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26 19:50최종 업데이트 22.03.2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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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안 열려."

이은호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으로부터 온 우편물을 찢다시피 열었다. 두산중공업이 걸어온 민사소송 첫 재판이 3월 23일 열린다고 적혀 있었다.


'어렵게 새집을 마련하여 새로운 각오로 입주하는 시점에 대문 명패에 페인트 칠을 한 것과 동일하며 이로 인하여 회사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고 두산중공업의 임직원들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음은 이루 말할 수도 없다 할 것입니다. - 소장 내용 중 일부'

이은호는 읽다 말고 물을 들이켰다. 그는 1840만 원을 물어내라는 소장을 방바닥에 던져버렸다.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반대 퍼포먼스 시위
 

2021년 2월 28일 이은호와 강은빈은 두산사옥앞에서 시위를 했다 두산 중공업이 석탄화력발전소를 베트남에서 새로 짓는 것에 저항한 행동이다. ⓒ 이은호제공

 
이은호는 작년 2월 28일 '청년기후긴급행동'의 공동대표인 강은빈과 함께, 분당 두산중공업 영문 입간판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그 위에서 '최후의 석탄 발전소 내가 짓는다'를 새긴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두산이 삼성물산·수출입은행·한국전력과 함께 베트남에서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의 설계·시공을 수주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그린피스와 함께 분석해 "'붕앙2'에서 1년에 배출될 온실가스가 660만 톤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에 '그린뉴딜'로 5년 동안 탄소배출량 1229만 톤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는데 '붕앙2'가 2년만 가동되어도 가볍게 이 절감량을 넘어서는 셈이다.

이은호는 이 퍼포먼스 시위로 형사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날 이은호와 강은빈은 경찰에 임의동행되어 분당경찰서 지능팀에서 조사를 받았다. 사건을 송치받은 성남지청 김현경 검사는 "두산 미화 직원들이 물로 씻어냈지만 기단부 대리석까지 오염돼 청소하느라 불필요한 인건비 등이 소요됐다"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과 재물손괴죄란 죄목으로 두 사람을 기소했다.

올해 2월 29일 1심 판결이 나왔는데, 성남지원 형사 5단독 방일수 판사는 이은호와 강은빈에게 각각 벌금 300만 원과 200만 원을 선고했다. 그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이 기업의 광고와 그 미적 효과를 위한 조형물의 전면을 초록색 페인트로 얼룩덜룩하게 칠하였고 이를 제거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하단부의 대리석에 스며든 페인트 일부는 제거하지 못하여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게 된 점을 고려하면 위 조형물의 효용을 해하였다"라며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법무법인 해우의 이치선 변호사가 '기후위기에 맞선 시민의 저항권이며 물청소만으로도 지워지는 수성스프레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판사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집시법위반에 대해서도 유죄를 선고했다.

형사재판에서 벌금형 300만 원을 받은 지 한 달도 안 돼 1840만 원의 손해배상소송장까지 받아든 이은호는 난감했다. 마음을 진정하고 혹시 부모님이 다니러 왔다 보실까 봐 방바닥에서 소장을 주워 원룸의 벽장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돈키호테를 좋아한 문학청년 이은호
 

녹색당 창당기념 전시회장에서 이은호 그는 올해 기후정의위원장에 재선출되었다. ⓒ 민병래

 
89년생 이은호는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에 09학번으로 들어갔다. 그는 원서로 돈키호테를 읽으려 애썼고 이사벨 아옌데가 쓴 '영혼의 집'을 좋아했으며 네루다 시집을 즐겨 음미하는 문학청년이었다.

그런데 대학 3학년인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서울대학교 법인화 작업을 추진했다. '국립대학'을 '국립대학법인'으로 만들어 자율성을 부여하고 경쟁력을 갖게 한다는 취지였다. 국회에선 이 법안이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당시 서울대학생 1800명은 이에 반대해 학생총회를 열고 31일 동안이나 대학본관 점거농성을 했다. 이은호도 이 현장에 있었다. 대학에서 경쟁력이라는 구호가 난무하는 것을 그냥 볼 수 없었다. 비록 법인화를 저지하지 못했으나 농성투쟁 이후 이은호는 늦깎이 3학년에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법인 설립 이후 서울대학교 당국은 신입생 입학후 시흥캠퍼스에 1년간 기숙시킨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학교는 또 술렁거렸다. 신입생들을 선배들과 떨어뜨려 놓겠다는 의도라고 의심받았다. 이은호는 강력한 저항운동을 이끌었고 학교의 이 시도는 없던 일이 되었다.

