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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거미가 나타났어!"
"밤 주우러 갈 때가 되었네."


제법 큼직한 거미가 거실로 기어가는 모습을 보고 내가 호들갑을 떨었더니, 남편이 와서 잡아주면서 중얼거렸다. 우리네는 밤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추운 겨울에 먹는 군밤을 떠올리며 맛있다는 생각부터 들지만, 캐나다인 남편은 거미가 먼저 생각이 난다. 그 이유는, 우리 부부가 각각 머릿속에 그리는 밤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로니에 열매는 먹지 못한다

남편이 말하는 밤은 마로니에 나무에서 열린 밤이다. 우리 집 곳곳에는 이 마로니에 밤이 놓여 있다. 처음에는 의아하여, 이 아까운 밤을 왜 먹지 않고 이렇게 두느냐고 남편에게 물어봤는데, 먹지 못하는 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영어로는 'horse chestnut(말밤)'이라고 부르는데, 막상 사전을 찾아보니 우리 말로는 마로니에라고 나와 있었다. 마로니에는 우리나라 단어가 아니지만 이미 친숙한 단어이기는 하다. 마로니에가 심어진 공원들도 이제는 많이 있다.
 
마로니에 나무
 마로니에 나무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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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올해도 가을로 접어들면서 마로니에 열매를 주워올 때가 되었기에, 남편과 길을 나섰다. 동네에 유난히 마로니에가 많은 가로수길이 있다. 남편이 처음 밤 주우러 가자고 했을 때에는 숲 속에 갈 거라고 기대했지만, 이 나무들은 의외로 큰 길가에 있었다. 

매년 갈 때마다 흐드러지게 땅에 널려 있었는데, 올해엔 평년보다 좀 늦었더니 하나도 안 보여서 깜짝 놀랐다. 아마 시에서 싹 쓸어서 청소를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찬찬히 살피자 잔디밭 사이사이로 열매가 보였고, 모퉁이를 돌아서니 좀 더 여유 있게 놓여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마로니에와 껍데기
 바닥에 떨어져있는 마로니에와 껍데기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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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가 벗겨진 채 뒹굴고 있는 마로니에 열매들
 껍데기가 벗겨진 채 뒹굴고 있는 마로니에 열매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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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들여다보면 얼마나 토실하고 귀여운지 모른다! 일반 밤보다는 작은 알인데, 윤기가 좌르르 흐르면서 맨질맨질하다. 남편과 나는 쭈그리고 앉아서 주워 담기 시작했다. 별로 고를 것도 없었다. 상태가 다 좋았고, 떨어진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상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국 밤들은 대부분 밤송이 안에 들어 있어서 발로 밟아 벌려서 까곤 했었는데, 이것들은 완전히 벌어진 채 떨어져 있으니 줍는 것은 정말 일도 아니었다.
 
마로니에 열매를 주워서 버킷에 담은 모습
 마로니에 열매를 주워서 버킷에 담은 모습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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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없는 것 같았는데도 버킷은 금방 충분히 찼다. 먹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다. 이 밤은 관상용이다. 보기만 해도 토실토실 예쁘다. 하지만 독성이 있어서 먹지는 못한다.

죽을 만큼의 독성은 아니라지만 먹으면 발열, 복통, 구토 등 심각하게 앓을 수 있다. 귀여워서 한 입 먹어 보고 배탈이 났다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에게 들었다. 사실 한국 사람이라면 정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물에 담그고 타닌을 제거해서 간식으로 활용하기도 한다는데,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서 일반 가정에서는 별로 권하고 싶진 않다. 그러면 우리 집에서는 이걸로 뭘 할까?

먹을 수 없지만, 거미를 퇴치하는 용도로 사용
 
마로니에를 반으로 잘라서 향이 밖으로 나게 한다.
 마로니에를 반으로 잘라서 향이 밖으로 나게 한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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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온 우리는 밤을 잘라서 집안 곳곳에 가져다 놓는다. 밤 안쪽도 어찌나 튼실한지! 뽀얀 속살이 보이는 게 참 예쁘다. 신기한 것은, 우리네 한국 밤은 사다 놓고 며칠만 방치하면 벌레가 많이 나오는데, 이 마로니에 밤은 독성이 있어서인지 일 년 내내 이렇게 둬도 벌레가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 못 먹으니 벌레도 못 먹는가 보다. 그 독성 때문에 거미도 피해 간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잘라서 두면, 집안에 거미줄이 생기지 않는다는 게 남편의 주장이다.
 
거실에 놓인 마로니에 열매. 거미를 쫓아준다고 한다
 거실에 놓인 마로니에 열매. 거미를 쫓아준다고 한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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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고, 그냥 서양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 마로니에 안의 사포닌 성분이 강해서 거미를 퇴치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쩌면 우리 한국에서 금줄을 친다든지 하는 것 같은 심리적 효과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쁜 밤을 이렇게 집안에 놔두니 은근 인테리어 효과도 있고 자연 속에 있는 듯 기분이 좋다. 한국에서도 요새는 마로니에 나무가 있는 공원들이 많이 있으니 그런 데서 주워다가 집안에 장식용으로 둬도 좋을 것 같다. 단!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은 주의해야 한다. 잘 모르고 입에 넣으면 위험할 수도 있을 테니.

태그:#마로니에, #거미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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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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