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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가 되고 싶었지만 전쟁의 무기가 되어버린 한 나무의 슬픈 이야기'인 창작 오페라 <장총>은 극을 이끄는 역할로 사람이 아니라 나무를 선택했다.
 "악기가 되고 싶었지만 전쟁의 무기가 되어버린 한 나무의 슬픈 이야기"인 창작 오페라 <장총>은 극을 이끄는 역할로 사람이 아니라 나무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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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가 되고 싶었지만 무기가 되어버린 한 나무의 이야기.'

올해로 창단 28주년을 기념하는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의 창작오페라 <장총(The Trigger)>이 지난 22~2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초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오페라단이 공공의 영역에서 중심을 잡고 있다면, 이 민간오페라단은 30년 가까이 자신이 내세운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오고 있었다.

1994년 5월, 오로지 창작오페라를 발굴해 '오페라의 전문화'를 꿈꿨던 서울오페라앙상블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금까지 100편이 훌쩍 넘는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오페라 전문 단체로 성장했다. <백범 김구>부터 <나비의 꿈>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한국 역사에서 격동의 시기를 관통하는 작품이 많다는 것.

약 400년 전,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음악극에 한국적 소재를 접목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언어도 다르고 음악의 배경에서 교집합이 적었을 텐데. 하지만 장수동 감독의 설명을 듣게 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늘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봄으로써 한국 오페라를 동시대의 음악 언어로 만들기 위해서죠."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의 마지막 종합예술'이라고 설명하는 장 감독은 오페라의 중요성을 틈 날 때마다 주위에 전한다. 무엇보다 창작오페라를 만드는 데 난관이 닥쳐도 타협하지 않았다. 완벽한 하모니(앙상블)가 꼭 필요한 오페라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래서 이번에 선보인 <장총>도 하모니는 절정에 달했다.

우선 차범석희곡상에 빛나는 김은성 대본가와 오페라판 '기생충'으로 불렸던 <텃밭킬러>로 혜성처럼 등장한 안효영 작곡가가 만났다. 여기에 정교한 배턴 터치의 구모영 지휘자, 오페라에 대한 탁월한 해석이 돋보이는 이경재 연출가, 한국적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최진규 무대미술가의 손을 잡았다. 아마도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이름처럼 완벽한 앙상블을 유도한 결과물이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이다. 
 
"내가 악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왜 하모니카가 아니라  바이올린이 아니라  피아노가 아니라  총으로 만들어진 걸까?"

악기가 되고 싶었지만, 전쟁의 무기가 되어버린 한 나무의 슬픈 이야기. 2021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의 오페라 부문에 유일하게 선정된 <장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한 자루의 낡은 장총이 해방 전후 격동의 시기를 겪으면서 당시 살던 이들의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전해준 작품이다. 제목에서 그리고 공연을 소개한 타이틀 문장을 보고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극을 이끄는 역할(굳이 주인공으로 부르진 않겠다)로 사람이 아니라 나무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유랑 악극단이 한 마을을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가 빠지진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중간에 자신의 심리를 드러내고 있는 나무(장총)를 조용히 거들뿐이다. 
 
"이제 좀 끝나나 했는데 다시 만난 새 주인
앳된 청년은 또 누구를 겨누려나
저 원한으로 이제 누구를 죽이려나
나는 또 누구를 죽여야 하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한국 해방 전후사'가 주된 배경이다. 태평양 전쟁과 6·25 등 크고 작은 전쟁의 원흉으로 지목하는데 어쩌면 사람보다 총이 적절했는지 모른다. 시대와 이념을 뛰어넘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널뛰기하는데 적절한 선택이라고 본다.

전쟁이 내뿜는 죽음과 고통 속에도 작품은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양념처럼 곁들였다. 원래 백두산 압록강변의 졸참나무였던 나무(장총)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일본군의 소총으로 독립군을 죽이다가 독립군에 빼앗긴 뒤엔 일본군을 죽이는 기구한 운명에 놓인다. 이후 중국군, 광복군, 미군, 국군, 인민군, 학도병, 의용대, 빨치산 등의 몇 번의 주인이 바뀌지만, 악기가 되고 싶은 바람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기구한 운명에 놓인다.
 
극중 등장하는 '길남'은 아직 앳된 18살 청년이다. 살인마의 탈을 쓰고 사람을 죽이려 하지만 원래는 마음 여린 동네 젊은이이고 싶어한다.
 극중 등장하는 "길남"은 아직 앳된 18살 청년이다. 살인마의 탈을 쓰고 사람을 죽이려 하지만 원래는 마음 여린 동네 젊은이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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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극의 초반에 등장하는 극우파 청년인 '길남'에게도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직은 앳된 18살 청년이 살인마의 탈을 쓰고 있지만, 원래는 마음 여린 동네 젊은이이고 싶었던 모습에서 말이다. 초반부터 끝까지 무대에서 함께하는 길남과 장총은 그렇게 사람과 무기로 다른 신세에 놓여 있지만, 비슷한 배경에서 비슷한 고통으로 비슷한 꿈을 꾸고 있었던 또 다른 자아인 셈이다.  

