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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뭘 먹어야 하나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이미 고기를 해동해놓았다며 보여줬다. 채끝등심(strip loin) 스테이크 부위였다. 아무리 목초사육 소고기라지만, 내 눈앞에 놓인 이 고기는 마블링은 전혀 없이 완전히 드라이해 보이는 부위였다.

캐나다인인 남편도 이 고기를 보자 스테이크가 내키지 않는지, 한국식으로 양념해서 볶아 먹든지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흠! 한국식이라면 그냥 불고기 정도인데, 얇게 썰지 않으면 맛없을 거 같고, 더구나 이렇게 기름기가 없으면 퍽퍽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등심 아닌가! 맛있어야 하는 부위가 맞다. 이걸 대충 볶아 먹고 싶지는 않았다. 뭔가 맛있게 해 먹고 싶었다. 

등심이라고 하니 갑자기 맛있었다고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원조 주물럭이라고 불리는 고깃집이었다. 어떤 특별한 날에 아버지가 식구들을 데리고 가서 사주셨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두툼한 고기가 정말 입안에서 살살 녹았던 기억이 났다. 내 돈 주고 사 먹기엔 너무 비싼 음식이었다. 

그곳의 비법은, 고기를 넉넉히 주물러서 부드럽게 한다는 것이었지만, 어디에도 상세한 비법은 전해지는 바가 없었다. 집에서 구우면 그 맛이 나지 않는 이유는, 그 비법을 몰라서, 그리고 숯불에 굽지 않아서...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그 맛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집에서 시도를 해보고 싶어졌다.

고기가 마블링이 전혀 되어있지 않으니 일단 연육을 해야 했다. 흔히 배즙이나 키위즙을 이용해서 연육을 하는데, 나는 주로 식소다로 연육을 한다. 종이컵 3컵의 물에 식소다 2큰술 정도를 녹여서 30분간 담가 둔 후 깨끗이 헹궈내면 고기가 먹기 좋게 부드러워진다. 시간을 절대 넘기지 말고, 반드시 여러 번 씻어서 소다의 맛이 고기에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도전, '원조 주물럭'의 그 맛 
 
식소다에 담가서 연육 중인 고기
 식소다에 담가서 연육 중인 고기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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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는 주물럭 고기처럼 1.5cm 정도 두툼하게 썰었다. 주물럭은 두꺼워야 제맛이다. 옆에 흰색 심줄도 붙어있었는데, 좋아하는 부분이어서, 그 부분도 따로 썰어서 함께 사용하기로 했다.

그동안 파채와 샐러드를 준비했다. 파는 길게 채를 썬 후, 매운 기를 빼기 위해서 찬물에 잠시 담가놨다가 물을 갈아주는 방식으로 여러 번 씻어줬다. 그러고 나서 물기를 완전히 털어내고, 간단히 간장, 고춧가루, 참기름, 깨를 넣어서 버무려주었다.

샐러드는 양배추가 없으니 집에 있던 배추를 사용해야 하나 하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양상추가 한 덩이 남아 있길래, 그걸 가늘게 채 썰어서 사용했다. 

소스는, 이왕이면 고깃집에서 나오는 것 같은 소스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 역시 레시피는 몰라서, 사과와 양파, 식초, 레몬즙, 간장을 넣어서 갈아봤다. 노랑 파프리카도 있길래 조금 함께 넣었는데도 여전히 맛도 미흡하고 색감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잘 갈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마요네즈를 두 큰 술 정도 넣고, 참기름까지 넣어서 다시 블렌더에 갈았더니 아주 그럴듯해졌다.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맞췄다.
 
파채와 사과소스 샐러드
 파채와 사과소스 샐러드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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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연육을 마치고 물기를 닦은 고기 조각들을 큰 볼에 담고는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참기름을 대강 둘러줬다. 그리고 가차 없이 주물러댔다. 고기에 남아있던 수분과 참기름의 유분이 섞여 유화가 이루어지면서 고기가 뽀얗게 코팅이 되었다. 
 
