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23 07:12최종 업데이트 21.08.23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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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내게 품질 보장 브랜드다. 여행 스케줄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심으로 짜면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에 의해 선정되기 때문에 깊은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바가 상당히 크다.

스톤헨지도 유네스코 소개로 만났다. 내게 미지의 세계였던 영국 중남부를 2박 3일로 짧게 둘러볼 때 세계문화유산 스톤헨지, 세계기록유산 마그나 카르타를 소장하고 있는 스톤헨지 옆 동네 솔즈베리(salisbury) 대성당,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블레넘궁(Blenheim Palace) 순으로 짰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옥스퍼드 대학을 곁들였다.


약 500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 원형 돌무리인 스톤헨지는 신석기 후반과 청동기 시대를 보여주는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198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명성이야 익히 들었지만 고고학적 지식이 없는 내가 허허 들판에 서서 원형 돌무리를 봤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장엄한 실물을 마주하는 순간 '도대체 누가, 왜 이걸, 그리고 저 바위 덩어리들을 어떻게 찾았을까'라는 질문이 노력하지 않아도 나왔다.

그런데 지난 7월 2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스톤헨지(Stonehenge)를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List of World Heritage in Danger)에 올릴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 하루 전인 7월 21일, 위원회는 영국의 또 다른 세계문화유산인 리버풀을 목록에서 최종 삭제했다. 위원회는 2004년 산업 혁명기 해상무역도시의 모습을 간직한 리버풀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지만, 2012년 위험군 리스트에 올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영국을 상대로 잇달아 내린 두 결정의 공통 배경은 개발에 대한 우려다. 위원회는 새로운 (리버풀) 개발이 "도시 특징을 심각하게 훼손했고 이는 돌이키기 어려운 손실"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영국 리버풀의 워터프런트(Waterfront) 지역 ⓒ pixabay

 
스톤헨지도 다르지 않다. 유네스코가 주시하는 것은 스톤헨지 유적지 밑을 통과하는 터널이다. 이는 영국에서 약 10년을 끌어온 논쟁으로, 작년 11월 영국 정부는 23억 달러(약 2조 5천억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터널 계획을 진행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유네스코는 터널이 세계문화유산 선정 기준인 "뛰어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봤다.

유네스코의 연이은 경고는 영국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불렀다. 그간 영국은 전통 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지닌 나라였다. 특히 문화재 지정 및 보존에 탁월하다는 평을 받아 왔다. 더욱이 스톤헨지는 유네스코가 영국 문화재 리스트 중 처음으로 세계문화 유산 타이틀을 줄 만큼 가치를 인정 받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스톤헨지가 터널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일까.

스톤헨지 논란

문화유산을 둘러싼 주 논쟁의 하나는 개발과 보존이다. 이 둘 모두 미래 지향적이다. 개발이 지금보다 발달된 미래를 꿈꾼다면, 보존은 미래 세대가 인류의 지난 궤적을 이해하고 새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손상되지 않은 자산을 넘겨주고자 한다. 공유할 수 있는 지점에도 불구하고 개발과 보존이 종종 상충하는 이유는 이들을 떠받치는 관념의 차이 때문이다. 새로움, 편리, 효율성, 신속함, 경쟁, 근대화 등이 개발을 둘러싸고 있는 언어라면, 보존은 흔히 오래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가치, 기원에 대한 호기심, 연속성, 전통 및 문화 정체성 등과 연결된다.

개발과 보존의 비중은 특정 사회가 특정 시점에 제시하는 미래상에 따라 가변적이다. 한국의 경우, 경제 근대화가 사회를 압도했던 시기에는 전통과 문화를 '낙후된' 것, '극복되어야' 하는 것으로 봤다. 반면, 내부 통합이 중요해지는 시기에는 다른 사회에는 없는 '우리의 것'으로 중요시되었다.  

21세기 개발과 보존은 팽팽하다. 환경 문제가 보존 측에 힘을 더하는 반면, 전 세계적인 주택난, 노후한 도시, 인프라 향상, 산업으로서의 관광은 개발을 떠받치고 있다. 도시 재생 등 보존과 개발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도 있다. 스톤헨지 터널 논쟁은 이 논의들의 축소판이다.

문화재 보호의 역사

스톤헨지 터널 논쟁의 궁극적 시발점은 런던과 영국 남서 지역을 이을 목적으로 1819년에 건설된 도로에 있다. 산업혁명이 본격화된 19세기 전반기 영국은 도로와 철도 부설로 바빴다. 문화유적보호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기였기에 도로는 스톤헨지와 원형 돌무리가 흩어져 있는 에이브버리(Avebury) 지역을 가로질러 놓였다. 이로 인해 선사시대 유적지와 어울리지 않는 아스팔트 도로가 유적지 안에 있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이 불러온 여러 사회 문제에 회의감을 느낀 영국 지성계 사이에서는 자연과 전통문화 보존이 큰 화두로 떠올랐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인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 공원과 스톤헨지가 당시 지성계가 보존하려고 했던 대표적 사례다.  
 

