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이 무용단을 처음 접했던 곳은 공교롭게도 한적한 무대가 아니였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노들섬의 야외 광장. 어느 축제에서 경험한 11월의 늦은 밤. 팸플릿에 적힌 <위버멘쉬>는 무용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몇몇 장면 때문에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가방을 움켜든 남자는 런닝머신과 혼연일체가 되어 리듬을 탄다. 이런 그로테스크한 묘기에 가까운 동작은 "바쁜 일상에서 권태를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무엇보다 오브제의 지원을 받은 무용이라는 설명 덕분에 <위버멘쉬>는 얼마 동안 뇌리에 남아 있었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 되면 어김 없이 찾아오는 화제작들이 있다. 매년 참신한 슬로건으로 포장된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신작>. 얼어붙은 날씨만큼 볼거리가 부족한 비수기에 공연을 여니, 마니아에겐 언제나 반가울 뿐이다. 12월에 시작했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1월 7일에 시작해 5월까지 이어진다.

지난해엔 '믿고 보는 창작산실'이라는 수식어답게 주옥같은 작품이 즐비했는데, 올해는 어떤 공연이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지난해 10월엔 새로운 슬로건을 뽑는 이벤트를 열었는데, 올해는 '신작의 발견, 창작산실'로 정해졌다. 아마도 이 사업이 의도했던 본래의 취지를 오롯이 담지 않을까 짐작한다.  

<창작산실>은 "전 장르에 걸쳐 기획, 쇼케이스, 본 공연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지원해 우수한 창작 레퍼토리를 발굴하는" 사업이다. 예술위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는데, 2008년 이래 매년 우수한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해왔다. 특히, 2018년에 선보인 '호프'는 제4회 뮤지컬어워즈 대상과 8관왕을, '마리 퀴리'는 제5회 대회에서 대상과 5관왕을 휩쓸었다. 올해는 연극 6편, 무용 6편, 전통예술 3편, 창작뮤지컬 3편, 창작오페라 1편 등 총 5개 장르에서 19편이 무대에 오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1월7일부터 5월까지 계속되는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신작>의 개막작으로 무용공연 '모빌리티'를 무대에 올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1월7일부터 5월까지 계속되는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신작>의 개막작으로 무용공연 "모빌리티"를 무대에 올렸다.
ⓒ 이규승

관련사진보기

 
이번에 소개하는 공연은 <창작산실>의 서문을 여는 작품이다. 개막작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만큼 '멜랑콜리댄스컴퍼니'(안무가 정철인)의 <모빌리티>(1월 7~8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대한 기대감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작품을 리뷰하기에 앞서 이 단체에 대한 배경을 먼저 소개하고 싶다.

2016년에 창단한 단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예술로 바라본다"는 모토 아래 다양한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이 현상은 지금까지 올렸던 전작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비행>부터 <0g>, <위버멘쉬>에 이르기까지 한결 같다.   

"인간의 삶을 주제로 속도, 리듬감, 무게감에 변주를 준다. 작품을 통해 인간사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기괴한 몸동작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 단체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우울하고 몽환적인'이라는 뜻을 가진 '멜랑콜리(melancholy)'에서 파생된 멜랑콜리댄스프로젝트는 어떤 작품을 선보이고 싶을까. 무용을 몽환적으로 표현할까. 인간의 심리상태를 우울하게 만들까. 단체의 이름만 들으니 궁금증은 오히려 증폭된다. 하지만 비슷한 질문에 안무가는 "예술에서 걸출한 인물을 표현한 것"이라 덧붙였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세상을 예술로 바라보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 창작물을 무용으로 표현해왔다. 단체는 역동적이고 밀도 높은 움직임뿐 아니라 이것이 쌓여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한다.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기법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을 현실로 만드는 경이로움을 만든다. 이들이 계속 고민한 예술을 가지고 신체 언어를 확장시키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미래에 다가서려는 의지를 표현한 몸동작이다. 

"인간은 어떤 능력을 가졌을까?" 

정 안무가는 '포스트휴먼 시대'를 앞두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시대와 사회가 변하면서 우리가 마주하는 인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고 묻는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졌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의 몸과 모빌리티를 긴밀하게 연결지어 인간을 탐색하는 시대라고 설명했다.

안무가는 이번 작품에서 제목으로 사용된 '모빌리티'의 개념을 무용에 도입했는데, 이것은 최근 인간에게 닥친 새로운 삶의 환경과 인간의 정체성을 성찰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70분에 이르는 무용은 그동안 봐왔던 여느 것과 다르다. 약 10분씩 짧게 이어지는 서로 다른 공연들이 옴니버스식으로 이어진다. 이런 조각은 형식면에서 하나로 귀결해 정의내리기 어렵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연속되는 색다른 공연을 보는 재미를 방해받고 싶지 않을 정도다. 
 