주물럭 거린 등심을 접시에 담았다
 주물럭 거린 등심을 접시에 담았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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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원래 이렇게 생겼던가? 생각은 나지 않았지만 한 5분 이상 열심히 주물러준 이후에 나는 고기를 접시에 뺑 둘러서 담았다. 담아놓으니 그럴듯해 보였다. 집에 상추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생략했고, 집에 있던 김치와 나물을 담아서 간략하게 상을 차렸다. 

남편은 도대체 내가 무슨 꿍꿍이인지 궁금해했지만, 나는 한국식으로 준비할 테니 테이블에 휴대용 가스버너를 올리라고 했다. 우리 집 상차림에서 이 일은 아주 파격적인 일이다. 남편은 식탁 위에 유리 반찬통이나 플라스틱 접시 등을 올리는 것을 질색을 하는데, 하물며 프라이팬이 직접 올라온다니! 

하지만, 이건 한국 고급 주물럭 고깃집에서처럼 직접 상에서 구워서 바로 먹어야 한다고 내가 주장했기 때문에 남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뜻에 따랐다. 
 
주물럭 밥상. 소주 대신 와인을 놓았다.
 주물럭 밥상. 소주 대신 와인을 놓았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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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은 단출했다. 사실 둘이 먹는데 이 이상이 필요하지 않다.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국물이 꼭 있어야 하지도 않는다. 상추쌈이 빠진 자리에 오이와 파프리카를 쌈장에 찍어먹도록 준비했다. 그리고 고기 굽는 팬은 스탠 팬을 사용해서 깊게 구워지길 바랐다. 

먼저 흰색 심줄 부위 먼저 굴려서 팬에 기름이 돌게 한 후에 고기를 얹었다. 나는 이때까지도 맛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다. 그냥 실험 삼아 시도한 것이었기에 과정샷도 거의 찍지도 않았다.

한 입 먹고 깜짝 놀랐습니다 
 
등심을 굽는 중. 조금씩 먹을만큼만 한번에 구워야 계속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등심을 굽는 중. 조금씩 먹을만큼만 한번에 구워야 계속 맛있게 먹을 수 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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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로 구운 고기를 한 점 집어 남편에게 먼저 권하니, 그러지 말고 날더러 먼저 먹으라며 내 밥그릇 위에 고기를 밀어줬다. 못 이기는 척 고기를 한 입 무는데! 깜짝 놀랐다. 고기는 그야말로 입에서 살살 녹았다. 그러면서도 흐물거리는 맛이 아니라 고기 자체의 풍미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이 맛이야!

남편도 한 점을 집어 먹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전에 한국인에게 초대되어서 한식당에서 고기를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별맛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맛이라고... 내가 생각해도 고기는 내 기대를 훨씬 넘어서 진짜 고깃집 생등심구이 맛이었다. 

주물럭이라고 이름을 괜히 붙인 게 아니구나 싶었다. 이렇게 주물러댔더니 그 맛이 정말로 나다니! 남편에게는 늘 간장 양념에 잰 갈비나 불고기를 한식 고기 요리로 해줬었는데 언제나 좋아했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할 생각은 못 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이 고기가 맛이 럭셔리하다고 표현했다. 

내가 먹기에도 럭셔리했다. 함께 구운 심줄 부분도 바삭 고소했다. 파채도, 샐러드도 모두 궁합이 잘 맞았다. 그래서 간단히 해결하려던 저녁은 비싼 원조 주물럭 식당이 되어버렸다. 서양식 한 파운드(450g)가량의 고기였으니 우리는 대략 3인분을 먹은 셈이었다. 배는 부르지만 더 먹고 싶은 그런 상태. 딱 고깃집 컨셉이었다.

비싼 한우를 밖에서 사 먹는다면 상상 초월하는 가격이 나올 것이다. 그 대신 적당히 등급이 낮은 고기를 사서 집에서 이렇게 해 먹어보자. 외식 1인분의 가격으로 온 식구가 즐길 수 있는 메뉴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


태그:#주물럭, #소등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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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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