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광복절인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 소감을 밝히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광복절인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 소감을 밝히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관련사진보기


18일 최재형 대선 예비후보가 조부의 독립운동 여부에 대해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만주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했다는 근거는 여전히 제시하지 못했다. 조부의 회고록 <사려와 조화>(1987년작)도 공개하지 않아 의혹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최 후보 조부 최병규에 대한 검증은 최 후보 측에서 '독립운동가 집안'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선거운동에 이용하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정작 최 후보는 "제가 정치를 하게 됐다는 이유로 저희 조상들에게 친일파라는 딱지를 덮어씌우려는 시도에 대해서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라고 해 논란 확산에 대한 자신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검증에 나선 <오마이뉴스>에 대해선 어떤 부분을 어떻게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으면서 "아버님 회고록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최 후보를 검증하고 있는 언론과 정치권에 대해 "친일파 프레임으로 국민을 가르고, 조상의 고된 삶을 함부로 평가하는 구태정치"라고 비난했다. 이어 그는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의 탈출 행렬과 6.25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를 연결시켜 '반공 애국' '안보 의식'을 강조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는 그동안 당시 언론보도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조부 최병규의 1938년 이후 만주 이주 시절 독립운동 주장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최 후보에게 이에 대한 직접 해명과 조부의 회고록 <사려와 조화>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곁가지는 쳐내면서 조부의 독립운동 여부와 관련한 최 후보의 해명에 집중해 검증을 이어간다.

[기본 인식] "우리 사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간 친일파 논쟁"

본격 검증에 앞서 최재형 후보가 스스로 해명에 나선 배경을 설명한 대목을 짚어본다.

최 후보는 자신이 직접 해명에 나선 이유를 조부와 증조부에 제기된 친일 의혹이 "제 개인의 가족사를 넘어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간 친일파 논쟁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의 반민특위 활동, 2000년대 초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활동, 민족문제연구소 등의 친일인명사전편찬 활동 등 친일청산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대목으로 해석된다.

이는 2019년 "해방 후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것이다. 또다시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해달라"고 해 큰 파문을 일으켰던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의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검증 ①] 독립운동에 대한 이해... "조선인의 이익과 복리"를 챙기는 일?
 
광복절인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한 가족이 옥사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를 추모하고 있다.
 광복절인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한 가족이 옥사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를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최재형 후보는 조부의 춘천고보 시절부터 만주 해림 시절까지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그가 소개한 대목은 나름 조부의 삶에서 '독립운동'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최 후보는 조부의 '독립운동'을 소개하기에 앞서 "조부께서는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인의 이익과 복리를 생각하고 그것을 염원하는 삶을 사셨다"는 말로 조부의 삶이 윤봉길, 김구 등 다른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다른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조부 최병규의 공통점을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고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한 삶'이 아니라 '조선인의 이익과 복리를 생각하고 그것을 염원하는 삶'이라고 설명했다.

조부 최병규의 행적 중 독립운동가의 삶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기 곤란한 상황에서 고심 끝에 나온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제에 항거해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싸워온 독립운동가의 삶을 왜곡하고 심지어 모독하는 주장일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최 후보는 이후에도 조부의 '독립운동' 행적을 소개하면서 '농민들의 복리와 계몽운동' '일제에 대항하여 조선인들의 복리를 높이기 위해 노력'과 같은 표현을 계속 사용했다.

[검증 ②] 조부 '상장달기운동'이 강원도 최초의 항일학생운동으로 평가받는다?

최재형 후보는 먼저 조부 최병규의 춘천고보 시절의 '독립운동'을 소개했다.
 
춘천고보 재학 시절 강원도 최초의 항일학생운동으로 평가받는 순종의 서거를 애도하는 상장달기운동을 벌였다. 학교에서는 일본인 교사의 부당한 처우에 대항하여 싸우면서 동맹휴학 투쟁을 벌여 강제로 제적까지 당하셨다.
 
조부의 춘천고보 시절에 대한 최재형 후보의 해명 중 순종 서거를 애도하는 '상장달기운동'과 자질 미달 교사 배척 맹휴 등은 국가보훈처에서 항일독립운동으로 인정한 사례가 없다는 지적이 이미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주장을 단순히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새로운 내용은 없다.

새로운 주장은 오히려 조부가 주도한 상장달기운동을 '강원도 최초의 항일학생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소개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어떠한 역사학자도, 독립운동 관련 어떠한 기관도 그런 평가를 내린 적이 없다.
 
<강원도사> '제8권 일제강점기' 30쪽에 서술된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강원지역 독립운동에 관한 서술.
 <강원도사> "제8권 일제강점기" 30쪽에 서술된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강원지역 독립운동에 관한 서술.
ⓒ 강원도사

관련사진보기

  
강원도에서는 최 후보 조부가 주도한 '상장달기운동'보다 7년이나 앞선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춘천농업학교 학생을 비롯한 수많은 학생들의 항일독립운동이 있었다. 강원 지역 학생들의 맹휴 역사도 최 후보의 조부가 주도한 1926년 맹휴보다 5년이 앞선 1921년 삼척보통학교 학생들로부터 시작됐다. 대한민국이 그 법통을 계승했다고 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탄생시킨 3.1 운동의 양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하기 힘든 주장이다.

최 후보 조부가 주도한 1926년 상장달기운동을 항일학생운동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를 떠나, 강원도 최초의 항일학생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 주장은 허위사실 유포를 넘어 자랑스러운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만들어왔던 강원도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 있다.

[검증 ③] 농민야학 설립과 운영이 그 자체로 독립운동이라고?

최재형 후보는 18일 기자회견에서 조부 최병규가 '일본당국으로부터 3년 주거제한형(연금령)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부친 최영섭 대령의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서도 언급한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을 들고 나왔다.
 
