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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 칠순잔치를 위해 고향에 갔던 날,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대화가 아직도 기억난다.

"어린이 집 보육비도 공짜, 학교가면 급식도 무료라면서, 뭐? 아동 수당? 나라에서 매달 돈도 준다고? 이야~ 세상 살기 진짜 좋아졌다. 너네 어렸을 땐 돈 없으면 유치원도 못 갔어."

지금이 정말 아이들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 맞나? 요즘 같으면 말도 안 된다고 맞받아치고 싶었지만 한숨을 삼켰다. 세대 간의 인식 차이를 굳이 들춰내 날을 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 말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돈이 없다고 해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를 못 가는 시대는 아니니까 말이다. 게다가 매달 주는 지원금까지 있으니,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예전보다 아이 키우기는 더 쉽다고 말 할 수 있을 거다.

첫 애 낳을 때만해도 없었던 '아동 수당'은 둘째 아이가 두 살이 됐을 무렵인 2018년 9월, 불쑥 등장했다. 아동 수당 10만 원(1인당)은 넉넉한 금액은 아니었지만 분명 가계에 보탬은 됐다. 아이가 셋이나 되는 우리 집의 경우 한 달에 30만 원 씩 꾸준히 들어오니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특히 셋째를 낳았을 땐 진주시에서 격려금으로 200만 원을 받았고, 이듬 해 첫 돌을 맞을 때쯤엔 100만 원을 더 받았다. 산후조리 비용과 돌잔치 비용 등 큰돈이 들 때 제법 도움이 됐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셋째 낳으면 300만 원이나 준데~"라는 소문만으로 너도나도 셋째를 낳을 수는 없는 세상이다.

원희룡의 공약에 걱정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국민의힘 원희룡 대선 예비후보가 8월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민 약속 비전 발표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원희룡 대선 예비후보가 8월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민 약속 비전 발표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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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8월 25일 모든 신생아의 부모에게 1년 동안 매월 1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그동안 지급됐던 육아휴직급여는 고용보험에 가입된 소수에게만 지급돼 사각지대가 컸는데, 이를 해결하고자 "저출산을 극복하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돕도록 '전 국민 부모급여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의 발표를 접하곤 출산장려 지원금으로 언제까지 저출산 대책을 재정에만 기댈 생각인지 걱정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난해 정부는 제4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내놓았다. 기존 출산 진료비 지원금(바우처) 60만 원을 100만 원으로 상향하고 출산 바우처(첫 만남 꾸러미) 200만 원까지 더해 총 300만 원을 초기 육아 비용으로 지원한다는 계획(2022년부터)이다. 또, 현재 만 7세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원씩 지급하는 아동수당과는 별개로 현행 가정양육수당을 개편해 2022년 태어나는 아이들부터 '영아수당(0~1세)'을 지급한다고 한다. 정부의 목표는 단계적으로 금액을 늘려 2025년 월 5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라는데, 달갑지 않은 건 나만일까?

4차 계획을 발표하기까지 15년 동안 정부는 저출산 정책에 180조 원이나 썼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한가. 2020년 합계출산율이 0.837명,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것은 물론 작년 출생아는 3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돈만 때려 붓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초등학생도 알 만한 내용이다.

출산을 기피하는 구조적 요인부터 해결해야
 
출산 장려 지원금만 준다고 하면 냉큼 아이를 낳을 성인이 몇이나 될까.
 출산 장려 지원금만 준다고 하면 냉큼 아이를 낳을 성인이 몇이나 될까.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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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를 낳기 직전까지 활발하게 일을 했던 나는 4년 6개월의 경력단절시기를 겪었다. 둘째 아이를 낳고서 겨우 찾은 일자리는 온갖 눈치를 봐야하는 가시방석 같았고, 셋째를 낳고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땐 남편과 시어머니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돌봐야 할 아이들이 많아서 일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자주 발생하자 자괴감마저 들었다. 당장 아이를 맡기고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집값은 또 얼마나 황당한지, 평생을 모아도 내 집하나 장만하지 못하는 불안한 시대에 아이를 키울 만한 심적, 체력적인 여유가 절대 생길 수가 없지 않나.

양육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까지 해결할 문제들이 산재해있는데, 출산 장려 지원금만 준다고 하면 냉큼 아이를 낳을 성인이 몇이나 될까. 어느 한 분야에 땜질식 정책만으로 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그게 가능하긴 한 걸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지적한다. 출산 장려를 위해서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인 양육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효과가 제대로 나지도 않는 지원금에 국가 예산 털어 넣지 말고, 출산을 기피하는 구조적인 요인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첨언한다.

한 아이를 키워내는데 필요한 건 절대 '돈'뿐만이 아니란 걸 명심하자. '100만 원'으로 퉁 치자는 발상 같은 건 다신 내뱉지 말자.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태그:#원희룡, #출산장려정책, #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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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6개월이란 경력단절의 무서움을 절실히 깨달은 아이셋 다자녀 맘이자, 매일을 나와 아이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워킹맘. 글을 쓰는 일이 내 유일한 숨통이 될 줄 몰랐다. 오늘도 나를 살리기 위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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