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14 06:11최종 업데이트 21.12.14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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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만 지원 대상이 아닙니다. 인원·시설운영 제한 업종으로 지정되었거나 매출 감소로 버팀목 자금을 200만 원 이상 지원받았어야 대상이 됩니다. 아쉽지만 이 대상에 충족되지 않습니다. 정부 정책이 바뀔 수 있으니 다음에 다시 문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힘들다는 소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오는 요즘이다. 임대료에다 공과금, 인건비까지 돈 나갈 곳은 첩첩산중인데 매출은 제자리이거나 어떤 날은 빈손벌이가 되기도 한다.


급한 불이라도 꺼야겠다는 생각에 몇 번이나 망설였던 대출을 알아보았다. 마침 소상공인 일상 회복 특별융자 제도를 소개한 기사가 떴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금리 연 1%, 5년 분할 상환. 이 조건으로 최대 2천만 원을 빌릴 수 있다면 한숨 돌릴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얼마나 어려워야 지원이 되나

그러나 희망이 또다시 절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의 전화 시도 끝에 연결된 콜센터 상담원은 몇 가지를 물어보고는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내놨다. 지금 일하는 업종이 인원·시설운영 제한 업종도 아니고, 버팀목 자금 지원도 100만 원을 받았기 때문에 '200만 원 이상 지원받아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른 융자 제도가 없을까 애원하다시피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코로나 피해 관련 소상공인· 자영업자 융자제도는 몇 가지 있지만 모두 이 조건이 기본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정부 제도가 바뀔 수 있으니 다음에 다시 문의해 달라는 안내는 빨리 전화를 끊어 달라는 예의 차린 종용처럼 들렸다.

같은 업종에 있는 옆집 사장님은 은행 대출을 알아보았는데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매출 규모가 전년도보다 줄어들었고 정부의 대출 규제 정책 때문에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매출이 줄어들고 힘드니까, 대출이라도 알아보는 게 아니냐는 항변 아닌 항변을 하고 왔다는 옆집 사장님과 나는 서로 한숨만 푹푹 주고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소상공인 손실보상 대상에서 제외된 업종에 대한 '일상회복 특별융자' 신청이 시작된 11월 29일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대출 상담을 받은 소상공인이 센터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은행에서는 매출이 줄었다고 대출을 거부하고, 정부 기관에서는 버팀목 자금을 지원받은 금액이 기준 금액보다 적으니 융자 대상이 안 된다는 모순된 상황. 도대체 얼마나 어려워야 정부의 융자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인원·시설운영 제한 업종의 도식만으로 코로나 피해 업종을 구별하는 정부 정책이 맞는지 따져 보고도 싶었지만 그럴 통로조차 알 수 없었다. 사업을 하면서 세금 한번 거른 적 없는 나에게, 국가 정책은 왜 이토록 모질게만 다가오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인원·시설운영 제한 업종만으로 손실 보상과 융자 등의 기준을 정하는 것만 하더라도 문제 투성이다. 식당이나 주점, 헬스장 등 직접적으로 영업 시간과 출입 인원을 제한받는 업종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업종만 손실 보상의 대상이고 나머지 업종은 그나마 살 만하지 않느냐는 인식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치고 코로나 정국의 각종 제한 조치로 피해를 보지 않는 업종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방위적 피해에 지원 대상을 제한 업종인가 아닌가로 구분하는 것은 구체성과 합리성이 떨어진다.

한술 더 뜬 국민 우롱

정부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에게 영업 시간과 인원을 제한하고 비대면 소비를 권장한 결과는 참혹했다. 동네 식당이나 골목에서 소비되어야 할 것들이 온라인 쇼핑몰이나 프랜차이즈 배달 업체로 옮겨갔다. 쿠팡이나 네이버 등 온라인 업체들은 사상 최대의 매출을 올리는 호황을 누렸다. 택배와 플랫폼 업체도 마찬가지였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매출과 이윤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 시장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정부가 코로나 극복을 자랑하고 있지만 손뼉칠 수 없는 이유는 정부 의도와 상관없이 골목 상권을 대형 온라인 시장에 넘겨줬기 때문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경제 생태계의 복원도 요원한 실정이다.

