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역사에 '만약'이란 게 없겠지만, 1860년대 시작된 근대가 우리 힘으로 이뤄졌다면 어땠을까를 늘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근대는 이식된 근대였습니다. 이식된 그 길을 서울에 남아있는 근대건축으로 찾아보려 합니다.[편집자말]
이곳에 서면 무릇 '좋은 집'이란 이런 얼굴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낮은 듯 위엄을 갖추고, 수수하나 기품을 잃지 않았다. 겉모습만으로도 집을 지어낸 사람의 마음 씀씀이와 품격, 밑바탕에 흐르는 배려와 존중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땅에 전파하려는 신앙의 격조와 품위를 갖추려 애쓴 흔적이 여실하다. 아울러 다름을 수용할 줄 아는 건축기법이 단아하나 숭고하게 담겨있다.
 
맞은 편 프레스센터에서 본 성공회 성당 모습. 사진 좌측과 우측까지 성당 경역에 포함됨. 사진 위쪽이 영국대사관.
▲ 성당 조감 맞은 편 프레스센터에서 본 성공회 성당 모습. 사진 좌측과 우측까지 성당 경역에 포함됨. 사진 위쪽이 영국대사관.
ⓒ 이영천

관련사진보기


로마네스크 성당이 한옥과 어우러져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각기 자리한 집들은 쓰임새로만 구분될 뿐, 서로 배척하지 않아 조화롭다. 이런 구상을 제시한 사람의 뜻을 읽어내, 하느님의 집을 설계한 이의 마음이 자연스레 같이 읽힌다. 한마디로 '우리 것이 된 로마네스크' 집이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이야기다.
 
옛 총독부 체신국 건물이 막고 선 광경.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건물 일부를 개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음.
▲ 1980년 태평로 옛 총독부 체신국 건물이 막고 선 광경.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건물 일부를 개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음.
ⓒ 서울역사박물관

관련사진보기

 
가파른 벼랑처럼 길을 가로막고 있던 옛 조선총독부 체신국 청사(체신부→국세청 남대문 별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철거되면서 집 얼굴이 드러난다. 화려한 포장지로 치장한 싸구려 상품에 현혹되듯 체신국에 막힌 겉모습만 보아오던 사람들이, 드러난 이 집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다. '나쁜 집'을 없애고서 얻어낸 행운이다. 오래된 우리 속살에 한 걸음이나마 다가섰음인가? 다시 살려낸다는 것(再生)은 이런 것이다.

조선 성공회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영국에서 한 교단으로 형성된 성공회는, 이후 영국 식민지 확장과 궤를 같이하며 확대, 전파되어 나간다. 성공회는 신앙의 다양한 전통과 개성을 존중한다.

따라서 나라와 문화마다 각기 다른 종교적 색깔을 지니며, 한 교회 안에서도 신앙과 신학의 흐름이 매우 다양하다. 그만큼 유연하다. 이런 특성이 덕수궁 옆, 수줍은 듯 낯 붉히고 선 교회당에 고스란히 녹아들었음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주교 존재 여부로 교회가 성립되는 성공회는, 코프 신부가 한국 주교(1889.11)가 되어 트롤로프 신부를 비롯한 사제, 신학생, 의사, 인쇄기술자와 함께 인천항(1890.09.29)에 닿으면서 시작한다. 공식 명칭은 조선종고성교회(朝鮮宗古聖敎會)다.

이들은 한양에서 낙동(대연각빌딩 자리)과 정동(영국 공사관 옆)에 자리 잡는다. 낙동 선교부가 인쇄, 병원, 교회를 열지만, 뒤이은 러일전쟁 때 일본이 군영으로 징발하면서 사라지고 만다.
 
사목실로 사용 중인 한옥. 성공회가 처음 정동에 자리 잡으면서 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 건물 앞에 유월항쟁 기념 돌이 있고, 사진 뒤로 수녀원이 자리함.
▲ 사목실 사목실로 사용 중인 한옥. 성공회가 처음 정동에 자리 잡으면서 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 건물 앞에 유월항쟁 기념 돌이 있고, 사진 뒤로 수녀원이 자리함.
ⓒ 이영천

관련사진보기

 
정동에서는 미국, 캐나다 선교사 집 2채를 빌려 교회를 연다. 이곳에서 성탄절 장림(將臨, Advent) 마지막 주일에 코프 신부가 미사(1890.12.21)를 열면서, 서울성당 모체인 '장림교회'가 시작된다.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을 지나며, 성 베드로 여성병원과 성 베드로 수녀회 선교 덕분에 여성 교인 수가 급증한다. 좁은 한옥교회가 한계에 봉착한다. 코프 후임으로 주교가 된 터너 신부가 영국 '모닝캄' 선교잡지에 '서울대성당기금(터너 기금)'모금을 호소(1909.07)하나 반응은 신통치 못하다. 그해 터너 신부는 급서하고 만다.

