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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대한 사람이 만들어 탄탄하게 구축한 권력이라도 10년을 지속해 이어지기가 힘들고,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어여쁜 꽃도 열흘 밤낮이 지나면 시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칭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다. 명멸을 거듭했던 우리 땅의 고대·중세 왕국들도 이 냉혹한 명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니, 그 나라 안에 만들어진 거대한 축조물과 조형물도 유사한 길을 걸었다.

7세기 중반 신라가 통일왕조의 골격을 완성하던 시기에 축조된 안압지(현재 명칭 월지) 역시 만들어질 당시의 위상과 품격을 시간의 흐름 속에 잃어갔다.

왕조의 이름이 두 번이나 바뀌고, 천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후 조선 후기 사람인 강위(姜瑋·1820~1884)가 신라의 중심도시 경주를 찾았고, 거기서 한때 번성의 절정을 누렸던 안압지의 흔적을 본 모양이다.

강위는 실학자이자 개화사상가였다. 1873년과 이듬해에 걸친 두 번의 중국 여행을 통해 근대 문물에 눈뜬 그는 역관들과도 친숙해 해외 사정을 잘 알았다. 또한, 서세동점(西勢東漸·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게 될 것이란 예측)의 위기를 우려한 선비였다. 그런 강위가 아래와 같은 시를 남겼다.

열두 봉우리 낮아졌고
아름다운 전각도 황폐해졌는데
푸른 못은 옛날 같고
기러기는 길게 우는구나
천수사 분향한 곳 찾지를 말 것을
들풀에 깊이 묻힌 내불당 자취.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편찬위원회가 펴낸 <신라의 건축과 공예>는 위의 시를 인용하며 "고려 왕조가 되면서 안압지의 관리가 소홀해졌다는 것을 강위의 시문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위 시를 통해 "안압지가 화려한 모습을 잃고 기러기 떼의 서식지로 전락하며 황폐해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 부연하고 있다.

당시 안압지(雁鴨池)로 불리던 오늘날의 월지는 앞서 이야기된 시를 근거로 해석하자면 왕과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대신들, 나라의 주인이 될 왕자와 당대의 대학자들이 오가던 국가의 주요 랜드마크에서 '기러기와 오리가 무리 지어 노니는 그저 그런 평범한 연못'이 된 것이다.

만들어질 당시의 안압지는...

누구도 정확하게 예상하기 힘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안압지는 쓸쓸한 풍광을 담은 쇠락한 연못으로 변해갔다.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조선의 막바지에 이르는 1150년의 속절없는 시간 속에서.

그러나, 안압지가 조성될 당시부터 이런 보잘 것 없는 모습이었던 건 분명 아닌 듯하다. 국립경주문화연구소가 낸 <경주 동궁과 월지 조사연구 마스터플랜 수립 연구보고서>에 등장하는 아래 서술을 보면 안압지가 만들어질 당시의 모습을 대략적으로나마 유추해볼 수 있다.

"동궁과 월지(안압지) 주변 일대는 신라시대 왕경(王京)의 중심부로 월성, 황룡사지, 분황사, 구황동 원지(九黃洞 苑池), 전랑지(殿廊地) 등 왕궁과 국찰 관련 유적이 밀집되어 있다. 신라는 5∼6세기대 중앙집권화 단계를 거치면서 계획적인 행정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현재까지 확인된 신라의 주요 사찰과 계획도시로서의 왕경은 대체로 이 시기 이후에 조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창 힘을 뻗어나가며 당대 유일의 한반도 고대 왕국으로 진화 중이던 신라의 한가운데 자리했던 안압지는 인근에 왕이 머물던 거처가 있었고, 주위에 나라가 후원하던 거대한 사찰이 존재했던 요지 중에 요지에 건설된 인공 연못이었다. 앞서 말한 연구보고서는 이렇게 이어진다.

