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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별일'들, 한국에 의미있는 캐나다 소식을 전합니다. [편집자말]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시소거에서 마스크를 쓴 한 남성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소에 도착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시소거에서 마스크를 쓴 한 남성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소에 도착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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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8일, 캐나다를 시끌시끌하게 만든 발표가 있었다. 밀접 접촉자 추적, 격리, 마스크 착용 등 대부분의 코로나 관련 규정들을 해제하겠다는 앨버타주의 발표였다. 심지어 확진자에 대해서도 격리는 의무사항이 아니며, 테스트는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에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백신 보급률의 증가와 그 효과로 인해 코로나의 위험이 크게 줄어든 데다가 가을부터 증가세를 보이는 다른 호흡기 질환들에도 대응해야 하므로 코로나에만 재정과 인력을 쏟아부을 수 없다는 게 앨버타주 보건당국의 판단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감시와 개입을 주정부가 아닌 지역의료 차원으로 전환해 특별한 규제 없이 '여타의 다른 질병들처럼 다루겠다'는 결정이었다.
 
당시 앨버타주 보건부 장관은 "다른 주들도 이것이 불가피한 다음 단계임을 알고 있고, 이같은 방침을 뒤따르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보였었다. 그러나 앨버타주를 비롯한 캐나다 전역의 대다수 의료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은 앨버타주의 결정을 '위험한 실험'이라며 맹비난했다.
 
그같은 비난은 타당해 보였다. 당시 앨버타주의 백신 접종률은 65%로 캐나다 내에서 낮은 편에 속했을 뿐더러 집단면역에 도달했다고도 볼 수 없는 수치였다. 뿐만 아니라 델타 변이의 빠른 전파력과 돌파감염의 위험, 백신 접종 대상자가 아닌 12세 미만 어린이들에 대한 우려, 앨버타주를 넘어 다른 지역에까지 미칠 파급효과 등 비난의 합리적 근거는 다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버타주 당국은 방침을 철회하거나 변경하지 않았다. 그들의 반박은 이랬다. 백신이 충분히 확보돼 있고 접종률도 상승하고 있다, 두 차례의 백신 접종이 델타 변이나 중증으로의 진행을 막는 데 매우 효과적임이 증명됐다, 어린이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코로나바이러스만이 아니며 그 위험도 역시 계절독감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더 낮다, 라는 것.
 
당시 나는 이러한 앨버타주의 상황을 기사화하며 이렇게 글을 마무리했었다.
 
독감 같은 유행병 중 하나로서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할 때가 된 것이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하지만 그 방침이 지금으로서는 무모하리만큼 공격적인 전략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앨버타주의 결정이 지금껏 해왔던 다른 방침들 정도의 위험성을 지닌 것인지 아니면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치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지 지켜볼 일이다.

매우 불행히도

매우 불행히도, 최근 몇 주간 나타나고 있는 결과는 후자다. 발표 이후 두 달여가 흐른 지금, 수치로 드러나고 있는 앨버타주의 상황은 암담하다. 캐나다 전체 코로나 확진자의 거의 절반가량이 인구의 겨우 10분의 1을 차지하는 앨버타주에서 나오고 있다.

9월 중순부터는 연일 확진자수가 1500명을 넘어섰다. 9월 말 현재 앨버타주에는 2만 명 넘는 코로나 환자가 있다. 1000명 넘는 입원환자 중 265명은 집중치료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치사율도 캐나다 평균을 훨씬 웃돈다. 9월 말 2주간 캐나다 전체의 코로나 치사율은 1.2%, 앨버타주의 치사율은 4.1%였다. 앨버타주에서는 지금 캐나다 평균보다 3배 이상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죽어가고 있다.
 
당연히 병원에 가해지는 부담 역시 한계에 다다랐다. 병상과 집중치료실 부족으로 인해 다른 주로 환자를 이송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의료진들의 피로와 스트레스도 극에 달한 상태다. 앨버타주의 전 최고 보건 책임자인 제임스 탈봇에 따르면, "현재 사람들이 항암치료, (환자의 희망에 의한) 선택적 수술 등을 거부 당하고 있으며, 종국에는 치료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프로토콜을 실행하게 되는 등 시스템이 마비될 것"이라 보고 있다.
 