미완성 교회당

교구를 '대한성공회'로 개칭(1910)하고 후임 주교로 트폴로프 신부가 부임(1911)한다. 그는 즉시 대성당건립을 결의하고, 영국 건축가 아서 딕슨을 설계자로 정한다.

딕슨은 배를 타고 수개월 만에 서울에 온다. 그는 덕수궁 및 영국 공사관, 주변 한옥과의 조화를 숙의한다. 정동이라는 지역 특성과 건축문화를 살핀다. 일제가 파헤친 태평로와 덕수궁 주변도 살핀다.

하지만 건립 비용이 걸림돌이다. 총 1만 파운드 예산을 5천 명 남짓 조선 신도에게 의존할 수 없는 처지다. 3년간 모인 터너 기금은 1천 파운드 남짓이다. 시간은 하염없이 흐른다.

그간 대한제국 황실 교육기관인 '수학원'을 임대(1912)해 사용한다. 근근이 이어지던 모금도 제1차 세계대전(1914)으로 끊겨 버린다. 그러함에도 트롤로프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딕슨에게 정식 설계를 의뢰(1917)한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옥스퍼드 운동가 단체인 '앵글로 가톨릭 의회'의 건축비 지원(1920)이 이뤄진다.
 
1905년 경운궁 중건 때 지어져, 함희당과 함께 황실 자재 교육기관 수학원으로 쓰였음. 1912년 성공회에서 임대해 사용하다, 1920년 매입하여 현 자리로 옮겨 옴. 현 주교관.
▲ 경운궁 양이재 1905년 경운궁 중건 때 지어져, 함희당과 함께 황실 자재 교육기관 수학원으로 쓰였음. 1912년 성공회에서 임대해 사용하다, 1920년 매입하여 현 자리로 옮겨 옴. 현 주교관.
ⓒ 이영천

관련사진보기

 
이 해에 임대해 쓰던 양이재(현 주교관)를 매입,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다. 정동이란 특이한 지역에 어울리는 교회를 고심한 까닭인지, 설계에 무려 5년이란 시간이 소요된다.

영국인 건축가 감독하에 정초식(1922.09)이 이뤄지고, 지하 성당(1923.05)이 먼저 지어진다. 축성식에 즈음하여 선교사 하지가 서거하고, 곧이어 순종이 승하(1926.04.26)한 여파로 조촐한 축성식(1926.05.02)이 거행된다.

하지만 성당은 예산 문제로 애당초 설계대로 완성되지 못한다. 라틴십자가 중 익랑(翼廊, 날개) 부분은 손도 대지 못한다. 본당인 신랑(神廊)도 1/3만 지어진다.
 
태평로를 가로막던 옛 조선 총독부 체신국 건물이 광복 70주년(2015)을 맞아 사라지자, 환한 얼굴을 한 성당이 제 모습을 드러냄.
▲ 성공회 성당 태평로를 가로막던 옛 조선 총독부 체신국 건물이 광복 70주년(2015)을 맞아 사라지자, 환한 얼굴을 한 성당이 제 모습을 드러냄.
ⓒ 이영천

관련사진보기

 
이를 트롤로프는 정식명칭인 '성모 마리아와 성 니콜라스 성당'이라는 이름 대신 '예비 대성당'이란 표현으로 아쉬움을 대신한다. 그는 영국 주교회의에 참석 후 귀국하다 사고로 서거(1930)하여 예비성당 지하에 잠든다.

6월항쟁 진원지

박종철 죽음(1987.01.14)에 이은 전두환 호헌조치(04.13),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 조작 폭로(05.20)로 전국이 들끓는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결성(05.27)되고, 국민대회 하루 전(06.09)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는다.
 
1987년 6월 10일 오후 6시. 성당 종탑에서 42회 타종으로 항쟁 시작을 알림.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7년 표석을 세움.
▲ 6월항쟁 진원지 표석 1987년 6월 10일 오후 6시. 성당 종탑에서 42회 타종으로 항쟁 시작을 알림.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7년 표석을 세움.
ⓒ 이영천

관련사진보기

 
1987년 6월 10일 오후 6시. 성공회 대성당 종탑에서 42회 종소리가 서울 하늘로 퍼져나간다. 해방 42년과 분단 42년을 담은 소리다. 종소리를 신호로 도로를 달리던 모든 차량이 경적으로 화답한다.

87년 6월 항쟁의 시작이다. 20여 일 피눈물 나는 싸움에서 시민은 승리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위 어정쩡한 '87년 체제'로 귀결되고 만다. '형식적 민주주의'라는 외피다. 고귀한 희생과 처절한 투쟁으로 얻어낸 승리가 남긴 숙제다.

