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의 중국 대회 취소 결정을 보도하는 미국 CNN 갈무리.

세계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의 중국 대회 취소 결정을 보도하는 미국 CNN 갈무리. ⓒ CNN

 
세계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가 중국 고위 관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테니스 스타 펑솨이의 안전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중국에서 열릴 예정인 대회들을 모두 보류하겠다는 '초강수'를 던졌다.

WTA 투어 스티브 사이먼 대표는 2일(현지시각) 공식 홈페이지에 성명을 내고 "WTA 이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로 홍콩을 포함해 중국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의 개최를 보류하기로 했다"라고 발표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펑솨이 관련 의혹에 대해 투명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펑솨이가 자유롭게 소통하지 못하고, 자신이 당한 성폭행 의혹을 밝히는 것에 압력을 받는 곳에서 우리 선수들이 가서 경기하도록 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영상 통화로는 부족해"... 중국-IOC 유착 의혹도 

펑솨이는 2013년 윔블던, 2014년 프랑스오픈 여자 복식 우승을 차지하며 한때 복식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던 선수였다. 

그런데 지난달 2일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장가오리(75) 중국 국무원 전 부총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장가오리는 중국 공산당 산둥 위원회 부서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원 부총리 등을 지낸 최고위급 인사다.

하지만 펑솨이의 계정은 해당 게시물이 올라온 지 불과 30분 만에 삭제됐고, WTA와 주요 외신이 사실 파악을 위해 펑솨이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어떤 응답도 받지 못하고 행방이 묘연해 안전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다.

그러다가 지난달 22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펑솨이와 영상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당시 통화에서 펑솨이는 "자신의 집에서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사생활을 존중받고 싶다"라고 밝혔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펑솨이의 영상 통화를 보도하는 영국 BBC 갈무리.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펑솨이의 영상 통화를 보도하는 영국 BBC 갈무리. ⓒ BBC

 
그러나 WTA는 이 영상 통화가 펑솨이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관련 기사 : 펑솨이, 19일 만에 웃으며 나타났지만... 의혹만 더 커졌다).

당시 AP통신도 "펑솨이와 IOC 간의 영상 통화는 오히려 더 많은 의혹을 제기하게 된다"라며 "IOC는 펑솨이와 통화한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고, 그녀가 폭로했던 성폭행 의혹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둔 IOC가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으며, 중국의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바흐 위원장과 장가오리 전 부총리가 가까운 사이였다는 '유착 의혹'까지 제기됐다. 

앞서 중국 정부가 펑솨이와 관련한 의혹을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을 경우 중국에서 열릴 대회를 모두 취소하겠다고 경고했던 WTA는 사건 발생 후 한 달이 되도록 별다른 진전이 보이지 않자 결국 행동에 나선 것이다.

WTA, 최소 10조 원 손실... "펑솨이 문제가 더 중요"
 
 세계여자프로테니스(WTA)의 중국 대회 취소 결정 성명 갈무리.

세계여자프로테니스(WTA)의 중국 대회 취소 결정 성명 갈무리. ⓒ WTA

 
WTA가 중국에서 열릴 대회를 모두 취소한다면 적어도 10억 달러(약 1조 1천억 원)에 달하는 금전적 손실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사이만 대표는 "이번 결정에 WTA에 금전적으로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펑솨이 문제가 더 중요하다"라며 "만약 권력자들이 여성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성폭행 의혹을 덮는다면 WTA의 설립 기반인 평등권은 크게 후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런 결정에 이르게 된 것이 매우 유감스럽지만, 중국 정부는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라며 "만약 중국이 펑솨이 문제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대회는 다시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테니스협회(USTA)가 "매우 용기 있는 리더십"이라며 지지 의사를 밝힌 데 이어 페트라 크비토바(체코), 셸비 로저스(미국) 등 여성 테니스 스타들도 WTA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1980~1990년대 메이저대회 우승을 18차례나 차지하며 여자 테니스계를 주름잡았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체코)도 "돈보다 인권이 먼저"라며 "우리는 전 세계의 여성들, 특히 펑솨이를 위해 일어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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