결국 앨버타주는 외부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됐다. 지난 9월 30일 뉴펀들랜드와 래브라도주, 캐나다 군, 캐나다 적십자로부터 의료진 지원을 받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월요일부터 외부 의료진들의 배치가 시작됐다. 온타리오주와 마니토바주로부터는 필요하다면 환자를 이송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경우에 대비해 미국의 병원들에도 연락을 취해놓은 상태다.
 
규제도 다시 시작됐다. 일단 백신 여권 제도가 시행중이다. 2만5000명의 공무원들에게는 11월 말까지 백신접종 완료 혹은 지속적인 음성확인서 제출이라는 의무사항이 생겼다. 야외모임 가능 인원은 200명에서 20명으로 대폭 줄었고, 너무 늦었다는 비난 속에서 학교 내의 밀접 접촉자 추적도 다시 재개됐다.
 
하지만 바이러스 확산 억제를 위해 강력한 락다운 시행을 요구하는 의료 관계자들은 정부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표하고 있다. 제이슨 케니 주지사는 바이러스 전파나 중증으로의 발전 위험이 훨씬 적은 80%의 백신 접종자들에게 락다운은 타당치 않으며, 4차 유행을 주도하고 있는 20%의 미접종자들은 규제를 제대로 따르지 않을 것이라며 락다운 시행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백신여권 제도,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다시 시작된 규제들, 외부로부터의 지원과 공무원 백신 의무화 같은 조치들이 상황을 개선시켜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응급실 의사 조 비퐁은 주지사가 즉각적이고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대신 백신의 중요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앨버타주 간호사 연합 부회장 다니엘 라리비는 외부 의료진들의 지원에 매우 감사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산불에 물 한 동이를 붓는 것과 같은 격이고 간호사들은 극도로 지쳐 있다며 확진자를 감소시키기 위한 락다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앨버타 대학의 감염병 의사 일란 슈왈츠 역시 4차 유행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락다운 시행이나 외부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머뭇거린 주지사를 비판했다.
 
앨버타는 무모하게도 모든 규제를 해제하고 팬데믹 종식을 선언했다. (주지사) 제이슨 케니는 우리가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있으며 코로나는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며 경계심을 내던져 버렸다. 그것은 심각한 실수였다. 하지만 상황을 훨씬 더 악화시킨 것은 증가하는 확진자수를 보여주는 데이타에 대응하지 못한 무능함이다.
 
일란 슈왈츠는 4차 유행으로 앨버타주의 병원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됐다며 "이 상황은 미접종자들만의 팬데믹이 아니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임을 강조했다. 중환자실이 포화상태가 된다는 것은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고를 당했는데 긴급수술을 받을 수 없다면, 맹장이 터진다면, 동맥류가 있다면 말이다.
 
"되돌릴 순 없지만 교훈은 남았다"
 
캐나다 중서부 앨버타주 에드먼턴의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지난 4월 12일(현지시간) 코로나19 봉쇄와 마스크 착용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캐나다 중서부 앨버타주 에드먼턴의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지난 4월 12일(현지시간) 코로나19 봉쇄와 마스크 착용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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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CBC뉴스는 "팬데믹이 끝난 듯 행동했던" 앨버타주의 현 상황에 대해 "되돌리기 버튼을 누를 수는 없지만 교훈은 남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앨버타의 코로나 상황은 갈수록 더 악화되어 왔다. 이는 적절치 못한 정책 결정, 낮은 백신 접종률(앨버타주는 캐나다에서 가장 접종률이 낮은 주에 속함. 캐나다 전체와 앨버타주의 백신 접종 완료율은 각각 80.5%, 73.5%), 그리고 재빠른 대처 실패가 어떻게 재앙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교훈을 제공해주고 있다.
 
코로나를 독감 같은 다른 질병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다루며 더불어(?) 살아가는 이른바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 누구나 바라지만 아직은 손에 잡히지 않는 그 시대를 성급히 받아들이려 했던 앨버타주는 선구자가 아닌 패배자가 돼 4차 유행의 한가운데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섣부른 규제 해제는 위드 코로나 시대를 한층 멀리 밀어낼 뿐이라는 의도치 않은 교훈을 전하면서 말이다.

태그:#캐나다, #알버타주, #코로나 규제 해제, #위드 코로나, #4차 대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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