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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에서 1심 구형이 있기 전 엄중처벌 촉구 결의대회가 있었다.
 지난 21일,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에서 1심 구형이 있기 전 엄중처벌 촉구 결의대회가 있었다.
ⓒ 김용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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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있은 지 3년. 지난 21일,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형사재판의 구형이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에서 있었다. 2019년 1월 유가족과 김용균시민대책위의 고소고발이 있고 1년 7개월이 지나 검찰은 원하청 법인 2곳과 원청 대표이사를 포함한 원청 관계자 8명, 하청 대표이사를 포함한 6명의 하청 관계자를 기소했다.

2번의 준비공판과 10번의 본공판으로 한국서부발전 원청법인·한국발전기술 하청법인은 각각 벌금 2천만 원,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와 태안발전본부장·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장은 징역 2년, 한국발전기술 대표이사는 징역 1년 6월 등 벌금 700만 원~징역 2년의 구형이 내려졌다.
 
이날 재판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저녁 7시 50분까지 이어졌고, 김용균재단은 점심시간인 12시 20분부터 1시간가량 '원하청사업주 엄중처벌 촉구 결의대회'를 재판 참석자들과 진행했다. 재판 막바지에는 피해 유가족 대리인단이 의견진술을 했고 피해 유가족의 의견진술시간도 있었다. 피해자들이 직접 참가하지 못하는 형사재판 구조에서, 그나마 의견을 공식적으로 개진할 기회가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현실에서, 다행이었다.

피해 유가족 대리인단은 이렇게 의견 진술을 시작했다.

"목 부위의 외상성 절단. 고 김용균의 사인입니다. 그러나 이 죽음은 더 설명되어야 합니다. 이 사건은 우리 법 공동체가 그 구성원인 고인과 유가족에게 적어도 그의 참담한 죽음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설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백히 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어진 피해 유가족 의견 진술은 울음과 추스름이 반복된 목소리로 사람들을 울렸다.

"아들을 잃은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고통인데 회사의 반성 없는 태도로 인해 아들을 두 번 죽이는 것 같은 모욕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아들 같은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 기업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가족들도 저희같이 삶이 망가지고 있어 가슴이 아픕니다.

왜 이렇게까지 우리 사회가 망가지게 되었을까요? 왜 우리 사회는 이런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을까요? 왜 법정에서는 죽음의 진실과 책임을 가려주지 못했을까요? 다른 산재 노동자들의 재판에서 제대로 판결이 되었더라면, 내 자식을 잃는 아픔은 겪지 않았을 텐데 하는 원망이 큽니다.

재판장님. 이 재판을 통해 아들의 죽음의 진실이 확인되길 원합니다. 정의로운 판단으로 아들의 죽음에 책임 있는 자들이 그에 마땅한 처벌로 책임을 지길 원합니다. 이 재판의 결과가 아들의 죽음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노동자들의 목숨도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죽어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빠져나가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도록, 엄중 처벌해주시기 바랍니다. 용균이가 평안히 잠들 수 있도록, 아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시기 바랍니다."

 
10번의 본공판 내내 피고인들이 했던 변명과 무책임함에 비해 피해자들의 시간은 짧았다.

책임만큼 처벌받아야 함을 강조한 구형
 
1심 구형이 있었던 지난 21일 공판안내판 모습
 1심 구형이 있었던 지난 21일 공판안내판 모습
ⓒ 김용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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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하청노동자들은 낙탄 제거나 컨베이어 설비의 이상 점검을 위해서는 점검구로 신체의 일부를 넣고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낙탄이 쌓이면 벨트에 문제가 생기니 벨트 아래 쌓이는 낙탄은 계속 치워야 했다.

또 컨베이어 벨트 설비 중 아이들러에 이상이 있는지 소리를 듣고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 하는 점검업무는 벨트가 가동될 때만 가능한데 조명은 어둡고 분진은 날리니 잘 보이지 않고, 결국 점검구 바깥에서 아이들러의 이상 여부를 판단할 정도로 잘 보이지 않고, 긴 작업도구를 잡은 팔을 집어넣어 작업을 해도 낙탄이 다 제거되지 못하는 구석지대가 있으니, 업무를 위해서는 팔-다리-몸이 어느 순간 점검구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걸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작업자들은 없었고 낙탄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이 이미 있으니 그걸 설치해달라고 요청도 해봤다. 그런데 묵살됐다. 대신 어디에 낙탄이 쌓여 있으니 치워달라는 원청관리자의 카톡지시가 단체방에 내려지면 그날 그 구역을 담당하는 하청노동자는 작업 후 사진을 찍어서 처리했다는 보고를 해야 했다.

컨베이어 벨트 아이들러 이상 점검은 사고 후 개선된 것처럼 아이들러가 바깥에서도 보이도록 망처리를 하고 이상하다고 여겨지면 표시해놓고 나중에 정비하면 된다. 그런데 컨베이어 벨트의 이상 여부는 작업자가 살펴보고 어디가 문제인지 사진으로 찍어서 원청관리자가 있는 카톡 단체방에 보고해야 했다. 그래서 차라리 점검구 덮개를 없애고 점검구를 더 만들어서 바깥에서 더 잘 보이도록 하는 방법까지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피고인들은 이런 말을 쏟아냈다.