<모빌리티>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두 남자에게 양 다리가 붙들린 남자는 몸속에 내재한 악령에 휩싸인 듯 헤어나오지 못한다.이것은 벗아나고 싶은 날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분출하는 시초다.
 <모빌리티>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두 남자에게 양 다리가 붙들린 남자는 몸속에 내재한 악령에 휩싸인 듯 헤어나오지 못한다.이것은 벗아나고 싶은 날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분출하는 시초다.
ⓒ 이규승

관련사진보기

 
기괴한 음악과 함께 스크린이 오른다. 두 남자에게 양 다리가 붙들린 남자는 몸속에 내재한 악령에 휩싸인 듯 헤어나오지 못한다. 벗어나고 싶다. 두 다리에 휘감긴 굴레를 벗으려 발버둥 친다. 날아오르고 싶다. 하지만 쉽사리 그러지 못해 응어리가 남는다. 이동하고 싶은,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이때부터 '모빌리티'의 갈증과 연관 있음을을 알게 됐다. 가장 원초적인 이동수단인 '스케이트보드'가 등장한다.

무용수의 몸짓은 그 자체만으로도 발광하지만, 전작의 패턴처럼 오브제의 도움을 받아 더욱 돋보인다. 보드에 몸을 맡기기도, 자연스럽게 무대의 곳곳을 옮겨가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물 위를 걷는 배의 선수가 되기도 한다. 맞지 않는 신발을 움켜 신은 듯 합을 맞춰 걸으려는 몸부림이 예사롭지 않다.  무대의 좌우를 쉴 틈 없이 가로지는 보드들은 모빌리티에 의해 무너져내리는 인간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30여 년 전, 보드로 하늘을 나는 세상을 꿈꿨던 마이클J.폭스의 <백투더퓨처>(1985)가 떠오른다. 모빌리티에 대한 환상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가능케했던 바로 그 영화. 막이 전환하자 시대가 변한다. 새로운 오브제의 등장. 미래의 신기술로 무장한 이동수단인 '드론'이 출연했다. 편리함을 넘어 드론은 인간과 맞서 갈등을 폭발하는 대척점이 되기도 한다. 기계에게 조종당해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가 돼버린 인간을 짓누른다. 드론이 날아오를 때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장면은 무용이기 때문에 백 마디 대사보다 강렬한 여운을 남겨준다. 

이 공연을 단순히 무용 또는 퍼포먼스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장면이 전환하고 새로운 전개 방식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스크린이 내려오고 무대의 90%가 가려진다. 안무가들의 몸짓은 더이상 무대 위가 아니라 영상으로 옮겨왔다. 하늘을 날아오를 수 없는 부분은 철저하게 스크린에 담았다. 우리가 보는 프레임 안에서 펼쳐지는 영상은 보는 이들의 상상을 더해 날고 싶은 욕망을 극한으로 몰아붙인다.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앵글은 내가 상상하던 무용의 한계가 초월하는데 요긴하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연출자(여기만큼은 안무가보단 연출자로 부르고 싶다)는 작은 빈틈도 허락하지 않는다. 무대의 9할을 가리고 발밑에 실루엣만 보일지언정 영상과 패턴을 함께한다. 관람객이 보든 안 보든 스크린 뒤에서도 똑같이 춤을 춘다. 
 
멜랑콜리댄스프로젝트는 몽환적 분위기를 뜻하는 '멜랑콜리'에서 파생된 단체다.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는 알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멜랑콜리댄스프로젝트는 몽환적 분위기를 뜻하는 "멜랑콜리"에서 파생된 단체다.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는 알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 이규승

관련사진보기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연주가 무대를 휘어잡는다. 이동하고 싶은 욕구는 또 다른 밴드로 옮겨온다. 대중가수의 백댄서와 같은 군무가 일사불란하다. 현대음악을 방불케하는 현란함이 더해진 조명은 보는 이들의 호흡을 들뜨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까지 이 버라이어티한 연출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면 왜 이 작품이 '멜랑콜리'한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느 하나라도 무용을 위한 수단이 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노랫말은 멜랑콜리한 감정을 한층 고조시킨다. 간혹 들려오는 가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럴 시간엔 사이보그 시대에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을 고민해보라. 식스센스급 반전이 기다린다. 무용의 안무도 돋보이지만, 새로운 장면을 고민한 이 무용단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 인사를 하는데 중요 역할을 했던 사람은 단지 무용수가 전부는 아니다. 드론을 조종자와 기타 연주자까지 모두가 소중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을 지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다. sortirong@gmail.com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