그 후 국정원의 대선개입공작과 2014년 세월호참사를 겪으면서 이은호가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더욱 매서워졌다. 졸업 후 평범한 직장생활은 성에 안 차 이은호는 2016년 녹색당의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알게 된 기후위기는 불평등, 성차별, 남북관계와 같은 우리 사회의 다른 문제와 같은 선상에 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든 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는 인류의 대멸종에 관한 문제였다.

그때부터 이은호는 '기후위기'를 자기 삶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활동 반경은 녹색당에만 머무르지 않고 뜻을 같이하는 청년들과 '청년기후긴급행동' 같은 별동대를 만들어 두산 사옥 앞 시위 등을 조직했다. 그런 노력을 인정받아 이은호는 2021년 봄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위원장으로서 그가 처음 맞닥뜨린 일이 2021년 5월에 열릴 P4G 녹색정상회의였다.

신규 석탄화력발전 저지 위해 15일간 단식

P4G 정상회의는 온실가스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덴마크가 주도해 대륙별 12개 중견국가와 세계자원연구소와 같은 국제기구들이 참여해 만든 연대체였다. 한국이 주최하는 제2차 회의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기에 '석탄화력발전' 문제를 부각시키기 좋은 장이었다.

이은호는 단식농성을 제안했다. 단식이 건강을 해치기에 녹색당의 가치와 맞지 않아 논란이 많았지만 당무위원회는 이 투쟁 방법을 받아들였다. 이은호는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지하철 2·4·5호선이 만나고 하루 수만 대의 차량이 오가는 시끄럽고 매연 가득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광장에 햇빛 가림용 천막 하나를 쳐 놓고 5월 17일부터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이은호가 단식농성 12일 차에 문 대통령에게 쓴 편지는 언론에 알려지며 큰 화제가 되었다.

"저는 대한민국이 기후위기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를 국내외에 10개나 새로 짓는 것을 막기 위해 단식하고 있습니다. (2021년) 4월에 발표된 유엔 세계기상기구(WMO) 보고서를 접하셨는지요. 지구 온도가 이미 1.2℃ 올랐으며 1.5℃까지 불과 0.3℃ 남았다는 내용입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공포스럽다. 이제 우리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기후변화로 인한 참혹한 재난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 행동해야만 한다"고도 했습니다."

이은호는 석탄발전 신규건설을 분명히 반대하며 임계점 1.5℃를 강조했다.

2019년 가을, 호주에서는 무려 6개월 동안 산불이 이어졌다. 남한 면적보다도 넓은 땅이 불에 탔고, 건물 6500개가 사라졌으며 33명이 목숨을 잃었다. 코알라 1만 마리를 포함 1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죽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호주는 그해 하루 평균기온 41.9℃를 기록했고 강수량은 1900년도의 평균보다 40%나 감소했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호주 산불로 약 4억 톤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나온 것으로 분석했다.

2021년에는 시베리아의 기온이 38도까지 치솟아 산불이 일어났고 한반도 크기에 이르는 면적이 불에 탔다. 연기가 북극까지 뒤덮었을 정도였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어 시베리아의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 여기에 묻혀있던 메탄이 터져 나오는데 이는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온실가스다.

온난화와 가뭄으로 지구가 훨훨 타올라 이산화탄소가 걷잡을 수 없이 배출되는데 거기에 메탄까지 더해지면 탄소 배출을 극적으로 줄여도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는 상태가 된다. 재난 영화가 일상이 되는 기후위기의 기준점이 바로 1.5℃이기에 이은호는 이를 힘주어 표현했고 온실가스의 주범 석탄화력발전소를 막기 위해 단식농성을 한 것이다.
 

이은호는 2021년 5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광장에서 단식농성을 했다 신규석탄 화력발전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 이은호제공

  
5월 31일 P4G 서울정상회의는 '지구온도 상승 1.5℃ 이내 억제 지향과 탈석탄을 향한 에너지 전환 가속화'란 선언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서울 정상회의는 스웨덴의 기후운동가 툰베리를 초청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툰베리는 한국전력이 베트남 석탄 발전에 투자한 사실에 대해서 "매우 심각한 문제다. '리더'라고 불리는 나라들도 경우에 따라 '악당'이 될 수 있다. 기후문제에 앞장선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일들은 거의 다 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외에서 석탄화력발전소를 10기나 새로 지으면서 정상회의에서는 우아하게 탈석탄을 선언한 한국을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이은호는 5월 31일 P4G 회의 폐막과 함께 단식농성을 풀었다. 텐트와 이불을 걷고 손팻말을 치울 때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에 가슴이 뜨거웠다. 