그러나 정부의 인식은 안일하기 그지없다. 국세 수입이 지난해보다 54조 원(10월 기준)이나 더 걷혔는데도 소상공인·자영업자 피해 구제에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선진국 다른 어떤 나라보다 국가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는데도 늘어난 세수로 국가 빚부터 줄여야 한다는 재정 당국의 고집은 여전하다.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거라는 절규가 하루도 끊이지 않은 현실에서 재정당국의 인색한 행태는 나라 곳간을 잠가놓고 마지못해 모래 썩인 구휼미(救恤米)를 풀던 사극 속 옛날과 다를 바 없다. 손실보상은 찔금, 특별융자도 바늘 구멍. 여기에 은행 대출까지 규제하면 소상인들과 자영업자들은 어디서 돈 구경을 하라는 말인가?

국민의힘의 100조 손실보상 해프닝은 여기에 한술 더 뜬 국민 우롱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자영업자 100조 원 손실보상'을 주장한 게 지난 12월 8일이었다.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당장 논의하자며 응수하자 국민의힘은 바로 말을 바꿨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될 될 때를 대비한 집권 구상이며, 추경이 필요해 대통령이 나서 제안하면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조잡한 변명으로 하루아침에 정부에 공을 넘겨버렸다(관련기사: 이재명 '환영'에 한발 뺀 김종인 "100조, 우리가 집권하면" http://omn.kr/1wd3a).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과 변명이다. 당장 '집권 못하면 손실 보상에 협조 안 할 거냐?', '소상공인·자영업자 다 죽고 난 후 조의금 내려는 거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자초한 일이다.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리는 격이다.

말의 성찬만 요란

위드 코로나를 표방하던 정부가 감염자가 폭증하고 오미크론 변이까지 출현하자 다시 일상 활동을 제한하는 규제 정책을 꺼내 들었다. 하루 7천 명이 넘어서는 감염자와 늘어나는 중증환자, 한계에 다다른 의료 시스템으로 일상 활동 제한 카드를 다시 꺼내 든 정부의 고충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소상공인·자영업자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서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또다시 희생과 양보만 강요한다면 생존을 건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반발이 크다면 규제 정책의 효과보다는 후과가 더 크다.

소상공인·자영업자 희생만 강요하는 기존의 정책은 한계에 봉착했다. 코로나 피해 손실보상은 다른 여러 나라들에 비하여 턱없이 적어서 한두 달 임대료이거나 공과금 보조 수준에 머무른다. 정부가 지원하는 융자도 이 조건 저 규정 따지다 보면 범주에 들어가기 힘들다. 은행 대출은 정부의 대출 조이기 정책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는 더욱더 바늘구멍이 되어버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 중이던 2020년 12월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식당가가 한산하다. ⓒ 연합뉴스

 
모두 다 죽겠다는 소리는 엄살이 아니다. 왜 우리만 이렇게 피해를 봐야 하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의 전향적인 인식 전환이 없으면 올 겨울 제대로 넘길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는 절규가 곳곳에서 넘쳐나는 요즘이다.

"날마다 퇴근하면서 잘 망할 수 있도록 기도해요. 이 장사해서 돈 벌 생각 아예 접었어요. 빚이나 갚고 나갈 수 있다면 잘 망하는 거지요."

이십 년을 이웃한 옆집 사장님의 하소연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가 100여 일도 남지 않았다. 50조, 100조, 언어의 성찬은 날마다 요란하다. 그러나 말의 잔치상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배불릴 수는 없다. 당장 필요한 건 집권 후 100조 약속이 아니라 오늘을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손실 보상과 지원 정책이다. 100조(?)의 절반이라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 죽어가는 사람들 먼저 살리고 보자고 하면 안 되나? 정부와 여야 정치권에 읍소하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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