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06 20:35최종 업데이트 22.03.0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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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의 침로인 'ESG'가 거대한 전환을 만들고 있다. ESG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의 앞자를 딴 말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세계시민의 분투를 대표하는 가치 담론이다. 삶에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사람과 조직을 만나 그들이 여는 미래를 탐방한다.[기자말]
중년의 형사(대니 글로버)가 가족과 함께 모여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그가 참치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려던 순간, 그의 딸과 아내가 소리친다.

"참치?"('설마 참치를 먹는 거야?' 정도의 의미)

1989년에 개봉한 영화 <리썰 웨폰 2(Lethal Weapon 2)>의 한 장면이다. 1980년~199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참치 통조림 불매 운동과 관련된 장면이다. 극 중에서 아내(달린 러브)가 설명하듯 참치를 대량으로 어획하는 과정에서 그물에 걸린 돌고래를 죽이고 참치를 가져간다는 사실이 알려져 어린이를 비롯하여 많은 미국인이 분노했다.
 

<리썰 웨폰 2 Lethal Weapon 2>의 한 장면

 
30년 분쟁

인간 활동으로 인한 해양 포유류의 감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미국은 해양 포유류 보호법(MMPA, The US Marine Mammal Protection Act)을 1972년에 제정했다. 이 법은 해양 포유류의 심각한 부상 및 사망을 유의미한 수준으로 낮추는 게 목적이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은 해양 포유류 개체군을 지속 가능하도록 보호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참치 어업 과정에서 돌고래의 부수적 피해가 쟁점이 되자 미국은 미주열대참치위원회(IATTC)에 문제 해결 프로그램을 만들게 했다. 1976년 IATTC 회원국(현재 21개국)은 참치 생산에서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한 살해를 피하고자 합당한 노력을 기울이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참치 어선의 어로에 의한 돌고래 사망률을 추산하고, 돌고래 개체 수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며, 어획 중 돌고래 사망률을 가능한 최저 수준으로 낮추는 방법을 조사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첫 조치로 미국 외 다른 국적 선박에서도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IATTC는 미국수산청이 시행한 것과 유사한 관측 프로그램을 만들어 1979년 회원국에 도입했다.

모든 국가가 관측 프로그램에 참여한 첫해인 1986년 총 돌고래 사망 수가 13만여 마리로 파악됐다. 이전 10년간 추정된 연간 수준의 약 3배였다. 1987년 생물학자인 샘 라부드(Sam LaBudde)는 환경단체 지구섬협회(Earth Island Institute)와 해양포유류기금(Marine Mammal Fund)의 지원 아래 참치 어선에 비밀리에 잠입해 거대한 어망으로 돌고래를 둘러싼 채 참치를 잡고 있음을 밝혀내고 현장 영상을 공유했다. 이 영상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 미국 국민을 분노케 하였고, 이러한 분노의 일단이 영화 <리썰 웨폰 2>에 반영돼 지금까지 전해진다.
 

돌고래 ⓒ pixabay

 
1988년 MMPA는 해양 포유류를 괴롭히거나 사냥, 포획, 살해하는 행위를 하는 나라의 참치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아 개정됐다. 이에 따라 미국에 참치를 수출하려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준수해야 했다. 먼저 해양 포유류 포획을 규제하는 미국과 유사한 수준의 프로그램을 자국이 시행중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둘째로, 해당 국가 선박이 해양 포유류를 부수 어획하는 평균 비율이 미국 선박이 포획한 평균 비율과 비슷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평균의 1.25배를 초과하면 미국 수출이 금지된다.

또한 중계무역으로 미국에 참치나 참치 제품을 수출하는 국가는 참치나 참치 제품의 대미 수출이 금지된 국가의 것을 가져다 미국에 수출할 수 없다. 2년의 유예기간을 둔 개정안 통과 후 1990년 3월 30일 시행을 위한 최종 규칙이 발표됐다.

미국의 MMPA 개정안 시행에 따라 멕시코는 미국에 참치 제품을 수출할 수 없게 됐다. 멕시코는 미국의 멕시코 산 참치 제품 수입 금지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1991년 2월 GATT에 제소했다. GATT 합의체는 멕시코에 대한 미국의 수입 규제가 GATT의 조항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멕시코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재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는 합의체 보고서를 해당 WTO 회원국이 발표 60일 이내에 거부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채택되지만 GATT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멕시코와 미국은 GATT 외부에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자체 양자 협의를 개최했다.