(조부는) 그후 농민야학부를 설립해 농민들의 계몽과 복리운동도 펼치셨다.
 
여기서 '그후'는 춘전고보에서 퇴학당한 이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3년간 주거제한형을 받았다고 했으니 아마도 1929년부터 만주로 이주하는 1938년까지의 어느 시점일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두 가지 있다.

우선 최 후보의 조부가 농민야학부를 설립해 펼쳤다는 '농민들의 계몽과 복리운동'은 그 자체만으로는 항일독립운동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심지어 일제의 정책에 호응해 농민야학을 설립하고 운영한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물론 농민야학을 설립해 운영하면서 독서회 활동 등을 하며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주변에 설파하는 활동을 은밀히 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최 후보가 언급하지 않았을 리 없다. 결국 조부의 농민야학 설립·운영은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독립운동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최 후보가 이러한 주장을 펼치면서 그 근거나 출처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 후보는 이에 대해 조부의 회고록 <사려와 조화>에 나오는 대목인지, 아니면 어렸을 적 조부로부터 독립운동 시절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나왔던 이야기인지 밝혔어야 했다.

[검증 ④] 새롭게 확인되는 조부 최병규의 만주 시절 행적
 
"조부가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던 최재형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18일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던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마찬가지로 민족의 이익과 복리를 생각하는 삶을 사셨다"고 주장했다. 유튜브 채널 '최재형TV' 갈무리.
 "조부가 독립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던 최재형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18일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던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마찬가지로 민족의 이익과 복리를 생각하는 삶을 사셨다"고 주장했다. 유튜브 채널 "최재형TV" 갈무리.
ⓒ 유튜브 최재형TV

관련사진보기

 
이제 최재형 후보가 해명한 조부 최병규의 만주 행적을 살펴볼 차례다. <오마이뉴스>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만주 해림에서 조선인거류민 대표로 있으면서 일제에 대항해 조선인들의 복리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했고, 당시 일본인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던 조선인 청년을 구하려고 일본인 경찰부서장의 일본도를 뽑아 대적하다가 그 자리에서 물러난 사실도 있다.
 
이 역시 부친의 책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도 언급된 적이 없는 새로운 이야기다. 물론 위 이야기가 조부의 <사려와 조화>에 등장하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어렸을 적에 조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인지도 최 후보는 역시 밝히지 않았다.

내용 역시 만주 항일독립운동이라고 평가할 만한 게 없다. 앞서 기술한 농민야학 설립·운영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그동안 조선인거류민단장을 맡았다고 한 주장과 달리 '조선인거류민 대표'라고 추상적으로 언급한 대목도 눈에 띈다. 조선인거류민단이 당시 일제와 만주국이 통제하는 친일단체(어용단체)였다는 지적을 받은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제에 대항해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일제에 대항해 조선인의 복리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한 대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인의 복리를 높이기 위한 노력은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협력하는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따라서 최 후보는 조부가 조선인의 복리를 높이기 위해서 어떻게 일제에 대항했는지를  해명했어야 했다. 그래야 조부의 노력이 항일독립운동으로 볼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런 언급은 없었다.

'일본인에게 구타당하는 조선인 청년을 구하려고 일본인 경찰부서장의 일본도를 뽑아 대적했다'는 일화 소개도 흥미롭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언급만 있을 뿐, 체포를 피해 도주했다든지 체포돼 처벌을 받았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없다.

<사려와 조화> 원문 공개가 필요한 이유

<오마이뉴스>의 검증은 '최재형 후보의 조부가 친일파다, 아니다' 낙인찍기에 있지 않다. 최재형 대선 예비후보에게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설명이 따라 붙어 유권자에 영향을 주기에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최재형 후보에게 적확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뿐이다.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훌륭한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모두가 독립운동을 했다고 인정받는 건 아니다. 독립운동은 '일본은 결국 망할 것이라 믿은 사람들' '일본이 망하지 않더라도 조선은 독립할 수 있으니 일본과 싸워야 한다고 믿은 사람들'이 일본에 직접 대항하거나 일본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도왔던 활동을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독립운동이라 부른다. 동시에 일본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던 사람들이나 조선의 독립은 수백 년 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에는 차라리 조선인의 복리를 높이는 길을 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독립운동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오마이뉴스>는 최재형 후보가 조부 최병규의 회고록 <사려와 조화>를 전면 공개해 논란을 종식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관련기사]
[단독 검증] 최재형의 할아버지 '최병규'는 진짜 독립유공자일까? http://omn.kr/1uoci
[반론] 최재형 후보 측 "조부가 독립유공자라 한 적 없다" http://omn.kr/1ur1v
[재반론] '독립유공자' 조부는 착오? 최재형 후보님, 이 기사는 뭡니까 http://omn.kr/1ur4c
[검증] 최재형 조부 생전에는 '만주독립운동' 언급 없었다 http://omn.kr/1ut22
[반론] 최재형 측 "조부의 일제 국방헌금, 생존 위해 포장한 것" http://omn.kr/1utw9
[검증] 최재형 일가 땅 몰수, 부친이 맞나 캠프가 맞나 http://omn.kr/1uuly
[검증] 최재형 조부가 만주에 간 그해 평강군에서 벌어진 일 http://omn.kr/1uutu
[반론] 최재형 "카불 교훈은 안보의식 결여, 우린 병역필 집안" http://omn.kr/1uvkn

태그:#최재형, #최병규, #최영섭, #독립운동
댓글4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작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서울의 지역사를 연구하면서 동작구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인권도시연구소 이사장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동작구 근현대 역사산책>(2022) <현충원 역사산책>(2022),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2015) 등이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