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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경주를 떠올리게 할 동궁과 월지의 저물녘 풍경.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경주를 떠올리게 할 동궁과 월지의 저물녘 풍경.
ⓒ 경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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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산책하기 좋은 도시다. 이 말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올해도 여행자들의 발을 묶고 있는 상황이지만, 경주에는 여전히 '도시 산책자'가 적지 않게 보인다.

동궁과 월지를 취재하며 모두 6차례 경주를 찾았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대릉원과 첨성대를 거쳐 월지에 이르기도 했고, 어떤 때는 황리단길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복원된 동궁 건물지 앞으로 가기도 했다.

돌담길 건너편에 청아한 자태로 피어있는 새하얀 연꽃과 만나고, 국립경주박물관 내 월지관을 돌아본 날의 경험도 기억에 남았다.

걸음을 빨리 하면 30~40분,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도 1시간 남짓이면 터미널을 출발해 동궁과 월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걷는 여행'의 즐거움을 선물해준 경주.

그러던 어느 날이다. 60대로 보이는 동창생 서너 명이 동궁과 월지 입구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었다.

"야, 격세지감이네. 여기가 이렇게 변했어?"
"세월이 많이 흘렀잖아. 우리가 수학여행 온 게 40년은 됐으니까."
"맞아. 그때는 여길 안압지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안압지... 안하지... 동궁과 월지

소년시절을 추억하는 그들의 기억은 정확했다. 발굴과 복원작업을 거쳐 동궁과 월지로 불리기 전 연못의 이름은 안압지(雁鴨池)였다. 안압지 발굴조사 당시의 에피소드와 성과를 담은 책 <못 속에서 찾은 신라>엔 그와 관련한 설명이 담겼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안압지는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드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동경잡기>(東京雜記) 등 조선시대의 문헌에서 처음 나타난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되기 전 김시습(1435-1493)이 지은 시에 안하지(安夏池)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안압지와 비슷한 발음을 가진 표현이 15세기 무렵 이미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600여 년 전까지는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다니는 연못이라고 해서 안압지, 혹은 유사한 발음의 안하지로 불리던 이 연못이 동궁과 월지로 개칭된 것은 언제였을까. 위의 책은 이렇게 부연한다.
 
"안압지에서는 1975년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이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의봉4년 개토(679)'명 기와와 '조로2년(680)'명 전돌이 출토되었는데, 이 유물을 통해 안압지 주변 건물지가 문무왕 19년(679)에 지은 동궁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안압지라는 명칭은 1982년 당시 국립경주박물관 관장 한병삼에 의해 '안압지는 월지다'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그 명칭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안압지에서 나온 '동궁아일(東宮衙鎰)'명 자물쇠, '세택(洗宅)'명 목간, '용왕신심(龍王辛審)', '신심용왕(辛審龍王)'명 접시 등에 새겨진 명문은 '삼국사기' 직관지에 나오는 동궁 소속 관청 가운데 세택(洗宅), 월지전(月池典), 월지악전(月池嶽典), 용왕전(龍王典) 등과 관련이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63년에 사적 18호로 지정됐던 안압지를 포함한 신라왕궁 별궁터 경주 임해전지는 2011년 경주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바뀐다. 문헌 기록과 출토 유물 등의 재검토를 통해서였다.

바뀐 이름과는 무관하게 이 연못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역사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통일신라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해준다.

이는 40년 전이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동궁과 월지를 포함한 경주의 유적을 찾는 이유일 터.

깔끔하게 단장된 동궁과 월지에 입장하면 연못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천년왕국의 역사 속을 산책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조그맣게 마련된 야외 전시장에선 월지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유물도 만나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다면 빼놓지 않고 둘러봐야 할 곳이다.

앞서 말한 동창생들은 하얗게 변한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고등학생 시절을 돌이켜보는 듯 동궁과 월지에서 한참을 머물며 추억담 속에 빠져 있었다. 오랜 우정을 간직한 그들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동궁과 월지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유물들.
 동궁과 월지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유물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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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귀한 새와 짐승 뛰놀던 화원... 이제 젊은 연인들이

고색창연함을 간직한 고도(古都)인지라 경주에는 나이 지긋한 관광객이 다수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천만에다. 예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경주에는 젊은 여행자들이 의외로 많다.

