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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서욱 국방부장관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속 군대 모습을 두고 "지금의 병영 현실하고 좀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0년 이후 선고된 군 구타·가혹행위 판결문 183건(민간법원 134건, 군사법원 49건)을 분석했습니다. 판결문에 담긴 군 구타·가혹행위의 심각성과 근절되지 않는 구조적인 이유 등을 일곱 차례에 걸쳐 보도합니다. 이 기사는 그 첫 번째입니다. [편집자말]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군 부조리를 고발하는 한편, 방관이란 화두를 던진다.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군 부조리를 고발하는 한편, 방관이란 화두를 던진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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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이 조금 극화되어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병영 현실하고 좀 다른 상황일 것입니다…."

서욱 국방부장관은 지난 9월 8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D.P.>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당시 <D.P.>로 인해 군 구타·가혹행위가 다시금 조명된 상황이었다. 며칠 뒤 국방부 산하 국방홍보원에서 운영하는 국방TV 유튜브 채널에 "부조리는 다 사라진 것 같습니다"라고 발언하는 현역 장병의 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D.P.> 속 구타·가혹행위는 이젠 사라진 악습이거나 과장된 걸까. <오마이뉴스>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2020~2021년 군사법원과 민간법원에서 선고된 군 구타·가혹행위 판결문 183건을 입수했다. 판결문 분석 결과, 서욱 장관의 말과는 달리 <D.P.> 속 구타·가혹행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D.P. 속 가혹행위 ①] 후임병 팬티 벗기고 강제 추행... 추행만 134회  

드라마 <D.P.>를 관통하는 주제는 탈영의 이유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조석봉 일병이다. 조 일병이 탈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계속되는 폭행뿐만 아니라, 자위행위를 강요당하는 등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이었다.  

지난해 해병대 제1사단에서 있었던 일은 조 일병이 당한 일보다 훨씬 심각했다. 2020년 5월 경북 포항시 해병대 제1사단 생활반에서 선임병 3명이 후임병의 바지와 팬티를 벗기고 강제 추행했다.

특히 선임병 가운데 이런 일을 주도한 김아무개 상병은 피해자를 상대로 추행한 것만 134회에 달한다. 여기에 폭행만 70차례였다. 피해자는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토로하면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계속적인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았다. 지난 2월 해병대 제1사단 보통군사법원은 김 상병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D.P. 속 가혹행위 ②] 담뱃불로 지지기? 

<D.P.>에서 황장수 병장은 조석봉 일병을 상대로 이른바 '불고문'도 벌인다. 라이터 불로 조 일병의 음모를 태우거나 담뱃불로 신체를 지졌다. 현실에서는 이와 유사한 불고문 사례를 확인할 수 있을 뿐더러, 심지어 전기고문 사례까지 발생했다.

2019년 11월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에서는 선임병이 뜨겁게 달구어진 터보라이터 화구를 후임병의 손등, 이마, 목에 가져다 댔고, 후임병은 2도 접촉화상을 입었다. 선임병이 여러 차례에 걸쳐 후임병들에게 손에 세정제를 바르도록 한 후 라이터로 손에 불을 붙이거나 불을 붙인 라이터에 살충제 '에프킬라'를 분사해 피해자의 오른쪽 눈썹을 태운 사례도 확인된다.

2020년 5월 강원도 고성군의 한 부대에서 군 간부가 한 병사의 무릎에 물을 붓고 여기에 전기파리채를 15분 동안 반복해서 작동시켰다. 전기파리채로 가혹행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확인된 것만 같은 해 3~7월까지 18차례에 달했고, 어떤 경우에는 피해자 전신에 전기파리채를 대고 작동시켰고 그 시간은 1시간에 달했다.

또한 가해자가 피해자로 하여금 전기파리채에 손가락을 집어넣거나 그 위에 올라가기를 요구하고 피해자가 거부하면 주먹으로 피해자를 폭행한 것만 여러 차례였다. 결국 피해자는 전치 4주의 피해를 입었다. 가해자는 전기파리채를 이용한 가혹행위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36회에 걸쳐 535대 때리고 대검으로 왼손 등을 찌르기도 했는데, 제8군단 보통군사법원은 가해자에게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 등으로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D.P. 속 가혹행위 ③] 개처럼 "왈왈" 짖게 한 행위, 무죄

"야, 우끼끼 해봐!" "짖어!"

황장수 병장을 비롯한 여러 선임병들은 조석봉 일병을 둘러싸고 그에게 원숭이 흉내를 내도록 명령한다. 조 일병이 "우끼끼"라고 하자, 선임병들은 폭소를 터트린다. 이와 같이 동물 흉내를 강제하는 것은 대표적인 인격 모독행위다.

2020년 5월 경기도 김포시 해병대 제2사단에서는 개 흉내를 내도록 했다. 선임병이 대민지원장소나 위병소 자동문 앞 등지에서 후임병으로 하여금 머리를 만지면 개처럼 "왈왈" 짖게 했다.

