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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인계면 소마마을에서 일곱 시 버스로 순창읍 장에 나왔다는 주민들
 전북 순창군 인계면 소마마을에서 일곱 시 버스로 순창읍 장에 나왔다는 주민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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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곱 시 차로 왔어. 1시 20분 차로 못 가면 택시비 달라고 했어."

추석 명절을 앞둔 지난 11일 전북 순창읍 장날 오전 10시 무렵 한 방앗간 앞에서 만난 주민의 말이다. 오전 7시 버스로 순창군 인계면 소마마을에서 장에 나왔다는 주민 셋은 오랜 기다림도 즐거운 듯 웃었다.

"우리 모두 한 말씩 (기름) 짜. (기자 : 언제까지 기다리셔야 해요?) 몰라, 여태 기다렸응께 (주인한테) 1시 20분 (막차) 버스 못 타면 택시비 줘야 한다고 말했어. '알았다'고 하데. 하하하."

방앗간 앞에는 기름을 짜려는 주민들이 긴 줄을 이었다. 방앗간 안에는 사람 대신 형형색색 가방과 보따리, 손수레가 제 각각 바닥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순서를 기다렸다.

"참기름, 한 말에 열한두 병 나와요"
 
방앗간 안에 손수레와 가방이 기름을 짤 순서를 기다리며 늘어서 있다.
 방앗간 안에 손수레와 가방이 기름을 짤 순서를 기다리며 늘어서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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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은 추석을 앞둔 장날답게 눈코 뜰 새 없었다. '기름이 어떻게 나오느냐'는 질문에 주인장은 속사포로 답했다.

"한 되에 한 병 정도 나와요. 참기름이 들기름보다 조금 더 나오니까, 참기름은 한 말에 열한두 병 나와요."

깨 한 말은 18리터 정도다. 기름병 1개는 350밀리리터다. 참깨 18리터를 기름으로 짜내면 4리터가량이 나오는 셈이다.

주인장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깨 볶으랴 계산하랴 분주했다.

"어머님, 참깨가 한 말, 들깨는 몇 되 볶았어요?"
"닷 되."


장터에는 방앗간이 몇 곳 있다. 두 곳이 나란히 자리한 방앗간 주변으로 뽀얀 연기가 피어 올랐다. '깨 볶는 고소함'이 사방으로 퍼졌다.

깨를 볶고 기름을 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기름이 나오길 기다리는 주민들의 표정에는 누구 하나 지루한 기색이 없었다. 한 주민에게 '언제부터 이 방앗간을 이용했느냐'고 물었다.

"문 열었을 때부터 단골이야. 여기 각시(주인)가 참 잘 해줘. 친절하고 싹싹해."

'기름 짜서 뭐 하시려고 하느냐'고 질문하자, 이 주민은 타박하듯 웃었다.

"뭘 하긴, 아이들도 주고, 함께 나눠 먹어야제. 하하하."

방앗간 주인 딸 서유진(23)씨는 "17년도에 대학 가느라 순창을 떠나 지금 대학 졸업반으로 취업 준비하고 있는데, 명절에는 바쁘니까 공부는 잠시 미루고 내려와서 일손을 도와드리고 있다"고 밝게 말했다.

단골 주민들은 "꼬맹이 때 봤는데, 예쁜 처자가 다 되었다"며 서유진씨를 알은체하며 웃었다.

코로나 추석, 기대감과 아쉬움 교차
 
박지안(5)ㆍ박시율(2) 자녀 둘을 데리고 광주에서 장 나들이 온 부부.
 박지안(5)ㆍ박시율(2) 자녀 둘을 데리고 광주에서 장 나들이 온 부부.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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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곳곳에서는 손님과 주인이 주고받는 가격 흥정으로 소란스러웠다.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들은 대화를 하면서도 계산하느라 손놀림을 바삐 움직였다.

"오백 원짜리 없으면, 5만2000원만 줘."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는 부부가 눈에 띄었다. 풍산면 대가리에서 장에 나왔다는 부부는 "뭐가 있나 살펴보러 나왔고, 기름 조금 짜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지안(5)·박시율(2) 자녀 둘을 데리고 온 부부는 "추석을 앞두고 광주에서 장 나들이를 왔는데, 아이들이 재미있어하고 신기해한다"면서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터에 생동감이 넘친다"고 말했다.

16일, 추석을 코앞에 둔 대목장을 다시 찾았다. 11일에 비해 장터를 채운 사람들이 늘어났다.

12시 무렵, 순댓국 골목에는 사람들로 미어졌다. 호떡과 튀김, 어묵 등을 파는 군것질 가판 상점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찹쌀씨앗호떡 1개 1000원, 오징어튀김·김말이튀김·찹쌀 도넛 커다란 한 봉지 5000원 등 먹을거리는 장날에만 만날 수 있는 명물이다.
 
장날에만 만날 수 있는 장터 명물 튀김 집에는 항상 긴 줄이 선다.
 장날에만 만날 수 있는 장터 명물 튀김 집에는 항상 긴 줄이 선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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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두 번째 맞는 추석을 앞둔 장날, 주민들의 표정은 사뭇 복잡해 보였다. '자식들에게 맛있는 음식 먹일 기대감'과 '이번에도 못 오나' 하는 짙은 아쉬움이 엇갈리는 듯 했다.

몇몇 주민에게 '추석 때 자녀들 오느냐'고 똑같은 질문을 수차례 했다. 대답은 대동소이했다.

"올랑가 몰라. 나라에서 코로나로 오지 말라고 허니께. 그래도 별 수 있는감? 음식은 준비해야제."

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9월 16일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태그:#전북 순창, #추석 장날, #순창, #코로나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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