영국 윌트셔주의 선사시대 유적 스톤헨지에 1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지'(夏至) 축제에 앞서 사람들이 모여 있다. 2019.6.20 ⓒ 연합뉴스


레이크 디스트릭트 자연보호 운동은 이 지역의 철도 건설 반대에서 시작됐다. 하드윅 론즐리(Hardwicke Rawnsley, 1851-1920) 목사와 임대주택 정책의 초석을 닦은 여성 사회 개혁가 옥타비아 힐스(Octavia Hills, 1838-1912)가 주도했다.

이들 외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동화 <피터 래빗>(Peter Rabbit)의 작가인 비어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 1866-1963)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실제 거주했고 하드윅 론즐리를 존경했던 그녀는 책으로 번 돈으로 주변 땅 4000에이커와 14개의 농장을 사들여 그 지역 고유종인 허드윅 양(Herdwick Lamb)이 멸종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나중엔 농장에 있던 동물들을 포함해 거의 모든 재산을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관리하는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에 기부했다.

문화재 보호에 앞장 선 인물로는 은행가이자 정치인인 존 러벅(John Lubbock, 1834-1913)이 있다. 전문 고고학자는 아니지만 구석기·신석기 학술 용어를 만들었을 정도로 고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다.  

러벅이 8살 되던 1842년, 그는 동네로 이사 온 33세의 다윈을 처음 만났다. 20년 이상의 나이 차가 있지만, 둘은 이때의 인연으로 평생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된다. 다윈을 통해 인류의 진화 단계에 관심을 갖게 된 러벅은 1862년 스톤헨지를 처음 방문, 선사시대 유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1864년에는 X-클럽 결성을 주도, 진화론 지지자들인 토마스 헨리 헉슬리와 허버트 스펜서와 정기적으로 교류한다.

1870년대 러벅은 개인적 관심을 넘어 문화재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유적 보호를 위해 1871년 에이브버리 주변 땅을 사들였고 1874년에 고대유물법(The Ancient Monuments Protection Act)을 발의했다. 하지만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이후 공장제에 반대하며 예술&수공업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을 이끈 윌리엄 모리스와 1877년에 고대건물보호회(The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Ancient Building)를 조직, 보다 조직화된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5년 후인 1882년, 마침내 고대유물법을 통과시켰다. 

스톤헨지의 운명은?

19세기 말 영국은 자연과 문화 보호라는 명분 하에 개발의 논리가 들어갈 수 없는 보존의 영역을 만들었다. 이 균형은 20세기 말 효율과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유례없는 관광 산업의 팽창을 가져온 세계화로 깨진다. 개발의 목소리가 보존의 영역으로 스며든 것이다. 

스톤헨지 논쟁의 중심에 있는 도로명은 A303으로 영국 남서부 지역 경제의 "대동맥"으로 불린다. 20세기 후반부터 급증한 교통량으로 2차선 구간인 스톤헨지 부근 13킬로는 항시적인 정체와 소음으로 악명이 높다. 드넓은 벌판에서 인공미 없는 고대 선사 시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수년의 논의 끝에 윌트셔 지방정부는 2014년 4차선 터널 안을 제안했다. 직선거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소음과 모든 시각적 방해물을 터널 밑으로 넣을 수 있어 스톤헨지가 선사 시대의 풍경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소 도로 A303을 싫어했던 영국의 양대 비정부 문화재단인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와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는 터널이 유적지 경관을 상당히 개선시킬 것이라며 찬성했다.
 

영국의 스톤헨지(Stonehenge) ⓒ pixabay

 
문제는 터널 길이였다. 지방정부가 계획하는 터널 길이는 약 3킬로미터로, 세계문화유산 현장 거리 5킬로미터에 못 미친다. 이를 지적하는 쪽이 환경단체인 그린피스(Greenpeace), 스톤헨지연합(Stonehenge Alliance), 세계문화유산 스톤헨지 구하기(Save Stonehenge World Heritage Site) 등의 시민 단체다. 이들은  문화유산 현장 내에 있는 터널 입구와 출구로 인해 스톤헨지 풍경이 손상될 것이고 50만 개로 추정되는 미발굴 유물들이 손상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월드셔 지방정부가 정부와 관계없는 독립된 인사들로 구성한 감사위원회는 시민단체 주장에 힘을 실었다. 2019년 4월부터 10월까지 세부 계획을 검토한 위원회는 터널이 스톤헨지에 "부정적이면서 돌이킬 수 없을" 손상을 입힐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2020년 3월 리쉬 수낙 재무장관은 월트셔 지방정부의 계획을 승인하며 "지연 공사의 대명사"가 된 스톤헨지 논쟁을 끝내겠다고 밝혔다. 

2020년 말, 시민운동 측은 교통부장관이 4차선 터널로 인한 문화적 피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고 세계문화유산 국제협약법을 위반했다며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갔다. 결과는 시민운동의 승리였다. 터널 반대 측은 법원 결정이 정부에 경종이 되어야 할 것이라며, 터널 공사 계획의 전면 수정을 요구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측도 여기에 가세, 계획을 재검토해서 그 결과를 2022년 2월까지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수정안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스톤헨지는 위험 리스트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8월 4일 영국 정부는 계획 변경은 없다고 일단 밝혔지만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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