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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미군 수송선이 뉴욕을 출발해 라틴아메리카 최남단 케이프혼(Cape Horn)을 지나 이듬해 캘리포니아 중부 해안마을 산타바바라에 도착했다. 1845년 텍사스 공화국(1836년 미국 이주민이 멕시코 연방공화국이던 코아우일라이테하스 준주에서 세운 독립국)이 미국의 28번째 주로 합병되자, 텍사스 소유권을 주장하던 멕시코와 서부 영토 확장을 노리던 미국이 현재 캘리포니아주인 알타 캘리포니아에서 전쟁을 벌인 것이다.

이때 뉴욕 출신 월터 머레이가 자원병으로 참전했다. 당시 군은 결혼을 하지 않은 병사들에게 거주할 땅을 주겠다며 모병을 했다. 월터는 산타바바라에 주둔하며 산속 유황 온천수가 흐르는 이곳을 문서에 기록했다.

"이런 그림 같은 곳을 이제까지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보게 될 거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이번에 소개할 자연 온천은 로스 파드레스 국유림을 등지고 태평양이 펼쳐 보이는 몬테시토 온천(Montecito Hot Springs)이다. 몬테시토는 스페인어로 '작은 산'을 뜻한다. 이곳은 또 핫스프링스 캐년(Hot Springs Canyon)라고도 불린다. 면적이 약 462에이커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산행로 입구까지 차로 1시간 40분 거리라 당일 여행이 가능하다.

불치병도 치료한다는 신비한 온천수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 산타바바라에 있는 몬테시토 온천이다. 미네랄 온천으로 치료 효과가 높아 인기가 많다. ⓒ 황상호
 
몬테시토 온천은 토착민인 추마시 원주민이 병을 치료하고 신들에게 제례를 지내던 곳이다. 원주민들은 산에서 캘리포니아 월계수를 채취해 온천수에 담그고 목욕을 했다. 50~60년 전까지만 해도 간간히 이곳에 모여 전통의례를 하며 곰 춤을 췄다고 한다.

그들이 사라진 것은 18세기부터다. 스페인 군대와 선교사들이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상륙했고 강제적인 종교 행사와 함께 하루 12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으로 그들을 혹사 시켰다. 또 장티푸스와 매독 등 지독한 질병을 옮겼다. 원주민 수는 급감했다. 산타바바라라는 지명도 스페인 국왕이 러시아가 남하해 이 땅을 선점할 것을 걱정해 미리 천주교 성인의 이름을 따서 '산타바바라'라고 지었다.

온천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윌버 커티스라는 인물 때문이다. 그는 난치병을 앓고 있었다. 주치의는 그에게 6개월 정도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1950년대 즈음, 그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 마을에 도착했고 우연히 110살 된 아메리카 원주민을 만난다. 그는 장수 비결을 이 몬테시토 온천 때문이라고 말했다. 윌버는 수개월 간 온천수를 마시고 목욕을 한 끝에 병을 완전히 치료했다.

백만장자만 이용하던 독점적 온천

하지만 그 뒤 그의 행적이 수상쩍다. 어느 자료에서는 그가 정부가 공여하는 농지를 받아 온천에 호텔을 만들었다고 설명하지만, 이 온천을 아끼는 커뮤니티의 자료에서는 그가 특허권을 주장하며 사실상 사기를 쳐 원주민 땅을 강탈했다고 전하고 있다. 여하튼, 그는 1860년대 후반 가파른 산길에 3층짜리 목조 온천 호텔을 지었다. 도서관과 와인바, 산책로를 만들고 하루 숙박비 2달러를 받았다. 그는 20년 만에 큰 부자가 됐다.

미국에 관광업이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 그즈음이다. 골드러시로 전 세계 이민자들이 몰려든 뒤 덩달아 관광 산업이 움트기 시작했다. 특히 산타바바라는 사시사철 날씨가 온화하고 바다 수온이 따뜻했다. 여기다 미네랄 온천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건강 스파 명소로 주목받았다.

당시 유럽 출신 정착민은 지저분한 유럽인과 차별화하기 위해 청결과 위생을 더욱 강조했다. 학교에서도 세면기 사용법과 비누 사용법을 가르쳤다. 목욕은 가장 미국적인 것이었다. 덩달아 몬테시토 온천은 신장염과 간, 방광, 통풍, 류머티즘, 피부병 치료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손님이 몰렸다. 1887년 철도까지 생기면서 방문자 수는 더욱 증가했다.
 
