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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 어떡해 어떡해."

몇 번을 베란다 밖 창문을 열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산불 연기가 우리집에서도 보일 만큼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5일 토요일 수리산 수암봉 부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수리산은 안산과 안양, 군포에 걸쳐 있는 꽤 넓은(큰) 산이다. 나는 평소 수리산을 우리집 뒷산이라고 불렀다.
 
수리산 수암봉(안산)에서 시작된 화재로 인한 연기가 우리집 베란다에서도 육안으로 확인되는 모습. 해질녁이라 마치 불길이 이곳까지 퍼진 기분이다.
 수리산 수암봉(안산)에서 시작된 화재로 인한 연기가 우리집 베란다에서도 육안으로 확인되는 모습. 해질녁이라 마치 불길이 이곳까지 퍼진 기분이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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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랬다. 평일이면 점심을 먹고 산책하는 공간이고, 주말이면 새벽마다 수리산에 올랐다. 그러기 시작한 게 벌써 햇수로 4년째다. 그사이 나는 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수리산에 한 번 오라고 전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힘들 때마다 기쁠 때마다 나를 응원하고 위로해준 건 사람보다 나무들이었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는 더 그랬다. 사람들을 편히 만날 수 없었으니까.

자연이 주는 위로는 인간이 주는 위로만큼이나 셌다. 그 티끌만큼의 위로라도 받고 싶어서 주말이면 새벽마다 꾸역꾸역 가방을 메고 산으로 향했다. 그런 나였으니 이번 산불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마치 내 집 마당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안타까웠다. 빨리 진화되기를 바랐다. 진화에 나설 소방관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안전도 빌었다. 그리고 산속 동물들의 안전도. 무엇보다 나무들, 내가 사랑한 나무들의 피해가 덜하기를 바랐다.

진화가 잘 되어 다시 산에 오르게 되면 감사한 마음으로 산을 잘 돌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인간이 다녀간 흔적을 절대 남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연이 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지만 자연을 훼손하는 일에는 1도 동참하고 싶지 않은 비장한 마음까지 생겼다. 그리고 이 책이 생각났다. 김선남 그림책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다.

다르기에 함께 살아가는 나무, 그리고 사람 
 
김선남 지음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
 김선남 지음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
ⓒ 그림책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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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기 전에는 실감을 못했다. 정말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다. 연둣빛으로 돋아나는 잎을 보며 봄을 느끼고, 길게 뻗어나는 가지와 무성하게 돋아나는 잎사귀들을 보며 여름을 실감했다. 색색으로 물든 나뭇잎들을 보며 가을의 아름다움에 빠졌고 맨몸뚱이를 훤히 드러내는 겨울 산까지 함께 하고나서야 겨우,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다 다른 나무라는 걸.

겉모습만 다른 것도 아니었다. 향도 달랐다. 따스한 봄의 향, 습도 가득하거나 태양빛 가득한 여름의 향, 따스함과 시원함 사이 가을의 향, 시원하다 못해 차디찬 겨울의 향까지 산의 공기는 다 같은 향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빛도 달랐다. 부드러운 봄의 빛, 쨍한 여름의 빛, 따사로운 가을의 빛, 포근한 겨울의 빛까지. 산은 매일, 매 주, 매 월, 한 해가 다 달랐다.

나무가 많은 동네에 사는 김선남 작가도 그걸 알아차렸나 보다.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는데, 꽃이 피는 걸 보고 벚나무인 걸 알고, 싹이 나는 걸 보고 은행나무인 걸 알고, 그늘을 보고 느티나무라는 걸 알았다는 걸 보면. 뿐인가. 다람쥐를 보고 참나무를 발견하고, 솜사탕 향기가 나는 나무가 계수나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썼다

다정하게 들려주는 작가의 말을 듣다보면 나무의 다른 생김만큼 다 다른 우리들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떠올려진다. 저 다양한 나무들이 서로의 몸에 기대어 가뭄도, 태풍도, 홍수도, 산불도 이겨내겠거니 생각하면 우리 삶도 혼자보다 함께 살아갈 때 더 잘 살 수 있겠다는 믿음도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매 페이지마다 작가가 새로 알게 된, 그리하며 읽는 독자들도 새롭게 알아가는 다 다른 나무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무 가득한 공원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장면을 마주하는 기쁨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작가가 언급한 나무들의 생태에 대한 정보까지 실어 책의 완성도를 더했다. 이쯤에서 피어오르는 궁금증. 그렇다면 다 다른 나무의 같은 점은 없을까? 독자의 이런 호기심을 작가도 예상했는지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혀뒀다.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잎을 내서, 씨앗을 키워 보내는 삶을 해마다 반복하며 살아가요. 그건 모든 나무가 같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나무마다 다 달라요. 그 다름이 그 나무의 고유한 개성이고 그것이 드러날 때, 그 나무는 빛이 나요. 여러분은 언제 빛이 나나요?"

'나무를 알아가는 것은 세상을 알아가는 것과 같다'더니, 작가가 던진 질문을 한번 곱씹어 봐야겠다. 수리산을 걸으면서.

아, 김선남 작가와 나는 아마도 한동네에 사는 것 같다. (작가는 당연히 나를 모르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수리산 그리고 같은 동네에서 같은 나무들을 보고 쓴 책이라 그런지 그림도, 글도 더 친근하게 여겨진다.

김선남 작가는 2019년  그림책 <은행나무>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미 자연을 소재로 하거나 주제로 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나무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번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가 자연에서 길어 올린 글과 그림들을 계속 만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

김선남 (지은이), 그림책공작소(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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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2021년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2017년 그림책 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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