1992년에 유럽연합(EU) 전신인 유럽공동체(EC)도 이의를 제기했고 1994년 중반에 GATT 회원들에게 배포된 두 번째 합의체 보고서가 발표돼 다시 한번 미국이 졌다. 하지만 미국이 합의하지 않으면서 GATT 시스템 하의 두 건의 합의체(패널) 보고서는 최종적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GATT의 무역 분쟁과 별개로 미국의 가장 큰 참치 통조림 회사인 스타키스트(StarKist)는 자국 내 소비자의 참치 불매 운동의 취지를 받아들여 돌고래의 안전을 보장하는 어로 방법으로 잡은 참치 통조림을 판매하기로 하고, 자체적으로 '돌고래 안전'(dolphin safe) 마크를 붙이기로 했고, 연이어 3대 참치 통조림 회사의 나머지 두 기업(Chicken of the Sea, Bumble Bee)도 돌고래 안전 라벨을 도입했다. 당시 3대 기업의 미국 참치 통조림 시장 점유율은 약 75%에 달했다.
 

돌핀 세이프 라벨 ⓒ 미국 상무부

 
미국 의회는 업계의 자발적 라벨링 동향을 참조하여 1990년에 안전한 라벨링 표준을 제시하는 '돌고래 보호 소비자 정보법(DPCIA, Dolphin Protection Consumer Information Act)을 제정했다. DPCIA에 명시된 '돌고래 안전' 라벨이 미국 상무부가 지정한 표준 인증이 된다. DPCIA는 유자망과 건착망 등 어구의 종류, 감시체제 등 세부사항을 거론하며 돌고래 안전 라벨 인증 기준을 적시하였다.

멕시코는 미국의 돌고래 안전 라벨이 무역에서 불공정한 차별에 해당한다며 2008년 10월 이번에는 GATT의 후신인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각각 2011년, 2012년에 배포된 합의체(패널)와 상소 기구 보고서에서 돌고래 안전 라벨링이 WTO 비차별 의무를 위반했다고 결론 나면서 미국은 다시 패소했다.

미국은 WTO의 결정을 받아들여 2013년 7월에 연방법(50 CFR § 216.91, 261.93)을 수정하며 라벨링 기준을 일부 변경했다. 그러나 멕시코는 이것 또한 불공정한 차별에 해당한다며 WTO에 이행 관련 분쟁을 요청했고, 2015년 11월 WTO 상소기구는 미국의 참치 제품에 대한 돌고래 안전 라벨 부착 제도가 여전히 분쟁해결기구의 권고 및 판결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멕시코는 2016년 미국의 WTO 협정 의무 불이행으로 입은 피해액이 4억 7230만 달러라고 주장하며 보복 절차에 관한 중재를 요청했다. 중재가 받아들여져 멕시코가 주장한 액수의 3분의 1가량인 연간 1억 6323만 달러의 보복 관세를 2017년부터 멕시코가 미국에 부과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은 2016년에 한 번 더 라벨링 규정을 고쳤고, WTO에서 멕시코와 다시 한번 분쟁을 겪은 뒤에 2019년에 최종적으로 미국이 승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약 30년에 걸친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참치 분쟁은 미국이 최종적으로 승리를 얻으며 종결됐고 돌고래 안전 라벨 또한 살아남았다.

30년 분쟁을 감수하며 미국은 돌고래 안전 라벨을 지켜냈지만, 이 라벨이 정말 돌고래를 보호하는 유효한 수단인지에 관해선 회의가 확산되고 있다. 돌고래 안전 라벨을 받기 위해서는 선장 또는 국가·국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감시관이 조업하는 동안 의도적인 건착망 설치 및 사용과 돌고래의 심각한 사상이 없었다고 서면으로 인증하는데,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Seaspiracy)>는 현재 돌고래 안전 라벨링이 실제로 돌고래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고발했다.
 

다큐 <씨스피라시> ⓒ 넷플릭스

 
감시관이 있지만 매번 승선하지 않고, 선장이 구두로 돌고래가 죽지 않았다고 하면 그렇다고 믿으며, 심지어 뇌물을 받고 라벨이 발급된다고 주장했다. 바다의 진실은 생각보다 파악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참치 분쟁은 동물 권리에서 비롯된 정책이 수입국 규제로까지 이어진 사례다. 저탄소 경제와 탄소 중립의 실현을 위한 정부 또는 기업의 과도한 환경적 조치는 통상 마찰로 이어질 수 있지만, 갈수록 해외 시장의 환경 규제가 강화해지고 있으며, 깨끗하고 안전한 제품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의 30년 참치 분쟁의 경과에서 드러났듯, 자유무역체제에서도 생태계 보호에 점점 힘을 싣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멸종하는 돌고래 더는 없어야
  

