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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문무왕의 수중릉 지척에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 지척에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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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압도하며 한반도 유일의 고대 왕국으로 커가던 7세기 중후반. 동궁과 월지는 그즈음 왕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득한 세월이 흐른 뒤에 미미하게 남겨진 흔적과 역사 속 문헌을 토대로 복원된 이 사적지는 누구도 이론(異論)을 내놓을 수 없는 21세기 경주의 주요 유적이자 매혹적인 여행지로 자리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관광과 문화를 도시의 주된 중심축으로 삼고 발전하고자 하는 경주시의 문화관광 홈페이지는 자랑스럽게 '동궁과 월지'를 여행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런 설명을 통해서다.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왕건을 초청해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년)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쪽과 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 일제강점기엔 철도가 지나가는 등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회랑지를 비롯해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해 서쪽 못가의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5개 건물터 중 3곳과 안압지를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를 포함해 경주를 찾는 이들은 불국사와 대릉원, 첨성대와 김유신의 유택(幽宅)을 빼놓지 않고 찾게 된다. 이는 언급한 유적지가 간직하고 있는 '천년의 신라 혼'을 확인하는 행위와 다름없기 때문.

여기에 '신라인의 정신'이 담긴 유적지 하나를 더 포함시키고자 한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궁과 월지가 아닐까"라고 답할 듯하다.

바로 이 동궁과 월지가 상상력이 아닌 현실의 거대하고 미려한 실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는 비단 몇몇 사람들만의 궁금증은 아닐 것이다.

건축물은 최고 권력자 권위의 상징으로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불문하고 권력자들은 자신의 통치 기간이 타자(他者)에게 호의적으로 평가될 업적으로 가득하기를 열망한다. 이것은 이전에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쉽게 깨어지지 않을 권력의 간과할 수 없는 속성이다.

그래서다. 한반도는 물론 가까이서 명멸을 거듭했던 아시아의 숱한 왕조와 유럽의 명망 높은 가문들은 오랜 세월 사라지지 않고 자신들의 치세(治世)를 기억하게 해줄 건축물을 만드는데 골몰했다. 여기에 천문학적 재화를 쏟아 붓고 엄청난 노동력을 투입했음은 물론이다.

지난 2018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를 찾았다. 거기 머무는 기간의 절반은 직업을 가진 샐러리맨으로 지냈고, 절반은 가벼운 마음의 여행자로 보냈다.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과 그 주변을 취재했던 일이 끝난 후, '비엔나 여행자'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 쇤브룬 궁전이었다.

많은 관광객들의 심정과 마찬가지로 한때 전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화와 몰락을 가장 가까이에서 엿보고 싶었다. 이쯤이면 누가 이런 질문을 던질 것도 같다. 쇤부른 궁전은 대체 어떤 곳이냐? '위키백과'가 나서 이런 대답을 내놓는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궁전이자 방문객이 가장 많은 유적지 중 하나다. 문화적으로도 가장 뜻 깊은 곳이기도 하다. 쇤브룬 궁전의 정원은 한 시절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품격과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50만 평에 이르는 대지와 궁궐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고, 쇤브룬 공원 안에 있는 비엔나 동물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다. 18세기 중엽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여름 별장으로 지어진 쉰브룬 궁전은 1892년부터 빈 13구역 히칭에 위치해 있다. 이 궁전의 이름은 1619년 마티아스 황제가 사냥하다가 샘터를 발견했을 때 '이 얼마나 아름다운 샘인가'라고 외쳤다는 일화에서 유래됐다."

해가 떨어질 무렵. 수백 명의 여행자와 적지 않은 숫자의 비엔나 시민들이 쇤브룬 궁전의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때는 장미가 피던 초여름 무렵. 색깔을 달리하는 꽃들과 잘 정돈된 정원수, 여기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귀여운 아기들까지 더해져 쇤부른의 광대한 정원은 더없이 근사한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쇤부른'은 막시밀리언 2세, 동궁과 월지의 창조자는

'쇤부른 궁전'이라는 오스트리아의 관광 명소를 만든 일등공신은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인 막시밀리안 2세다. 그는 '쇤부른 궁전 정원의 창조자'로 불린다.

