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01 17:20최종 업데이트 21.11.0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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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리이자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후미오가 지난 10월 31일 도쿄 자민당사에서 열린 총선 후 언론과의 생방송 인터뷰에 참석해 웃고 있다. ⓒ 연합뉴스=EPA

 
10월 31일, 4년 만에 열린 제49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일본 자민당·공명당 여당세력이 승리했다. 자민당은 해산 전 276석에서 불과 15석만 잃은 261석으로 절대 안정 의석을 획득했다. 공명당은 29석에서 32석으로 3석을 늘려 두 정당을 합하면 293석이다. 172석을 획득한 야당세력보다 121석이나 더 많으며, 이는 전체 의석수(465석)의 63%에 해당한다.

일본 중의원은 크게 233석, 261석, 310석을 각각 정국운영 기준 의석으로 삼는다. 과반수에 해당하는 233석을 획득할 경우 집권여당이 되며, 261석의 절대 안정 의석은 각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독식할 수 있다. 310석 이상일 경우 중의원에서의 개헌안 통과가 가능하다.


선거 전에는 2017년 아베 체제 하의 일방적인 선거전, 4년간 현 정권의 각종 스캔들 및 코로나 정국에서의 실정, 야당 5당의 단일화 등을 이유로 자민당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봤다. 실제로 일본 언론 및 정치평론가들은 자민당이 단독 과반수(233석)와 절대 안정 의석(261석) 사이에 머물 것으로 봤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자민당 혼자서도 절대 안정 의석을 확보하는, 사실상의 대승리였다.

또한 야당이긴 하지만 당의 강령 및 사상적 색채에 있어 자민당과 별 차이가 없는 '일본유신회'가 해산 전 11석보다 30석이나 늘어난 41석을 획득해 일본사회의 보수 성향은 오히려 짙어졌다고 볼 수 있다.

보수 대승리... 개헌도 가능?

일본유신회는 개헌에 찬성하고 있으므로,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과 개헌에 관해 정책연합을 펼 경우 이 세 정당만으로 334석, 즉 개헌선인 310석을 가뿐하게 추월한다. 이번 중의원 임기 내에 개헌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견해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이유다. 물론 개헌의 경우 참의원 2/3의 찬성, 국민투표 등의 복잡한 절차가 남아 있다. 하지만 중의원에서 여당세력 및 야당 한 곳만으로 개헌안 통과가 실질적으로 가능해진 경우는 전후 일본 역사상 처음이다.

반면, 반전의 기회를 노리던 입헌민주당은 의석수를 늘릴 것이라는 출구조사 예상과 달리 최종개표가 끝난 지금 해산 전 110석보다 14석을 잃은 96석을 얻은 것에 그쳤다. 쓰지모토 기요미 당 부대표를 비롯해 현 민주당을 만든 산파이자 2009년 정권교체의 주역인 오자와 이치로가 낙선해 충격은 배가 됐다. 쓰지모토는 낙선 소감을 묻는 질문에 "선거운동기간 때부터 일본유신회의 바람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유신회는 오사카 지역구 19개 중 15개 지역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2021년 10월 31일 실시된 제49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 현 입헌민주당을 만든 산파이자 2009년 정권교체의 주역인 오자와 이치로가 낙선해 충격을 줬다. 사진은 2013년 7월 3일 도쿄의 일본 언론 클럽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오자와 이치로 당시 생활의 당 대표 ⓒ 연합뉴스

 
일본유신회의 약진은 코로나 정국에서 이름을 알린, 유신회 부대표 겸 오사카부(府)지사 요시무라 히로후미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자민당은 싫지만 그렇다고 기존 야당에 표를 주기도 싫은 보수적 성향의 오사카 유권자들이 대거 유신회로 몰렸다고 볼 수 있다.

마쓰이 이치로 일본유신회 당대표는 31일 TV아사히 <보도스테이션> 영상인터뷰에서 "우리 당이 승리했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권 선택 선거에서 과반수를 저쪽에 넘겨줬기 때문에 야당 전체의 패배이며, 우리는 야당세력 안에서 조금 세를 불린 것에 불과하다"라고 자신들의 정체성이 야당에 있음을 강조했지만, 그의 말은 정치적 수사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공산당, 사회민주당, 레이와신센구미의 야당 후보단일화 연합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 야5당은 자민당 독주를 막겠다며 전국 289개 지역구 중 217곳에 단일후보를 냈지만 전체 획득 의석수를 보면 해산 전의 131석보다 10석이 줄어든 121석에 그쳤다. 이 열개의 의석을 여당 자민당이 가져간 것이 아니라 일본유신회가 가져갔고, 자민당의 줄어든 의석도 이쪽으로 몰렸다. 즉 여당과 야당의 줄어든 의석수를 일본유신회가 획득한 것이다. 2016년 한국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약진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한다.