장총은 격동의 시기를 보냈던 한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담아냈다. 태평양전쟁(1941~1945년) 당시 군수공장이 있던 인천 조병창(무기 저장소)에서 일본군의 소총으로 태어난다. 이후 독립군을 거쳐, 중국 공산당의 주력부대인 팔로군(1937~1945년) 손에 들어간다.

해방 후에는 일본의 항복으로 남한단독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미군의 군사통치시기였던 미군정(1945~1948년)에 압수된다. 국방경비대에서 제주4.3사건(1947~1954년) 진압용으로 쓰이고, 6.25전쟁(1950~1953년) 때는 국군, 인민군, 학도병, 빨치산의 총이 되기도 한다.

포탄이 빗발치며,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한국전쟁의 막바지, 1953년쯤 지리산 한 자락에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빨치산과 토벌대가 나오기도 하지만, 피폐한 환경에 노출된 두 인물이 나누는 이야기가 전체를 주름잡는다. 그러나 하나는 무형으로 의인화된 사물(장총)이고, 다른 하나는 격동기를 살아가는 인물(길남)이다.

둘의 공통점은 "환경에 의해서 자기의 캐릭터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힘든 시간을 살아가면서 인격이 피폐화된 젊은 청년인 '길남'과 태어나면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장총'은 같은 듯 다른 동질감을 보여준다.

오페라를 무대화한 이경재 연출가는 "1953년의 일이지만, 힘들고 고통에 노출된 상황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며, "자기 자리에서 가장 바라는 것을 원하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때가 오지 않을까?"라고 주제를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극을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오페라의 곳곳에서 묻어난다. 특히  2016년에 차범석희곡상 등을 수상한 김은성 작가의 노련미 넘치는 화법이 눈에 띈다. 전쟁이 빗발치는 와중에도 연극을 보여주는 설정을 나오는데, 어디서 본 듯한 데자뷔가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이것은 원수의 자녀를 사랑한 비극적 결말을 내세운 <로미오와 줄리엣>때문이다.
 
오페라 장면 중 극중극으로 등장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여기서 김은성 대본가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노민호'와 '주인애'로 설정해 보는 이의 즐거움을 더했다.
 오페라 장면 중 극중극으로 등장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여기서 김은성 대본가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노민호"와 "주인애"로 설정해 보는 이의 즐거움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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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더 유추하자면, 서울시오페라단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끌었던 이경재 연출가의 경험 때문일지도 모른다. 원수의 자녀를 사랑해 죽음으로 비극적 결말을 맺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정면에서 그대로 드러나지 않고 약간의 숨기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내용이 비슷할 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이름에도 묘한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 극 중 극으로 유랑악극단의 배우는 로미오에서 딴 '노민호' 줄리엣에서 딴 '주인애'였다는 사실은 객석을 나오면서 나중에 눈치챘다. 

공연을 보는 재미있게 보는 또 다른 팁을 하나 더 공개하자면,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사실이다. 실제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1950년 1월에 KPK악극단에서 공연된 바 있다. 당시 여성국극단에서 <청실홍실>이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작가는 이런 점을 극중극으로 삽입한 것이다.

이밖에 키우던 삽살개(살구)가 순경에게 끌려가 군인 방한복의 털옷으로 만드는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1940년, 조선총독부가 도견부를 설치하고 개가죽 공출령을 내린 일이다.

중국 침략으로 수요가 급증한 군용 방한복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는데, 한 해 평균 15만 마리의 개가 도살됐다고 알려졌다. 삽살개만 최소 50만 마리에서 최대 100만 마리가 방한복으로 됐다는 사실은 오페라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한층 그럴듯하게 설득되는 느낌이다.   

총구는 쇠이지만 장총의 몸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다시 나무로 돌아간다면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과 여운을 남기면서 끝을 맺는다. 길남은 사람을 죽이는 토벌대지만, 이후에 악극단을 따라나서며 겉으로 보이는 캐릭터(사람을 죽이고 복수를 하는 일)가 아니라 또 다른 인물로 살아가고 싶은 희망을 꿈꾸고 있다.

그게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미래에 좋은 시절이 온다"는 꿈을 가질 때,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준다. 여기에 그것을 돕는 역할이 '악극단'이다. 쏟아지는 폭탄 아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게 연극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일반 사람의 상식에선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자기 역할을 꾸준히 한다면 언젠가는 좋은 세상이 온다"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악극단의 아리아에서 그런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같은 메시지를 두고 다른 환경에 있는 등장인물이 동시에 이야기함으로써 같은 주제를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대규모 군악대가 오와 열을 맞춰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장총>의 주제를 가늠할 수 있다. 군악 대원들의 뒤를 따르는 토벌대원들이 합창을 한다. 빨치산 토벌작전의 성공을 기념하는 축하곡. 군악대 옆에 홀로 선 장총은 이렇게 독백하며 공연은 관객에게 생각할 시간을 던져준다.
 
"이 소리구나
이 소리를 내는 악기였구나
슬픈 소리야"
악기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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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문화예술 전문 월간지<문화+서울>(문화플러스서울) 편집장을 지냈으며,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다. sortir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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