16세기 중반 카터부르크 지역을 사들여 동물원을 만들라고 명령한 막시밀리안 2세는 진귀한 동물들이 뛰노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다시 아름다운 꽃과 희귀한 식물들까지 대량으로 식재해 식물원까지 조성하게 한다. 쇤부른 궁전의 매혹적인 대(大) 정원은 여기서 시작됐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는 450여 년 전을 기록한 유럽 역사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900여 년이나 앞서 동양의 고대 왕국 신라는 '국립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불러도 좋을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게 어디냐고? 많은 이들이 짐작했겠지만 동궁과 월지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여행자들을 매료시키는 쇤부른 궁전과 정원을 만들라고 명령한 이가 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언 2세라면, 동궁과 월지 조성을 명령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라는 질문.

이 질문과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인용된 이희준의 논문 '동궁과 월지 동편 신라왕경 유적의 조성 시기 및 성격 검토'를 펴봐야 한다. 거기엔 이런 내용이 실렸다. '삼국사기'의 기사(記事·역사적 사실을 적은 글) 중 일부다.

"문무왕 14년(674년) 궁 안에 못을 파고 가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금수를 길렀다."
"문무왕 19년(679년) 동궁을 짓고 궁궐 안팎 여러 문의 이름을 정했다."


이제 의문이 풀렸다. 맞다. 문무왕이다. 그는 동궁과 월지를 만든 신라의 왕. 요즘 방식으로 위트 있게 말하자면 '동궁과 월지의 건축주'라고 부를 수도 있을 듯하다.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발행한 책 <신라의 왕권 강화와 발전>에는 문무왕의 기질과 업적을 간략하게 정리한 대목이 등장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문무왕은 현실적 난제들을 해결하고자 일찍부터 외교,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 결과 마침내 고구려를 멸망시키면서 삼국 간에 장기간 치열하게 전개되던 전쟁을 종식시켰다. 또한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을 위해 일시 군사동맹을 맺었던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하였다. 또 자신의 세력기반인 무열왕계와 김유신계를 적절히 활용해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왕권 강화를 위한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신문왕(문무왕의 아들)대에 전제왕권이 확립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문무왕은 정치적인 측면과 외교 차원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현명한 통치자였다. 이 부분에 대해선 역사학계에서도 별다른 이견이 없다.

여기에 월지와 동궁까지 조성하고 축조함으로써 문무왕은 정치·외교적 수완과 함께 고급스런 문화·예술적 취향까지 드러냈다. '돌올한 신라의 왕' 중 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자리한 문무왕릉. 문무왕은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려 한다며 바다에 장사 지내기를 명령했다.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자리한 문무왕릉. 문무왕은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려 한다며 바다에 장사 지내기를 명령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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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시대 열어간 문무왕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현대인들의 진일보한 상상력조차 발휘되기 어려운 까마득한 옛날 근사한 인공 연못을 만들고 오만 가지 화초를 심어 월지를 조성한 사람. 당시로선 보기 힘들었을 동물들까지 거기서 뛰놀게 만들어 자신의 권위와 통일신라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던 인물.

한 걸음 더 나아가 향후 왕위를 이어갈 태자들이 교육과 인격 수양을 할 공간인 동궁까지 건설토록 지시한 문무왕의 문화적 감수성은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른바 '문무겸비(文武兼備)의 지도자'가 아니었을지.

고운기와 장선환의 <인물한국사>는 문무왕을 '신라를 신라답게 만든 장본인'이라 평가하며 그의 삶을 이렇게 약술하고 있다.

"신라 제30대 문무왕(재위 661∼681년)은 태종무열왕과 문명왕후의 아들이다. 어머니 문명왕후는 김유신의 누이인 문희다.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아버지를 도와 국사의 중대한 책무를 다하였으며, 왕위에 올라서는 백제와 고구려를 통합하는 일의 거의 전부를 해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삼한을 통합한 실질적인 왕으로, 이후 신라의 국격(國格)을 한 단계 높인 명군으로 추앙받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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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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