"아이들러 노출은 안전보다 점검업무의 편의만 중시한 것이다. 신체의 일부가 아이들러에 말려 들어갔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위험하다고 보고 받거나 신체를 넣고 작업한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 운전원들 작업을 위해 2인 1조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신체 일부를 넣어서 일하라고 지시하거나 혼자 일하라고 지시한 적도 없다. 안전만 고려하면 2인 1조 해야겠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발전소는 1인 근무다. 운전원은 1인 근무가 맞다."
 
운전원은 2인 1조 하는 거 아니라는 피고인들에게 지금은 어떻게 2인 1조를 하게 됐냐고 하니 원하청계약이 바뀌어 인원이 늘어서라고 답한다. 그 말대로라면 1인 근무가 정답이어서가 아니라 비용을 아끼려고 2인 1조를 안 하다가 김용균 사고 이후 비용을 늘리고 2인 1조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위험할 때 당기라고 설치되어 있는 풀코드는 1인 작업 중 물림점에서 사람이 협착되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회사 측 피고인은 이렇게 답했다.

"안에서 협착되는데 어떻게(바깥에 있는 풀코드를) 당겨요? 아, 물론 인원이 많이 들어가면 물론 좋죠."
 
회사 측 피고인들은 '직원들이 근무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운전원이 컨베이어 점검하는 거 본 적도 없다', '위험성 보고 받은 적도 없다', '낙탄 처리를 운전원들이 하는지 조명이 어떤지 몰랐다'라고만 했다. 알지 못했으니 잘못이 없다는 논리다.
 
'오늘까지도 피해자가 왜 사망했는지 모르겠다고만 말하는 피고인들은 반성도 책임도 없다', '산업재해는 기업 운영에 당연히 수반되는 비용의 문제가 아니며 원청과 하청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에서 설비의 위험과 작업방식의 위험성으로 인한 사고이다', '반성과 책임이 없는 사회에서 산재근절과 안전한 환경은 없다'는 검사의 구형 의견이 이어졌다.

검사 구형의 마지막은 "다시는 일하다 죽지 않기를"이었다. 이런 말을 법정에서 듣게 되었다는 것이 사회변화를 실감하게 했다. 그래서일까, 개인적으로는 검찰의 구형이 아쉬웠다. 좀 더 많은 형량을 기대했나 보다. 하지만 그간의 재판에서 원청들은 모두 피해간 처벌에 대해, 원청 법인과 관계자들도 책임만큼 처벌을 받아야 함을 강조한 구형이었다. 그리고 아직 판사의 판단, 선고가 남았다.

김용균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심 구형 당일 엄중처벌 요구 집회 모습
 1심 구형 당일 엄중처벌 요구 집회 모습
ⓒ 김용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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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죽음의 책임을 묻는 재판은 피고인 한 명 한 명을 어떻게 처벌하느냐보다는 역할과 지위에 따라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에 대한 본보기이다. 도대체 어느 만큼의 형량이 되기를 바라냐는 질문은 정확히 답하기 어렵지만, 기업과 경영책임자들이 어느 정도 형량이 되어야 인력과 비용을 들이고 조직문화를 바꿔서 산재를 예방해야겠다고 긴장하게 되겠냐는 기준으로 대신할 수 있을 거 같다.
 
그의 죽음으로 새롭게 바뀐 산업안전보건법이 있고, 2022년 1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다. 하지만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는 그 법들조차 적용받지 못하고 원하청 누구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죽음으로 현재 남아 있다. 한국서부발전 피고인들을 변호한 법무법인 태평양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후,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현장에 출동하여 (회사 측 입장에서) 대응해주겠노라 선언한 곳이다.

마지막 피고인 변호진술에서 태평양 변호인은 "법은 점점 더 엄해지고 있는데 근로자는 점점 더 죽어가고 있다...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노사협조 문제를 대립의 관계로 이해해서 이용하고 법에서 점점 엄하게 해서 마치 도와주는 것처럼 하지만 도와주는 건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김용균 죽음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회사 측의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는 피해 가는 논리처럼, 산재에 대해서는 노사 모두 책임이 있다는 논리를 폈다. 하청회사 변호인단은 근원적 문제인 낙탄 제거, 시설 문제, 시설개선 미비에 근로자 과실이라는 직접적 원인이 같이 있다고 주장했다.

경영책임자들과 그들의 변호인들이 가진 산재 발생 이유와 경영책임자의 의무에 대한 인식에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확인한 재판이었다. 재판 과정을 통해 현재 법과 제도가 가진 한계를 다시 확인했다.
 
2019년 2월 5일 당정협의가 발표되고 김용균 노동자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던 전제는 하청 구조로 인한 인력부족과 안전관리시스템의 문제로 발생한 사고이고 김용균 노동자의 책임은 없다는 회사 측의 인정이었다. 그런데 재판 과정 내내 그들은 자신들의 사과문도 없던 일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모른다로 일관했다.

1년간 진행된 김용균 죽음에 대한 재판은 기업과 경영책임자에게 책임과 의무를 묻는 사회적 공감대로 만들어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대로 다시 만들어져야 할 필요성과 더불어 비정규직이 왜 철폐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김용균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1심 선고는 2022년 2월 10일 오후 3시로 예정되어 있다. 재판 결과로 김용균을 다시 살리거나 죽음을 되돌리지는 못하지만 다른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재판이 남기는 역사적 의미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입니다.


태그:#김용균재판, #김용균재단, #1심구형, #한국서부발전, #산업재해
댓글1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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