 동시에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을 금지할 수 있는 법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핀란드 역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진화하는 사회에 맞춰 차별금지법이 일곱 번 업데이트 됐고, 가장 최신 개정은 2014년에 이루어졌다. 그는 "(차별금지법에선) 명확하고 단호하게 '젠더 정체성은 보호되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단순히) 인권이 있다는 게 아니라, 그 인권이 꼭 보호받아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고 법의 의미를 설명했다. 

덴마크는 1939년에 차별금지법을 도입했고, 1987년에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다. 이 차별금지법은 행정법, 형법, 민법에 포함되어있으며, 법무부, 노동부, 정부의 균등처우위원회 등 공공기관이 관할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2017년에 새로운 차별금지법을 채택했다. 이 법은 "성별, 성적지향, 성 정체성, 성별 표현을 이유로 자행되는 괴롭힘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한다. '평등 및 차별 금지 옴부즈만', '차별 금지 재판소'등도 설립했는데, 특히 재판소는 벌금 부과를 비롯 고용 문제의 차별의 경우 바로 '보상 조치'를 선고할 수 있게 했다.

스웨덴은 1987년부터 동성애자, 레즈비언, 양성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금지해왔고, 2009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통합 차별 형법'에서는 트랜스젠더 정체성 또는 표현에 대한 차별 역시 금지했다. 스웨덴 역시 '평등 옴부즈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02년부터는 헌법에도 성적 성향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를 명시했다

"제12조:[34] 그 어떤 법률행위나 그 밖의 조항은 소수민족, 인종, 기타 유사한 상황, 또는 성적 성향을 근거로한 소수 집단에 대하여 그 누구의 부당한 대우를 허가하지 않는다."

동성 결혼식도 허용하는 스웨덴 교회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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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차별금지법이 발의되거나 수면 위로 올라올 때마다, 보수 개신교에서 크게 반발한다.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든가 "외국 교회는 차별금지법 때문에 망했다"라는 거짓 주장까지 제기된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이 있는 국가의, '성평등'을 추구하는 교회는 망하지 않았다. 영국의 주류 교단인 성공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금지하는 성평등 매뉴얼을 만들어서 운영중이다. 

스웨덴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스웨덴 국교회는 모든 형태의 사랑에 대해 긍정하는 입장을 취해왔고, 교회 내에서의 동성 결혼식도 허용하고 있다. '레인보우 미사'를 통해 성소수자 관점에서의 가치 역시 반영한다. 

빼까 메조 핀란드 대사에 의하면, 핀란드는 종교의 자유는 성소수자들의 인권보다 더 높거나 중요하다고 볼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의 현실... 북유럽 4개국 대사관의 연대와 지지
 
서울퀴어문화축제 양선우(활동명 홀릭) 조직위원장
 서울퀴어문화축제 양선우(활동명 홀릭) 조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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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대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 위원장은 "우선 부러웠다"라고 말했다. 양 위원장은 "한국은 잘 사는 나라로 알려졌지만, 성소수자 인권에 있어서는 하위권이다"라며 "성소수자를 보호하는 법 자체가 아예 없고, 차별을 받았을 때 보호받지 못하니까 커밍아웃하는 사람도 드물고, 성정체성이 밝혀질 수 있다는 공포도 심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직장이나 가정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이 많고, 트랜스젠더 차별이 너무 심해졌다"라며 "올해 특히 많은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안타까웠다"라고 밝혔다.
 
지난 7월 온라인으로 열린 서울문화퀴어축제를 지원했던 야콥 할그렌 스웨덴 대사, 빼까 메쪼 핀란드 대사, 피터 뱅스보 덴마크 대사관 이노베이션 센터장이 4일 오후 서울 성북구 덴마크대사관저에서 양선우(활동명 홀릭) 서울문화퀴어축제 조직위원장과 좌담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온라인으로 열린 서울문화퀴어축제를 지원했던 야콥 할그렌 스웨덴 대사, 빼까 메쪼 핀란드 대사, 피터 뱅스보 덴마크 대사관 이노베이션 센터장이 4일 오후 서울 성북구 덴마크대사관저에서 양선우(활동명 홀릭) 서울문화퀴어축제 조직위원장과 좌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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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20년 동안 이어진 서울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있었고, 올해 차별금지법 법안이 국회 국민동의청원 10만 명을 달성함으로써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상황을 언급하며 변화에 대한 희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양 위원장은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표하며 퀴어퍼레이드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는 북유럽 4개 대사관에 감사를 표하며 "북유럽 국가들의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온 내용들이 한국 정부에도 가닿았으면 한다. 계속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메시지를 남겨주시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피터 뱅스보 센터장은 "폴란드에 있는 덴마크 대사관의 경우에는 다른 대사관이랑 함께 (폴란드의 성소수자 차별에 항의하는) 공개서한을 폴란드 정부에 보내는 활동을 했다"라며 "대사관들은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이 가능하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좌담회 역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비롯, 성소수자 차별이 없는 사회를 염원하는 한국의 시민들을 향한 북유럽 4개국 대사관의 연대와 지지의 표명이었다.

네 명의 참석자들은 대화를 마치고, '코펜하겐 2021'-#YouAreIncluded(당신은 포함되어있다)라고 적힌 깃발을 활짝 펼쳐 들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홀릭(맨 오른쪽)과 축제를 지지했던 북유럽의 (오른쪽 두 번째 부터) 야콥 할그렌 스웨덴 대사, 피터 뱅스보 덴마크 대사관 이노베이션 센터장, 빼까 메쪼 핀란드 대사가 '코펜하겐 2021'의 공식 레인보우 깃발을 함께 들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홀릭(맨 오른쪽)과 축제를 지지했던 북유럽의 (오른쪽 두 번째 부터) 야콥 할그렌 스웨덴 대사, 피터 뱅스보 덴마크 대사관 이노베이션 센터장, 빼까 메쪼 핀란드 대사가 "코펜하겐 2021"의 공식 레인보우 깃발을 함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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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일부를 이용해 좌담 참석자들의 모습을 하나로 모았다. 왼쪽부터 피터 뱅스보 덴마크 대사관 이노베이션 센터장,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홀릭, 야콥 할그렌 스웨덴 대사, 빼까 메쪼 핀란드 대사.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일부를 이용해 좌담 참석자들의 모습을 하나로 모았다. 왼쪽부터 피터 뱅스보 덴마크 대사관 이노베이션 센터장,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홀릭, 야콥 할그렌 스웨덴 대사, 빼까 메쪼 핀란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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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북유럽, #성소수자, #덴마크대사관, #스웨덴, #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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