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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코로나 발생 초기부터 연말에 이르기까지 국내 체류 중인 250만 이주민 가운데 코로나 확진자 숫자는 미미했다. 이와 관련해서 기자들도 가끔씩 문의를 해 왔다. 왜 이주노동자들은 이렇게 확진이 없냐고 말이다. 그때마다 이렇게 답했다.

"이주노동자들이 하루에 9시간 10시간 일하고 그대로 숙소에서 지낸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쉬더라도 밖에 잘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코로나 이후 사업주들이 못 나가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사회적인 격리상태, 일상적 거리두기 상태였다. 확진이 거의 없을 수밖에 없다."

사회와 교류가 별로 없이 일만 하며 지내는 것도 차별적인 것인데, 그 차별적 상태가 확진 방지에는 유리했던 역설적 상황이었던 것이다.

지역사회 감염으로의 확대와 섣부른 대응
광복절 연휴 마지막 날인 16일 오후 서울역 선별검사소에서 연휴기간 동안 집회 대비 경계 근무를 마친 경찰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다.
▲ "경계근무 끝", 단체로 코로나 검사받는 경찰 광복절 연휴 마지막 날인 16일 오후 서울역 선별검사소에서 연휴기간 동안 집회 대비 경계 근무를 마친 경찰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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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되면서 지역사회 감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역학조사로 파악되지 않는 확진자도 늘어나고 무증상 확진자도 많았다. 사회적 격리상태에 있던 이주노동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3밀(밀접, 밀집, 밀폐) 조건이 작동했다. 즉 노동환경과 숙소 조건에 있어서 이주노동자가 일하고 사는 사업장이 매우 열악하기 때문에 일단 한번 확진자가 생기면 퍼지기 쉬운 것이다. 이 조건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검사만 많이 한다고 해서 코로나를 제대로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2월 17일에 남양주 진관산업단지의 한 플라스틱 공장에서 115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 공장은 177명 직원 가운데 145명이 19개국에서 온 이주민 노동자였고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했다. 확진자는 생활치료센터로 옮겨야 하는데 통역시스템이 미비하여 3일이나 걸렸다고 한다. 이 노동자들은 치료 완료 후 다시 공장으로 와서 일할 수 있었을까. 알고 싶은 부분이다.

경기도는 이 산업단지에 선별검사소를 설치하고 모든 인원을 검사받게 했다. 3밀 조건 개선조치는 별로 없었다. 이와 유사한 확진이 몇 군데 더 발생하자, 도는 3월 8일부터 22일까지 15일간 행정명령을 내리고 모든 '외국인노동자'는 검사를 받아야 하고 불응시 200~3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준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 내려진 명령이어서, 3월 14일 첫 일요일 새벽부터 각 지역 검사소에 몰린 노동자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검사받으러 왔다가 코로나 걸릴판"이라는 비판적 보도가 여럿 나왔다. 명령만 내리면 되겠지 하고 안이하고 섣부르게 결정을 했을 것이고, 정작 이주노동자들이 평일에는 사업장에서 나올 수 없어 일요일에 몰릴 것이라는 예상도 못한 것이다. 덩달아 서울시는 3월 17일부터 31일까지 2주간 '외국인노동자' 진단검사 행정명령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외국인 노동자' 대상 행정명령이라는 인종차별

서울과 경기뿐만 아니라 인천, 대구, 경북, 강원, 광주, 전남, 경남 등 많은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에서 우후죽순으로 외국인노동자 행정명령을 내렸다. 경기도는 3월 22일부터는 '외국인노동자 대상 채용 전 검사'까지 의무화했다. 당연히 "왜 외국인만 대상으로 하는가"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며 살고 있는 경기도에서 전수검사 행정명령을 발동했을 때,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낙인과 차별'이라며 비판했다.

사업장에서 이주노동자 확진자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외국인노동자만을 대상으로' 구분지어 의무검사를 받게 하는 것은 이들을 '잠재적인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자'로 낙인 찍어 그러한 대중적 인식을 조장할 수 있으며 '국적을 이유로 하는 인종차별'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행정명령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판이 나왔다. 그런데 씁쓸한 상황이 벌어졌다. 서울시의 명령이 발표되었을 때, 유럽 등 서구 국가의 대사관, 서울대 등에서 강한 비판 입장을 냈고 이로 인해 중수본이 철회요청을 해서 서울시는 시행 이틀만에 명령을 권고로 전환했다. 즉 주로 아시아지역 출신 이주민 권리운동을 하는 단체들의 비판에는 '방역의 필요성' 운운하며 명령을 강행하다가, 서구 대사관들에서 항의하니 철회를 한 것이다. 철회과정마저 인종차별적이었다고 할까.

서울시는 권고로 전환했지만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국가인권위는 3월 22일, 이주노동자에게만 코로나19 진단검사 하는 것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비판하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 및 광역지방자치단체장에게 비차별적인 방역정책 수립‧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경기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행정명령을 유지했다.

3밀 개선이 우선시되어야

5월에 강릉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의 확진이 늘자 시는 3일 간격으로 8번이나 이주노동자 일용직들을 대상으로 검사를 했다. 같은 달 전북에서는 '내·외국인 일용직 고용 시 검사 의무화' 명령을 내렸다. 7월에 진주시는 '외국인 다수 사업장' 감염 예방을 위해, 진주 관내 제조업 사업장 내외국인 전체 선제검사 조치를 했다. 안산시와 시흥시는 직원이 50명 미만이고 이주노동자가 1명 이상 있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직원 전원에 대해 검사 행정명령을 내렸다. 8월 전남도는 외국인 고용 사업장, 근해어업 출항 전 선박 등 내외국인 종사자를 대상으로 검사 의무화 행정명령을 내렸다. 수원시는 이주노동자가 1인 이상 근무하는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전체에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런 행정명령들 혹은 조치들은 노골적으로 외국인만을 겨냥하는 것도 있고, 내외국인 공히 검사받게 하는 것도 있고 예방을 위해 선제적으로 검사받게 하는 것도 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외국인 확진자 발생에 대한 대응이다. 우리는 이 부분을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확진자가 외국인이라고 지역 혹은 사업장 내 '외국인 전체'를 대상으로 삼아도 되는가. 즉 외국인을 하나의 범주로만 보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라는 것이다. 출신국별로도 다르고, 개인별로도 다 다르다. 이를 외국인이라는 것으로 묶어 모두 검사받게 만드는 것은 폭력적이다. 오히려 그들의 공통점은 '3밀'의 열악한 노동, 주거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인(제조업이든 일용직이든 농어업이든) 대상이 아니라 이러한 조건에 놓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차별적 방역이 필요하다. 또한 그 열악함을 개선하는 것이 검사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노동환경과 주거환경 개선을 지원해야 하고 사업주들이 개선에 나설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방역에 이주민이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평상시 다국어로 코로나 관련 여러가지 정보가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도 스스로를 지키며 생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해가 쉬운 자기 언어로 정보접근을 해야 하고 이는 코로나 대응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다(그런 의미에서, 현재 백신 접종 예약사이트가 한글로만 되어 있는 것도 참 문제다).

근본적으로는 확진 발생 → 추적 → 관련집단 검사 강제 → 확산 차단이라는 코로나 대응 모델로 인해서 이렇게 이주노동자 같이 사회적으로 취약한 집단들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손쉽게 진행되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게 하지 않는 효과적인 방안은 과연 없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립니다.


태그:#코로나19, #전수검사, #방역, #차별,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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