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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공수처 검사 임용과정에서 신원조사가 행해질 것이 우려돼, 지난 3월 23일 '공수처 검사에 대한 국정원 신원조사, 하지 말아야'라는 기고를 하였다. 그리고 그 이전인 3월 4일 '국정원의 공무원 신원조사, 위법이니 폐지해야' 글을 기고하였다.

현재 국정원 직원에 대한 신원조사는 법률인 국정원직원법(제8조의2)에 근거해 행해지고 있으나, 국정원 직원을 제외한 공무원(검사 포함) 임용예정자의 신원조사는 법률에 아무런 근거가 없이 대통령령인 '보안업무규정'과 대통령 훈령인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에 보안업무규정이 개정돼 신원조사의 대상이 공무원 임용예정자 전체에서 국가안전보장에 한정된 국가 기밀을 취급하는 인원으로 개정되었으나,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과 각 부처 훈령에는 여전히 신규채용 예정자 전체가 대상으로 돼 있다.

헌법 제25조는 공무담임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데, 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위해서는 신원조사를 받아야 하고 받지 않으면 임용될 수 없으므로 신원조사는 공무담임권을 제한한다.

보안업무규정에 의한 신원조사, 법률적 근거 없다
 
  지난해 11월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2020년도 국가정보원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국정원 로고.
  지난해 11월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2020년도 국가정보원 국정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국정원 로고.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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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37조와 제75조에 의하면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법률로 해야 하고 대통령령으로 하려면 법률에 근거를 두고 법률로부터 구체적으로 위임을 받아야 하는데 보안업무규정에 의한 신원조사는 법률에 아무런 근거도 없고 법률로부터 구체적으로 위임을 받지도 않았으므로 위헌이다.

모법조항의 위임 없이 규정된 시행령 조항은 무효이며 무효인 시행령 조항에 근거해 이루어진 처분은 위법하다는 판례(대법원 전원합의체 2020. 9. 3. 2016두32992 등)에 비추어, 법률의 위임 없이 신원조사를 규정한 보안업무규정은 무효이며 무효인 보안업무규정에 근거한 신원조사는 위법하다.

신원조사를 받으려면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 별지 서식의 '신원진술서'에, 본인과 가족, 친교인물 등에 관한 중요하고 민감한 내용을 상세하게 적어서 제출해야 한다.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안기부(국정원 전신) 전직 실장급 간부가 "존안자료야말로 안기부가 가진 힘의 실질적 원천이다"고 말했다고 하고, '입법·행정·사법 공무원은 임용 순간부터 존안자료 기록이 시작된다'고 한다.

그런데, 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직전에 신원진술서를 작성·제출해야 하므로, 이 신원진술서를 토대로 존안자료 작성이 시작되고 이후 그 공무원에 관한 내용이 계속 존안자료에 업데이트되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사건에서 국정원이 중국 공문서를 위조한 것이 드러나기도 하였는데, 국정원이 이처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검찰에 대한 국정원의 존안자료가 있다고 본다. 즉, 모든 검사들이 검사로 임용되기 직전에 신원조사를 받기 위해 국정원에 신원진술서를 작성해 제출하는데, 이때부터 검사들에 대한 존안자료가 작성되고 그 이후 계속 업데이트돼 그것이 국정원이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신원조사 작성 자료... 향후 공수처 수사 좌우할 수도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6월1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들의 현안 질의에 답변하는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6월1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들의 현안 질의에 답변하는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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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검사에 대한 것은 공수처 검사에 대해도 그대로 타당하다. 즉, 공수처 검사들이 임용되기 직전에 신원조사를 받기 위해 신원진술서를 작성해 국정원에 제출하면 그 즉시부터 공수처 검사에 대한 존안자료가 만들어지고 그 이후 계속 업데이트될 것이다.

그러면 그 이후 언젠가 공수처 검사가 직·간접적으로 국정원 관련 수사를 할 때, 공수처 검사에 대한 국정원의 존안자료가 공수처의 수사를 좌우할 수 있는 유력한 자료가 될 것이다.

공수처 출범 이후 공수처 검사 인사가 있었다. 공수처 인사위원회는 지난 4월 2일 검사 19명의 명단을 인사혁신처에 제출하면서 추천하였다. 그런데 4월 15일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4월 16일자로 최종 임명된 검사는 13명이다. 즉, 공수처의 추천과 대통령의 임명 사이에서 거의 1/3에 달하는 6명이 탈락하였다(관련 기사: 공수처 검사 6명 임용탈락, 이유는 국정원 신원조사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을 두 번 하면서 끝내 못한 일,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는 것으로 공수처를 설치하지 못한 것을 들었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도 검찰 개혁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였으며, 공수처 설치는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다시 말하면 문 대통령은 공수처의 조속한 출범과 함께 공수처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게 업무를 수행하기를 바라는 입장으로 보인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공수처 인사위원회에서 인사혁신처를 통해 추천한 공수처 검사 19명 전부를 임명하고자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대통령의 의지와 철학을 잘 알고 있는 대통령비서실(민정수석실)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6명을 탈락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필자가 법무부, 인사혁신처, 대통령비서실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에 의하면, 대통령비서실(반부패비서관실)에서 신원조사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6명이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검사 임용과정에서 국정원의 신원조사가 없었다면 추천된 19명이 모두 검사로 임용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공수처가 인력 부족으로 힘들어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공수처는 당초 추천했던 6명을 임용하지 못한 채 인력 부족에 시달렸고, 지난 6월 28일 공수처 검사 임용 공고를 하였다. 현재 선발 절차가 진행 중인데, 당초 선발에 비해 그 과정이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21일 접수를 마감한 것으로 보이는데, 경쟁률이 얼마인지 등도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다.

공수처법에 의하면 국정원의 3급 이상 공무원도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데, 공수처 검사들이 신원진술서에 자신과 가족 등에 관한 중요하고 민감한 내용을 거의 모두 국정원에 제공한 상태라면 국정원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되기 어려울 것이다.

수사 대상인 국정원, 공수처 검사의 임용 적격 여부 조사해도 괜찮나

공수처 검사가 임용과정에서 국정원에 신원진술서를 제출해 국정원의 '오케이'를 받아 임용된다는 것은 국정원에 이른바 '빚'을 지게 되는 것이고, 이점에서도 국정원에 대한 공수처의 수사가 제대로 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국정원이 수사 주체가 되는 공수처 검사 임용 적격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 부당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공수처 검사에 대한 국정원의 신원조사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위헌·위법이므로 해서는 안 되며, 임용 예정자도 신원조사 요구에 응할 의무가 없다.

국가공무원법은 모든 공무원은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제56조), 형사소송법은 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34조 제2항).

또한 헌법재판소법은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당해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은 직권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 심판을 제청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41조 제1항).

위 규정들은 모두 공무원은 합헌·합법적인 법령은 준수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위헌·위법의 법령은 그 폐지를 위해 노력하거나 위법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공수처, 인사혁신처, 대통령비서실 등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도 법령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합헌적인 법령이라면 마땅히 준수해야 하나, 위헌적인 법령이라면 준수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폐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엄기섭씨는 법무법인(유한) 동인 소속 변호사이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공수처 검사, #신원조사, #국정원, #위헌 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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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조사 폐지 위해 노력하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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