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성자 이세종 생가
 성자 이세종 생가
ⓒ 김이삭

관련사진보기


화순이 낳은 한국의 호세아, 이세종

개천산과 천태산을 병풍으로 삼고, 등광제를 앞에 끼고 있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의 조용한 시골 등광리에는 한국 기독교가 낳은 불세출의 인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맨발의 성자요 한국의 프란시스라 불리는 '이공(李空)' 이세종의 생가와 기도터가 이곳 등광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1880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이세종은 부지런히 머슴살이를 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접하고 나서 참된 진리를 깨달은 그는 나눔과 절제를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종의 이야기는 한국 기독교를 포함해 많은 이들에게 잊히면서 묻힌 감이 없지 않다. 그나마 생가와 기도터가 남아 있고, 그를 존경하며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이 남아 있는 점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성자 이세종의 생가와 기도터 표지판
 성자 이세종의 생가와 기도터 표지판
ⓒ 김이삭

관련사진보기


이세종의 이야기가 담긴 등광리로 가는 길

이세종 선생이 태어난 등광리는 교통편이 열악한 곳이다. 광주의 관문인 유스퀘어를 경유하는 화순 버스 218번이 이곳을 종점으로 삼고 있지만, 하루에 4번(오전 8시, 오전 11시 40분, 오후 2시 15분, 오후 4시 55분)밖에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버스를 놓쳐서 실망할 것까지는 없다. 도암면을 경유하는 218번과 318-1번을 타고 도암면 소재지에서 하차해서 '성자 이세종 생가'라는 표지판을 보며 따라가면 된다. 다만 도암면 소재지에서 내려서 성지까지 2km가 넘는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성자 이세종 생가
 성자 이세종 생가
ⓒ 김이삭

관련사진보기


이세종 생가와 기도터를 향해 걷는 길

등광리 입구에서 시골길을 따라 걸어가면 한 눈으로 봐도 소박해 보이는 초가집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성자 이세종의 생가이다. 한때 한국이 낳은 성자의 생가답지 않게 부서지고 방치되었던 것과는 달리, 지금 우리가 만나 볼 수 있는 이세종 생가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난 2013년부터 2년 동안 교계와 지자체가 합심해서 복원한 곳이다. 그만큼 의미가 깊은 곳이다. 
'이공(李空)' 이세종 기도터를 향해 가는 산길
 "이공(李空)" 이세종 기도터를 향해 가는 산길
ⓒ 김이삭

관련사진보기

성자 이세종 기도터
 성자 이세종 기도터
ⓒ 김이삭

관련사진보기


이세종 생가를 나와서 이세종 기도터를 가기 위해 개천산의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 뒤를 돌아보면 등광제가 눈에 아른거릴 정도로 높고도 가파른 산길을 한참 동안 걸어서 올라가다가 '이공님 기도터'라고 쓰인 간판이 걸린 2층짜리 작은 집을 보자마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기도터를 가기 위해 산길을 힘들게 올라가는 중이었기에 더더욱 그랬었다.

개천산 기슭에 자리해 있는 이세종 기도터, 이곳은 원래 이세종이 자식이 없어서 자식을 낳기 위해 빌었던 산당이 자리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우연찮게 성경을 접하여 진리를 얻은 그는 자식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산당을 헐어서 그 자리에 지금의 '이공 기도터'에 해당하는 기도터를 짓는다. 이는 그가 복음을 접하고 변화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그동안 자신이 벌어들였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었고, 모든 욕망을 거부하는 절제된 삶을 살아왔다. 이렇듯 이세종은 단순히 복음을 전해 들은 것을 넘어서 '행함이 없는 믿음'과 같은 겉치레나 위선적인 것을 거부하고 '행함이 있는 믿음'의 본보기로서 신앙생활을 해왔음을 행동으로 드러냈다. 
 
이세종 생가 가는 길
 이세종 생가 가는 길
ⓒ 김이삭

관련사진보기


이세종 생가와 기도터를 다녀가며

이세종은 부지런히 머슴살이를 하며 번 돈과 땅으로 충분히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로 살아 갈 수 있었다. 당시 그가 가지고 있었던 땅만 해도 수십 마지기나 될 정도로 남부럽지 않은 삶이었다. 그러나 성경을 접하고 선교사에 의해 세례를 받은 뒤, 그의 인생은 철저히 타인을 위해 베풀고, 신앙을 위해 욕망을 억누르고 절제하며, 자기 자신을 드높이는 것도 거부하는 삶으로 뒤바뀐다.

그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그를 빈 껍데기라는 뜻의 '이공(李空)'이라 부를 정도였다. 그렇게 빈 껍데기와 같이 자신의 것을 버리고 남을 베풀며 살아가는 이세종을 본 이현필은 뒷날 동광원과 귀일원을 세우고 '맨발의 성자'라 불릴 정도로 자신의 인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는 데 힘쓰며 살았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이세종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남에게 베풀며 욕망을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분명 무리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일제가 우리 민족을 수탈하고 억압했던 식민지배를 겪었던 시대에는 더더욱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힘겨웠던 시대에도 예수를 닮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이세종의 삶은 더더욱 놀랍기 이를 데 없다. 그런 면에 있어서 한국 기독교가 자신에게 빚을 졌던 사람들의 빚을 모두 탕감해주었던 이세종을 본받는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isak4703/37)에서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국민프로듀서보다 솔직담백한 국민리뷰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