몬테시토 온천에서 가장 위에 있는 탕에서 두 남성이 와인을 마시고 있다. ⓒ 황상호

온천 호텔은 주인이 계속 바뀌다 1910년 화재로 모두 불탔다. 4년 뒤 그 자리에 백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부자만 입장할 수 있는 클럽하우스가 생겼다. 부동산 갑부들로 클럽 참가비만 5000달러였다고 한다.

당시 17명 정도가 제한적으로 이곳을 이용했는데 관리인에게 목욕물을 받으라고 시킨 뒤 리무진을 타고 온천 호텔에 갔다고 한다. 그 뒤 1964년 코요테 화재(Coyote Fire)로 모두 불탔다. 그것으로 산악 캠프 호텔 시대는 막을 내리고 일반인도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비키니와 수영복 바지 입고 산 타기

이곳은 최고의 수질과 편리한 접근성을 자랑하지만 외부에는 잘 노출돼 있지 않다. 3년 전 대형 화재와 잇따른 홍수로 이 일대가 잠시 폐쇄된 까닭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입이 쩍 벌어지는 저택을 가진 주민들이 외부인의 접근을 썩 탐탁지 않아 하기 때문이다. 장소가 손님을 맞이하는 환경을 보면 알 수 있다.

먼저 이곳에 가려면 구글 지도에 핫스프링스트레일헤드(Hot Springs Canyon Trailhead)라고 검색하면 된다. 초행길이라면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주차장에는 겨우 차 대여섯대만 세울 수 있다. 갓길을 찾아 눈치껏 주차해야 한다. 주민의 민원이 많아 주정차 단속을 수시로 하니 딱지를 떼이지 않도록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어떤 이웃이 살고 있냐고? 영국 해리 왕자와 여배우 매건 마클 부부가 1465만 달러(170억 원 상당)짜리 호화 주택에 살고 있고, 2008년 작 영화 <아이언맨>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맞상대로 나왔던 영화배우 제프 브리지스도 거주하고 있다. 

산행은 어렵지 않다. 출발점에서 정상까지 약 3킬로미터다. 높이도 해발 184미터에서 364미터까지 160미터 정도다. 산을 타다보면 비키니를 입고 있는 여성이나 해변가 반바지 입고 걷는 청년을 쉽게 볼 수 있다. 옷차림만 보면 길 넘어 백사장이 있는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산행로는 혈기왕성한 이들에게는 걷기 쉬운 난이도다.
 
수영복 바지와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 ⓒ 황상호
 
산행로 입구는 주차장 귀퉁이에 좀스럽게 나 있다. 일부로 감춰놓은 것 아닌가 하는, 껄적지근한 마음이 든다. 지도가 그려진 안내판도 산행로 안쪽에 설치돼 있어 외부인에게는 눈에 띄지 않는다. 산 경사로를 타기 전까지는 삐까뻔쩍한 저택과 울타리를 맞대고 걸어야 한다. 사유지로 들어오지 말라는 표지판이 곳곳에 걸려 있다. 전반적으로다가 박한 손님 대접에 괜히 왔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산을 오르다 보면 옛 온천 호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물길을 막아 놓은 작은 댐이 있고 그 시절 심었던 대나무와 아보카도, 바나나 나무, 팜트리가 자라고 있다. 산 능선을 꽤 오르면 서쪽 너머로 태평양이 보이고 그 위로 산타크루즈와 아나카파, 산타로사 등 5개 섬으로 이뤄진 군도, 채널 아일랜드 국립공원(Channel Island National Park)이 보인다. 이곳은 수천 년 동안 육지와 격리돼 미국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린다. 멸종위기종인 섬 피그미 여우 등 150종 가까운 토착종이 서식하고 있다.
 
드론으로 촬영한 몬테시토 온천이다. 오른쪽에 난 길이 산행로다. ⓒ 황상호
 
- 2편 "맨손으로..." 홍수로 초토화 된 온천을 재건한 남자로 이어집니다. 
태그:#몬테시토 온천, #온천, #산타바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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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트레블러17 대표 인스타그램 @rreal_la 전 비영리단체 민족학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전 CJB청주방송 기자 <오프로드 야생온천>,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내뜻대로산다> 저자,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 공저 uq2616@gmail.com

LA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가정 폭력 생존자를 돕고 있다. 한국에서는 경기방송에서 기자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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