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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1990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 판을 거듭하고 있는  
<인류 기록: 세계역사 자료The Human Record: Sources of Global History>는 강리도를 가장 중요한 세계사 사료의 하나로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판단을 암기하는 대신 원천 사료를 직접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할 때라야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이 발동되며 복잡다단한 인생사를 통찰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all students of history must meet the challenge of analysing primary sources, thereby becoming active inquirers into the past... not of memorizing somes else's judgements. Furthermore, such analysis motivates students to learn by their curiosity and imagination, and it helps them develop into critical thinkers and who are equipped to deal with the complex intellectual challenges of life. (이 책의 서문)

기존 학설이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지 않고 일차 사료를 직접 탐구해햐 한다는 주장은 여전히 암기 위주 혹은 전통적인 역사 교육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를 일깨우는 죽비가 아닌가 한다. 강리도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실물(그 사본)을 직접 살펴보고 의문과 호기심을 갖는 대신에 몇 줄로 요약된 기존의 지식 정보를 주입받는데 그치고 마는 것 같다. 

전술한 <인류 기록:세계사의 원천 자료> 제 1권은 선사시대로부터 1500년까지의 원천 사료를 다루고 있다. 맨 첫 번째 자료는 기원전 3천년 전의 이야기를 전하는 최초의 기록물인 <길가메시 서사시 Epic of Gilhamesh>이고 맨 마지막은 1493년 콜럼버스가 일차 항해 중에 썼던 서한이다.

이 책은 원천 사료의 핵심을 간략히 소개하고 주로 질문을 던진다. 질문 항목들이야말로 지적 호기심과 탐구욕을 자극하는 촉매이고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세계지도에 대해서는 두 장을 소개하고 있다. 그 하나는 14세기 서양의 카탈란 세계지도Catalan World Atlas(1375)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의 강리도(1402)다.  이 둘을 세계사적 가치가 가장 많은 지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강리도는 81번째의 항목으로서 '한국인의 세계상A KOREAN VIEW OF THE WORLD'라는 제목으로 다루고 있다(2012년도 제 7판 380쪽-383쪽).
 
<인류 기록> 제 1권 책자 표지
 <인류 기록> 제 1권 책자 표지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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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유럽인에 의한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 이루어지기 바로 이전의 시대에 가장 주목할만한 세계지도(The most noteworthy world map)는 조선에서 나왔다. 일반적으로 강리도(KANGNIDO)로 알려져 있는 이 지도는 문화가 매우 융성했던 조선시대(1392-1910) 초기인 1402년에 제작되었다. 이 걸작을 창제한 지도제작자들은 당시에 알려진 세계의 모든 곳을 망라하는 지도를 만들기 위해 중국, 이슬람, 일본 지도를 자유롭게 차용하였다. 이 지도의 이상한 점들에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그 높은 수준의 정확성에 경악하게 된다(once one has become accustomed to the map's eccentricities, the modern viewer is astounded by its high degree of accuracy.)

헌데, 일본은 KOREA의 정남쪽 방향으로 실제보다 더 멀리 떼어 놓았다. 이것은  숙적인 일본에 대한 조선의 우세supremacy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이미지는 아쉬운 점이 많기는 하지만 어쨌든 강리도에 유럽이 그려져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강리도는 여러 차례 모사되었는데 이는 그 지도가 조선의 정체성과 문화 혁신에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였음을 방증한다. 지도 원본은 전해 오지 않지만 15세기 후기의 사본들이 현존한다."

 
 
<인류기록>에 수록된 강리도
 <인류기록>에 수록된 강리도
ⓒ 김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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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이 책은 강리도 탐구 과제로서 5개의 설문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번째와 마지막 질문은 이렇다.
 
1. 한국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라. 중국와 일본에 대한 한국의 상대적 크기는 무엇을 말해 주는가?
5. 유럽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라. (유럽에서) 어느 지역이 가장 식별하기 쉬운가? 어디가 가장 모호한가? 이러한 탐구는 조선의 지도 제작자들이 서양을 그릴 때 사용했던 자료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 주는가?

우리는 보통 강리도를 보면서 중국이 가장 크게 그려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지리역사 학자들도 그렇게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상대적 크기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이 중국의 세 배 이상 크게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강리도를 해석, 평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대목에 속한다. 상대적 비례로 살펴보면, 강리도에는 중화주의가 아니라 주체성이 부각되어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위의 첫 번째 질문은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은 앞서 본 것처럼 서양에서 14세기 후반에 나온 카탈란 아틀라스와 15세기 초 조선에서 아온 강리도가 1500년까지의 지도 중에서 가장 세계사적 가치가 높은 지도로 여기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의 세계적 몽골학자이자 강리도 연구가인 수기야마(수기야마 마사아키衫山正明, 교토대)도 같은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기야마는 <동서양의 세계지도가 말하는 인류 최초의 대지평>이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14세기부터 15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지역의 동/서 양 쪽에서 만들어진 두 종류의 지도가 있는데, 이 지도는 모두 그 때까지 볼 수 없었던 대단한 내용을 담은「세계지도」이다. 그 하나는 <강리도>이고 다른 하나는 「카탈란 세계 지도CATALAN ATLAS]라는 것이다. 두 지도를 둘러싼 배경은 서로 다르지만, 각각 동방과 서방 세계가 만들어낸 지도로서 그 이전의 것을 훌쩍 뛰어넘는 획기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학계에서 주지의 사실이 되었다." - <대지의 초상大地の肖像> 54쪽 

당시 서양지도들은 동아시아를 전혀 그리지 못했거나 그리더라도 상상으로 처리했다. 그러한 상황에 강리도를 대조해 보아야만 강리도에 유럽이 그려진 사실이 지니는 세계사적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

더구나 당시 어떤 지도에도 그려지지 않았던  아프리카가 서양이 아닌 조선의 지도에 나타나 있다는 사실에서 서양 학자들이 충격을 받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국내의 많은 강리도론은 그러한 세계사적 맥락을 충분히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한 예를 들면 , 어떤 저명한 지리역사 학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이 지도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등 구대륙 전체를 포함하고 있지만, 지리적 중화관으로 인해 서쪽 지역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 배우성, <조선과 중화> 380쪽

강리도에 대한 편협하고 왜곡된 평가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세계사적 배경과 맥락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지 묻고 싶다. 강리도가 서방(아프리카 및 유럽)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사를 다시 쓰게 하는 놀라운 발견인 것이다.

한편, 강리도를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중화주의적으로 보이겠지만, 당시의 시점에서 탐구해 보면 최초로 중국 밖의 세계를 그렸다는 점에서 탈중화주의적인 혁신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현재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고려시대 금속활자도 혁신이 아니라 낙후되고 후진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강리도만큼은 예외여야 하는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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