70년 만에 기적처럼 지어지는 교회당

성공회 선교 1백 주년 기념대회(1990.09)가 열리고, 대한성공회 관구가 설립(1993.04)되면서 성당 완공에 대한 열기가 '건축 운동'으로 이어진다. 신자들 헌금이 쇄도한다. 이제 길이 열린 것이다.

기본 방향은 트롤로프 의도와 딕슨 설계의 완성이다. 하지만 옛 자료라곤 흐린 모형 사진 몇뿐이다. 근거가 절대 부족하다. 설계를 맡은 광장건축연구소는 기 성당과 증축 부분에 대한 초현대식 설계를 제시하나,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바로 문화재(1978년 지정)라는 이유로 증축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문화재위원회는 미완성 상태로 지정된 문화재여서, 본 설계대로 완성되지 않는 한 증축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내린다.
 
신랑(神廊) 두번째와 세번째 아치창 모습임. 왼쪽과 오른 쪽 벽돌 색이 다르고, 벽돌 간 하얀 줄 색도 다름을 확인할 수 있음.
▲ 증축 흔적 신랑(神廊) 두번째와 세번째 아치창 모습임. 왼쪽과 오른 쪽 벽돌 색이 다르고, 벽돌 간 하얀 줄 색도 다름을 확인할 수 있음.
ⓒ 이영천

관련사진보기

 
어느 날 낯선 영국인이 급하게 성당을 둘러본다. 그는 런던 교외의 랙싱턴 도서관 근무자였다.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딕슨 설계도 원본이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설계도 복사본이 도착한다. 문화재위원회는 미완성 성당임을 확인하고 전례 없는 결정을 내린다. 광장건축도 공들인 설계를 회수한다. 집 얼굴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양측 익랑과 신랑 2/3를 1996년 완공. 2개 층 붉은 지붕과 화강석, 붉은 벽돌을 이용해 장식한 아치창 등이 로마네스크 전형을 이루면서도 일부 한옥 건축기법을 좌화롭게 가져 다 씀.
▲ 신랑(神廊) 양측 익랑과 신랑 2/3를 1996년 완공. 2개 층 붉은 지붕과 화강석, 붉은 벽돌을 이용해 장식한 아치창 등이 로마네스크 전형을 이루면서도 일부 한옥 건축기법을 좌화롭게 가져 다 씀.
ⓒ 이영천

관련사진보기

 
집은 증축에 착수(1994.05), 마치 트롤로프가 미완성으로 '축성한 그 날(05.02)'에 감동적인 축성(1996)을 이룬다. 실로 만 70년 만이다. 강화도 화강석 대신 유사한 중국 청도 화강석을 가져다 쓰고, 벽돌은 경기도 화성 흙으로 구워냈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집은 11개 첨탑을 가졌는데, 지붕이 모두 한옥 기와다. 본체 4각 모서리에 작은 첨탑 8개, 앱스(Apse) 부분 3각 부벽식 첨탑과 양 익랑에 붙어있는 부벽식 소 첨탑이다.
 
큰 길에서 바라다 보이는 모습. 앱스 한 가운데 발코니가 있는 첨탑이, 익랑 양측에도 유사한 작은 첨탑이 보임. 각각 꼭대기에도 2개씩 첨탑이 있고 이 모두는 한옥 기와를 이고 있음. 지붕 끝단에 한옥 처마와 서까래를 형상화한 모습을 볼 수 있음.
▲ 앱스(Apse)와 익랑(翼廊) 큰 길에서 바라다 보이는 모습. 앱스 한 가운데 발코니가 있는 첨탑이, 익랑 양측에도 유사한 작은 첨탑이 보임. 각각 꼭대기에도 2개씩 첨탑이 있고 이 모두는 한옥 기와를 이고 있음. 지붕 끝단에 한옥 처마와 서까래를 형상화한 모습을 볼 수 있음.
ⓒ 이영천

관련사진보기

 
붉은 기와지붕 아래는 한옥 처마와 서까래를 형상화한 마감 돌이 촘촘하다. 내부 고창(高窓) 창살엔 완자무늬가 들어가고, 스테인드글라스는 보자기 문양을 형상화했다. 전체적으로 화강석을 벽으로, 붉은 벽돌을 장식용 아치창에 사용하였다. 벽은 두께가 다른 화강석을 번갈아 층층으로 쌓아 올렸다.

성당과 한 덩어리를 이루는 한옥 배치가 인상적이다. 양이재를 비롯하여, 사목실이 1백 년 이상 한옥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옥으로 존치 중인 강화성당과 청주성당을 비롯하여 한양(韓洋)을 절충한 인천 내동 성당을 보아도, 성공회가 추구하는 정신이 무엇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좋은 집이란 본시 이러해야 한다.

신앙은 어쩌면 신의 절대성이 아닌, 인간형 완성을 향한 끝없는 노력과 도전의 길인지도 모른다. 서울 한복판에서 수줍게 낯 붉히고 선 교회당 얼굴이 그래서 더 환해 보인다.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