"동궁과 월지와 남쪽에 위치하는 월성은 신라 궁성과 관련된 궁궐 및 원지유적이다. 월성은 통일신라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신라의 왕궁터이며, 현재 동문지 발굴조사 및 해자, 월성 내부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월성 서쪽에서 확인된 대형 건물지는 관청과 관련된 시설로 추정하고 있고, 국립경주박물관의 미술관 및 연결통로 구간에서 발견된 '남궁지인(南宮之印)'명 명문과 2012년 박물관 남측 부지 발굴조사를 통해 이 지역이 궁궐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런 설명을 통해 우리는 통일신라시대를 전후한 서라벌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안압지와 동궁, 월성… 당시 그것들의 규모와 아름다움은 과연 어떠했을까? 이 궁금증은 천년을 지속된 신라 역사에 관한 의문과 함께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동궁과 월지(옛 안압지)의 밤 풍경이 아름답다.
 동궁과 월지(옛 안압지)의 밤 풍경이 아름답다.
ⓒ 경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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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고문헌에 등장하는 '안압지'라는 명칭

<신라 천년의 공예와 건축>에 의하면 안압지라는 이름이 문헌에 처음 나타나는 건 조선 성종(1469~1494) 때다. 그즈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렸다.

"안압지는 천주사 북쪽에 있으며, 문무왕이 궁 안에 못을 만들고 돌을 쌓아 산을 만들어 무산십이봉을 상징하여 화초를 심고 짐승을 길렀으며, 서쪽에 임해전이 있었다. 그 주춧돌과 섬돌이 밭이랑 사이에 남아있다."

영화를 누리던 신라 시절을 지나 800년 후 조선시대에 다시 본 안압지의 흔적은 농민이 경작하던 밭의 주춧돌과 섬돌 정도로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막막하고 쓸쓸한 풍경인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잔해(殘骸)'라는 허무한 문학적 수사가 떠오른다.

여기에 더해 <동경잡기(東京雜記)>는 <동국여지승람>과 유사한 내용을 싣고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지 못하나 애장왕 5년 갑신년에 중수한 바 있다"고 첨가하고 있다. 그로부터 300년 이상의 세월이 더 흐른 뒤인 1783년 간행된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에도 안압지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이런 문장이다.

"궁내에 연못을 파고 돌을 쌓아 중국의 무산 십이봉의 형상을 한 산을 만들어 꽃을 심고 진기한 새를 길렀다. 그 서쪽에 임해전이 있었으며, 지금 그 연못을 안압지라고 부른다."

안압지 조영의 사상적 배경과 준공 시기는

지금 이 시간 세상에 존재하는 누구도 안압지가 만들어지던 당시를 살아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안압지가 조성된 정확한 이유와 이를 지시한 문무왕의 마음 속 뜻을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할 뿐이다. 그렇다면 안압지가 만들어진 사상적 배경은 뭘까? 이 역시 앞서 말한 이유로 인해 학설이 분분하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의 건설 이유가 "신을 대신해 백성을 통치하는 왕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서" 혹은, "절대 권력자 어머니의 내세 삶을 편안하게 해주려고" 등으로 학자마다 견해가 갈리는 것처럼. 안압지 조영의 사상적 배경이 어떤 것이었느냐에 관해서도 <신라의 건축과 공예>는 언급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다.

"…그간 다양한 학설이 주장되었다. 중국의 무산 십이봉설에서부터 시작하여, 통일 왕권을 과시하는 기념사업과 문무왕 자신을 위한 환경 조성 사업설, 신선 사상과 불교의 정토사상설, 산신(山神) 신앙과 용왕 신앙, 그리고 천신(天神) 신앙설, 또 불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 같다는 주장과 아미타불신앙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까지 많은 주장이 있다."

위의 서술에서 안압지 건설에 영향을 미친 사상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면 안압지의 준공 시점과 건립 시기는 1978년 문화공보부에 의해 간행된 '안압지에 대한 발굴조사보고서'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해당 부분을 요약하면 <삼국사기>의 기사는 안압지 공사가 준공된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 보고서는 이렇게 이어진다. 축약해 옮긴다.

"674년 2월에는 안압지가 완성돼 이미 온갖 화초가 심어지고 진귀한 새와 짐승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안압지 공사를 완성하려면 1년의 공사 기간으로는 조성하기 힘들며, 꽃나무를 심어서 그것이 착근되고 새와 길짐승이 살 수 있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동궁의 창건 또한 문무왕 19년(679년) 8월 이후의 일로 기록돼 있다. 동궁 역시 상당한 공사 기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안압지의 조성은 674년 이전에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1300여 년 전 만들어진 안압지는 이처럼 번성과 쇠락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1세기 현재는 발굴과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안압지가 사고할 수 있는 인격체였다면 자신의 오늘을 어떻게 판단하고 말할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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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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