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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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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법제사법위원회 문제'는 아직도 그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 기회에 아예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자는 법률안을 발의했다.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국회 공무원에 이관하겠다?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권을 갖는 것은 세계 각국 어떤 의회에도 존재하지 않는 비정상적 왜곡 시스템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도입한 이 기형적 제도는 당연히 폐지해야 하며, 그것이 곧 우리 국회가 정상화의 길을 복원해나갈 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민형배 의원의 법률 개정안은 법사위가 담당했던 법률안·규칙안 등의 체계·자구 심사 기능을 국회 법제실로 이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이와 관련된 박주민 의원의 개정안은 국회사무처에 법제 전문기구를 둬 각 상임위 소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이를 심사하도록 했다.

바로 이 지점에 중요한 문제가 있다.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는 올바른 길이지만, 국회 공무원에게 이관하는 방식은 옳지 못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을 국회 공무원에게 넘기게 되면 그 권한을 장악한 국회 관료들의 힘만 키우게 되고 이로부터 온갖 왜곡과 폐단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당히 커진다.

다른 나라 의회 상임위에서는 각 상임위에서 소관 법률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를 의원들이 수행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국회는 하나씩 하나씩 세계 의회의 '기본'과 '표준'을 적용해 나가야 한다.

정치의 무능, 국회의 무능이 관료주의를 심화시킨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기재부 관료들과 '협의'하고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의 '검토'를 받는 것은 결국 대부분 관료집단의 힘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공무원들에게 '심판관'의 권위와 권한을 넘겨주게 되면, 거꾸로 공무원들이 '주인'이고 의원은 그 '허락'을 받는 하부로 전락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본디 관료집단을 통제해야 할 주체는 다름 아닌 정치와 국회이다. 그런데 정작 정치와 국회는 소명의식은 없는 채 안일과 군림만을 추구하다가 결국 관료들의 특권화를 조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듯 정치의 무능, 국회의 무능이 관료주의를 더욱 악화시킨다.

공무원에 떠맡기지 말고 스스로 일하라... 직접 입법업무를 하라고 뽑아준 것

필자는 국회에서 근무하면서 우리 국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근원이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의문점을 풀려고 오랫동안 노력했다. 적지 않은 관찰과 연구조사 끝에 필자는 마침내 우리 국회의 가장 근본적인 병폐가 국회의원 본인들이 스스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관행과 사고방식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에 있다는 나름의 결론을 얻게 됐다. 이를테면, 국회의원 본인들이 수행해야 할 '법률안 검토보고' 작업을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이 대신 검토보고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한다.

국회 각 상임위원회 회의에서도 국회 공무원들이 법률 낭독을 비롯해 대부분의 진행을 담당하고 있다. 의원들이 그런 일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 그들은 '(지위가 높으신) 내가 (하찮게) 그것을 읽으라고?'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국회의원들이란 그런 일을 하라고 국민들이 선출한 것이란 점이다. 세계의 어떤 의회든 그러한 업무는 모두 의원 본인들이 직접 수행한다.

국회의원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입법권한을 스스로 수행하지 않고 관료들에게 떠넘기면, 바로 그 관료들이 입법의 주인으로 되는 것이다. 우리 국회는 그렇게 정작 자신에 부여된 입법업무로부터는 주변화된 채 매일 같이 연예인처럼 SNS 활동과 각종 이벤트에 열중하면서 습관적 무조건 반대의 정쟁만 일삼는다. 이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 어떤 국회개혁도 '속빈 강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다른 나라의 모든 의회처럼, 우리 국회의원들도 국민이 부여한 입법권을 공무원에게 떠맡기지 말고 제발 스스로 일하기를 바란다. 왜냐면 그것이 우리 국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핵심이요, 기본이기 때문이다.

태그:#국회,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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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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