얼마 전부터 전국적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황리단길에서만이 아니다. 대릉원, 첨성대 앞, 계림 부근과 국립경주박물관에서도 20~30대 청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경주시는 21세기의 관광 트렌드에 발맞춰 도시를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역사의 현장에 문화·예술 스토리를 입히고, 젊은이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거리를 조성하고, 다양한 즐길 거리와 특색 있는 숙소를 개발하고 있는 것.

실제로 황리단길에서는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카페와 주점도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또한 다른 도시에선 보기 힘든 근사한 한옥 숙소도 즐비하다.

대릉원은 이른바 '인생 사진'을 남기는 장소로 20대 여행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학구적인 청년들에게 경주박물관은 '역사 지식의 보물창고'로 역할 한다.

황리단길에서 조그만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동궁과 월지를 찾은 20대 초반 연인들은 역사에 관한 궁금증이 큰 모양이었다.

표지판의 설명을 읽다가 눈을 동그랗게 뜬 여자가 물었다. "옛날엔 여기에 진귀한 동물이 많았다네. 신라시대엔 어떤 게 진귀한 동물이었을까?"

남자친구를 대신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편찬위원회가 간행한 <신라의 건축과 공예>가 들려준다.
 
"문무왕 시대를 서술한 '삼국사기'를 보면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 기록된 '진금기수(珍禽奇獸)'는 흰 사슴, 희거나 자줏빛인 노루, 흰 말, 흰 까마귀, 흰 꿩, 흰 매, 흰 까치, 앵무새, 공작새, 학들이다. '일본서기'에는 백제나 신라가 진금기수를 일본에 전해준 기록이 있는데 낙타, 양, 앵무새, 공작새, 까치, 흰 꿩 등이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동궁과 월지는 '아름다운 신라의 화원'인 동시에 1300여 년 전 만들어진 '신기한 동물원'이기도 했던 듯하다. 실제로 월지 발굴에선 포유동물의 뼈가 228점, 조류의 뼈가 14점, 치아가 29점 나오기도 했다.

<신라의 건축과 공예>에 따르면 월지엔 진귀한 새와 짐승만 있었던 게 아니다. 많은 종류의 꽃과 나무도 식재돼 있었다. 이런 설명이다.
 
"화분 분석에 따르면 동궁과 월지에는 총 25 품종의 식물이 식재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버드나무, 잣나무, 소나무, 굴피나무, 이팝나무, 배나무…. 그 외에 신라시대에 흔히 식재됐다고 생각되는 수종으로 복숭아, 오얏, 대나무, 장미, 해당화, 모란을 들 수 있다."

통일신라의 왕족과 귀족들은 바로 여기서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진귀한 새의 날갯짓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건 동궁과 월지가 선사하는 드물고도 흥미로운 체험이다.
 
동궁과 월지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유물들.
 동궁과 월지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유물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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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 맑은 날과 흐린 날... 언제 찾아도 좋은 곳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기억의 회로'는 구체적 사물을 매개체로 작동을 시작한다. 동궁과 월지에서 만났던 60대 동창생들과 20대 연인들은 화려했던 통일신라의 화원 월지와 세련된 미적 감각으로 만들어진 유물 가득한 동궁을 매개체로 경주를 기억했으며, 앞으로도 기억할 것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둥근 파문을 일으키는 월지를 바라보며 한참을 망연자실 서있던 기억이 난다. 빗물에 머리칼을 적시며 <삼국사기> 등 고문헌에 등장하는 신라 왕들의 이름을 하나씩 떠올리다가, 문득 1천 년 전 서라벌 사람들을 생각했다.

무언가 애틋하고 사무치는 감정이 맑은 날 동궁과 월지에선 느껴보지 못한 것이라 이채로웠다. 그 옛날 신라인들 역시 비 내리는 날이면 섬세해진 마음으로 이 연못 주위를 서성이지 않았을까?

이름 모를 풀벌레가 우는 밤이면 어둠을 밝히는 화려한 불빛이 월지와 동궁을 감싼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夜景)은 낮 풍경 못지않게 근사하다.

비단 같이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밤이 주는 평화로움. 색색깔 조명의 아름다움에 취한 여행자들은 곁에 선 가족과 연인의 손을 잡는다. 그 따스했던 기억이 그들을 다시 한 번 경주로 향하는 차에 오르게 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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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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