이라와디 돌고래 ⓒ WWF

 

'웃는 얼굴'과 비슷해 '웃는 돌고래'로 불리는 희귀종 민물 돌고래 이라와디 돌고래가 최근 멸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달 20일 AP 등에 따르면 2월 15일 라오스와 국경을 접한 캄보디아 북동부 쓰뚱 뚜렝 주 내 메콩강 강둑에서 이라와디 돌고래 한 마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어류보존국은 이튿날 페이스북에 해당 사진을 싣고 "라오스 국경 인근 마지막 (이라와디) 돌고래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표한다"라고 적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죽은 돌고래는 약 일주일 전 꼬리가 어망에 걸렸고, 이후 꼬리의 상처로 제대로 헤엄을 치지 못해 먹이를 찾지 못해 죽은 것으로 보인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은 몸길이 2.6m에 몸무게 110kg이 나가는 이 돌고래가 25살 수컷이며 사체가 발견되기 사흘 전에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한 지역 주민은 방송에 출연해 "이번에 죽은 이라와디 돌고래는 이곳에서 살던 마지막 민물 돌고래"라며 "먹이가 부족하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만큼, 라오스에서는 더는 돌고래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웃는 듯한 얼굴과 인간에게 친밀한 행동으로 일명 '웃는 돌고래'로 불리는 이라와디돌고래는 민물 돌고래로 메콩강 지역을 포함한 인도차이나와 벵골만, 호주 북부 지역에서 주로 발견됐다.

최근 메콩강의 오염과 불법 포획이 늘면서 멸종 위기에 직면했다. 캄보디아 어류 당국에 따르면 1997년 이라와디 돌고래 개체 수가 200마리였지만, 2020년에는 그 수가 89마리까지 줄었고, 그나마 메콩강 하류 지역에서만 목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마지막 개체로 보이는 25살 수컷이 숨졌다.

미국과 멕시코의 30년 무역전쟁과 '돌고래 안전' 라벨링의 의의를 되새기면서 지구촌이 더 늦지 않게 움직여 멸종하는 돌고래 종이 이라와디 돌고래에서 그치기를 기원하게 된다.

글: 안치용 ESG코리아 공동대표, 현경주 바람저널리스트, 이윤진 ESG연구소 연구위원
덧붙이는 글 참고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해양 포유류 보호법 정책, 지침 및 규정’
https://www.fisheries.noaa.gov/national/marine-mammal-protection/marine-mammal-protection-act-policies-guidance-and-regulations
The Tuna-Dolphin Controversy in the Eastern Pacific Ocean: Biological, Economic, and Political Impacts
https://www.pacifictunaalliance.org/wp-content/uploads/2016/05/tuna-dolphin-controversy.pdf
The Origin Of The “Dolphin-Safe” Tuna Label
https://www.forbes.com/sites/allenelizabeth/2021/04/28/the-origin-of-the-dolphin-safe-tuna-label/?sh=3ee98fc53c11 The Tuna-Dolphin Controversy in the Eastern Pacific Ocean: Biological, Economic, and Political Impacts
https://www.pacifictunaalliance.org/wp-content/uploads/2016/05/tuna-dolphin-controversy.pdf
Mexico etc versus US: ‘tuna-dolphin’
https://www.wto.org/english/tratop_e/envir_e/edis04_e.htm

“3 TUNA FIRMS MOVE TO SAVE DOLPHINS”, 워싱턴포스트, 1990년 4월13일
The Origin Of The “Dolphin-Safe” Tuna Label
https://www.forbes.com/sites/allenelizabeth/2021/04/28/the-origin-of-the-dolphin-safe-tuna-label/?sh=3ee98fc53c11
United States - Measures Concerning the Importation, Marketing and Sale of Tuna and Tuna Products from Mexico - Recourse to article 21.5 of the DSU by Mexico - Report of the Panel (2015.4.14)
https://docs.wto.org/dol2fe/Pages/SS/directdoc.aspx?filename=q:/WT/DS/381RW.pdf&Open=True
United States — Measures Concerning the Importation, Marketing and Sale of Tuna and Tuna Products
https://www.wto.org/english/tratop_e/dispu_e/cases_e/ds381_e.htm
박지은, 이양기, 김영림.(2021).TBT협정하의 탄소라벨링에 관한 충돌가능성 검토 -WTO 분쟁사례를 중심으로-.통상정보연구,23(2),159-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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