한편 이번 선거의 승리로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투표율은 55.93%로 2017년 53.68%에 비해 약 3%포인트 늘었다. 자민당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던 2017년 총선거는 전후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로 인해 민의가 제대로 반영된 것이 아니라며 임기 내내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2012년 자민당 재집권 후 실시된 세 차례 평균투표율 55.22% 보다 높다. 또 무엇보다 야당이 단일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안정의석 수를 획득했다.

세대교체? 살아남은 아베·스가 4인방

세대교체 분위기도 감지됐다. 아마리 아키라 간사장이 지역구에서 낙선했고, 이시하라 노부테루는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조차 당선되지 못했다. 일본 총선거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양쪽으로 후보이름을 올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역구에 낙선한 후보가 비례명부 앞쪽이면 당선이 가능하다. 이를 '부활당선'이라 하는데, 아마리 간사장은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아 이번에도 의원직은 유지했다. 하지만 현역 간사장이 지역구에서 낙선하는 경우는 자민당 역사상 처음 있는 사건이다.

아마리 간사장은 31일 방송인터뷰에서 "내 거취문제는 (기시다) 총재에게 일임할 생각"이라 말했고, 기시다 총리는 해임으로 가닥을 잡았다. 가가와의 맹주로 불리던 히라이 다쿠야 전 디지털청 장관도 지역구 낙선 후 비례대표로 부활해 체면을 구겼다. 하지만 이들은 그나마 의원직을 유지했지만, 이시하라 신타로의 아들이자 당 간사장을 역임한 바 있는 거물 이시하라 노부테루는 부활당선도 없는 완전낙선으로 결정 났다.
 

2021년 10월 31일 열린 제49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간사장이 지역구에서 낙선했다. 현역 간사장이 지역구에서 낙선하는 경우는 자민당 역사상 처음 있는 사건이다. 사진은 일본 총리이자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후미오(사진 오른쪽)와 자민당 간사장인 아마리 아키라(왼쪽)가 지난 10월 31일 도쿄 자민당사에서 열린 총선 후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 연합뉴스=EPA

 
앞서 언급한 민주당의 거물 오자와 이치로, 쓰지모토 기요미를 포함한다면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세대교체가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총리로 재신임될 기시다 역시 당3역 임기조정 등으로 세대교체에 긍정적인 입장을 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가 대세로 자리 잡긴 힘들다. 아마리는 물러나겠지만 아소 다로(후쿠오카 8구) 부총재와 아베 신조(야마구치4구) 전 총리는 가장 먼저 당선확정 표시가 떴고, 니카이 도시히로(와카야마3구) 전 간사장도 여유롭게 지역구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가나가와 2구의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도 관록의 승리를 거뒀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십여 년간 아베, 스가 정권을 지탱해 온 4인방은 다 살아남은 셈이다.

총선 승리로 인해 기시다 내각이 추진력을 얻기야 하겠지만 이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고, 또 기시다 본인이 "많은 의견을 경청하며 정국을 운영하겠다"고 밝혀왔기 때문에 지금까지와 확연히 다른 개혁 정책들이 펼쳐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요괴'라 불리는 니카이 전 간사장은 31일 당선이 확정된 후 TBS 선거특별방송 <선거의 날 2021, 오타 히카리가 묻는다! 우리의 미래>에 출연해 진행자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오타가 인터뷰 도중에 "그런데 니카이 상은 언제까지 정치가를 할 생각이냐?"라고 묻자 니카이가 "그건 국민들이 정하는 거지 당신이 정하는 게 아니다. 당선 확정된 날 그런 질문하는 것 자체가 실례다!"라며 화를 낸 것이다. 또한 니카이는 "자민당이 변해야 한다, 바꾸겠다라고 하는데 정치가에게 중요한 건 실행력이지, 저런 공허한 구호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2선으로 후퇴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하게 밝히기도 했다.
 

니카이 도시히로 전 자민당 간사장. 사진은 2021년 9월 3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니카이 자민당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하러 들어서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아무튼 이번 중의원 총선거의 의미를 다시 한번 분석해 보자면, 먼저 투표율은 이전에 비해 조금은 상승했지만 2009년 정권교체 당시의 69.28%에는 턱없이 부족한 55%다. 야당연합을 했지만 의석수가 줄어들고 일부 정책에선 자민당보다 더 보수적인 일본유신회가 30석 이상을 추가로 획득했다. 세대교체 바람은 아주 조금 불긴 했지만 아베, 아소, 니카이, 스가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 4인방은 그대로 살아남았기 때문에 세대교체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진 못할 것이다.

종합해 본다면 기시다 내각은 안정적으로 출범해 이번 총선 승리를 바탕으로 추진력도 얻겠지만, 대내대외 정책면에서 기존의 아베, 스가 정권과 별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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