이 같은 행위로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2021년 5월 해병대 제2사단 보통군사법원은 가해자의 다른 행위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개 흉내를 내도록 한 것은 "피해자에게 견디기 어려운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발생하였을 것으로 예상하기 어렵다. (중략) 군형법으로 처벌할 필요성이 있는 범죄로 보기 어렵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D.P.> 속 가혹행위 ④] 80회 무지막지한 폭행... 군용 대검도 등장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2014년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2014년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 군 수사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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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에서는 조석봉 일병이 무지막지한 폭행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판결문 속에서 위험한 물건을 이용하는 특수폭행이나 심각한 폭행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20년 7월 취침시간 후 한 해병대원은 다른 해병대원을 침대에 눕혀 결박시킨 다음 주먹으로 허벅지 가슴 등을 80회 때렸다. 피해자는 처벌을 강력히 원했지만, 해병대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2021년 1월 가해자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선처의 이유로 가해자가 범행을 자백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점 등을 댔다.

군용 대검도 여러 판결문에서 등장한다. 군용 대검은 길이가 30cm에 달하고 칼날 부분만 17cm다. 2021년 6월 제8군단 보통군사법원 판결문 내용이다.
 
피고인 선임병은 2020년 5월 12일 19:00경 소속대 탄약고 초소에서 경계작전명령에 따라 탄약고 경계초병으로 임무수행을 하던 피해자 후임병에게 아무 이유 없이 흉기인 군용 대검을 꺼내 피해자에게 보여주며 "날이 안서 있어 위험하지 않다"라고 말한 뒤 군용 대검으로 피해자의 왼쪽 가슴 부위를 고통 느낄 정도의 강도로 2회 찌르고...

이 선임병은 이튿날 길이 45cm, 직경 약 2.5cm의 진압봉으로 방탄모를 쓴 후임병의 머리를 1회 가격했고, 그 이튿날에는 후임병을 다시 군용 대검을 찔렀다. 제8군단 보통군사법원 재판부는 군용대검과 진압봉을 두고 "피해자는 물론 제3자로 살상의 위험을 느꼈을 것이라고 인정되므로, 이 사건 군용대검과 진압봉은 흉기 및 위험한 물건에 해당한다"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자백한 점이 감안돼 실형은 선고되지 않았다(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D.P. 속 가혹행위 ⑤] 여치, 잠자리, 독성식물 입 속에 주입 

2020년 7월 24일 오후 한 군부대 위병소에서 선임병이 4cm 크기의 살아 있는 여치를 잡았다. 그는 후임병에게 "야, 너 이거 먹을 수 있냐"라고 말하면서 여치 몸통을 후임 입 안에 넣었다. 후임은 여치를 20초간 씹고, 그 몸통의 1/3을 삼켜야 했다. 선임은 며칠 뒤 후임을 침대에 눕힌 다음 허벅와 가슴을 주먹으로 90회 때렸다.

입에 여치를 집어넣는 것과 같은 엽기적인 가혹행위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2020년 6월 26일 오후 3시 경기도 김포시의 해병대 제2사단의 한 생활반. 선임병은 후임병의 입에 잠자리를 넣었고 후임병으로 하여금 잠자리 날갯짓을 흉내내도록 했다. 후임병은 40초가량 입에 잠자리를 넣고 있어야 했다.

선임병이 후임병으로 하여금 이름을 알 수 없는 독성식물을 먹게 한 사례, 선임병이 후임병의 입에 1.5cm 크기의 콩벌레를 라이터로 구워 후임병 입속에 넣었다가 빼고 두꺼비의 배설물을 젓가락으로 집어 피해자에게 냄새를 맡게 한 경우도 있었다.

정말 요즘 군대는 다를까
 
서욱 국방부 장관이 9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의 넷플릭스 드라마 D.P와 관련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9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의 넷플릭스 드라마 D.P와 관련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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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2014년부터 매년 전년도 통계를 정리한 국방통계연보를 발간한다. 병사들이 폭력 범죄로 군검찰에 의해 군사재판에 넘겨진 건수를 분석해보면, 가장 최신 데이터인 2019년에는 327건이었다. <D.P.>의 극중 배경인 2014년 514건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지만, 2013년 288건에 비하면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서욱 장관의 말처럼 <D.P.> 속 구타·가혹행위가 현재의 병영 현실과 다르다고 강조하는 것은 안일한 인식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군 법무관 출신인 김정민 변호사는 "구타·가혹행위가 줄어드는 등 군 인권이 과거보다 좋아졌다고 하는 것은 맞는 얘기일 수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면서 "그 개선의 속도가 국민들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군 간부들은 군 인권에 대한 눈높이를 자기 자식을 생각하듯 설정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는 군기를 잡는 개념으로 구타·가혹행위가 이뤄졌다면, 지금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괴롭힘의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군은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모병제로의 전환이라는 장기적인 계획 하에 지속적으로 인권을 강조하고 군을 더욱 개방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병사들이 일과시간에도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태그:#군대_내_폭력_가혹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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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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