지구 온도 1.5℃ 상승 시기는 다가오는데

올해 2월 15일 이은호는 기후정의위원장에 재선출되었다. 그는 20대 대통령선거에서 '기후위기'를 '으뜸 의제'로 만들고 싶었다. 탈성장이 되지 않으면 거대한 전환이 되지 않으면 1.5℃ 온도 상승을 막을 수 없는데 거대보수정당의 공약은 성장 일변도였다. 그는 이리저리 뛰었지만 판을 바꿀 수 없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선을 지켜봤다.

이은호의 활동명은 청연이다. '청'은 기형도 시인이 쓴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라는 시에서 따왔고 '연'은 제사 때 쓰는 그릇으로 논어에서 가져왔다. "변함없이 쓸모 있는 그릇이 되자"는 다짐이다. 그런 마음을 하루하루 벼리며 신림동에서 월세 40만 원을 내고 강연이나 위촉연구원 활동으로 근근이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그런데 요즘 돈의 압박이 크다. 스프레이 퍼포먼스 한 번에 김현경 검사와 방일수 판사, 두산중공업이 보내온 청구서 외에도 많다. 2021년 10월 6일 포스코가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에서 '수소환원제출 국제포럼'을 열었을 때 이은호는 2분만 시간을 달라며 연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60%까지 높여야 한다..."고 몇 마디 외치다가 끌려나갔다. 이 일로도 3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가덕도 신공항법'에 반대해 더불어민주당의 당사 현관에 올라가 농성하다 잡혀간 것까지 치면 올해 34살의 청년 이은호는 벌써 전과 4범이고 그동안 활동하며 내라고 한 형사 벌금 총액만 900만 원이다. 두산중공업이 걸어온 손해배상소송의 결과도 알 수 없으니 청년기후긴급행동 차원에서 모금을 한다해도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가덕도 신공항법'에 반대해 더불어민주당의 당사 현관에 올라가 농성하던 모습.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사람이 이은호 위원장. ⓒ 이은호 위원장 제공


2018년 브라질의 자이르보우소나르는 아마존 열대우림개발을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한 브라질 연구진은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아마존개발로 약 13.2기가톤에 이르는 이산화탄소가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2017년 한 해 동안 중국의 배출량이 9.1기가톤이었는데 이를 가볍게 넘어서는 수치다. 지도자의 정책 하나가 브라질만이 아니라 인류를 기후위기로 한 걸음 더 밀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IPCC는 2021년 8월 9일 6차 보고서에서 2021년에서 2040년 사이에 지구온도 상승이 1.5℃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2021년 5월 27일 우리나라 기상청 산하 국립기상과학원도 1.5℃ 상승 시기가 예상보다 10여 년 앞당겨진 2028년부터 34년 사이로 전망했다. 두 보고서를 종합하면 2021년부터 2028년 사이에 1.5℃ 상승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2021년에서 2028년은 바로 윤석열 정부의 임기 5년과 겹치는 시기다. 윤석열은 이를 인식하고 있을까? 이은호와 그의 동지들은 말한다.

"우리의 '긴급행동'은 이 사회의 거짓된 평온함을 깨는 파열음이자, 고요하고 어두웠던 밤의 끝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입니다."

<못다한 이야기>

① 형사 판결문의 정확한 문구는 아래와 같은데 이 글에선 조금 줄여서 인용했다.

"피고인들이 페인트를 칠한 조형물은 기업의 상호를 고유한 서체로 표시한 기업의 상징물이자 기업의 사무소 앞 광장의 한복판에 설치한 론사인(lawn sign)으로 그 주된 용도와 기능은 기업의 광고와 그 미적 효과에 있다 할 것인데 피고인들이 기업의 활동을 비난하려는 뜻으로 조형물의 전면을 초록색 페인트로 얼룩덜룩하게 칠하였고 결국 이를 제거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조형물 하단부의 대리석에 스며든 페인트 일부는 제거하지 못하여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게 된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들은 위와 같이 페인트를 칠하여 위 조형물의 효용을 해하였다 할 것이다."

② 이 글에서 인용한 그레타 툰베리의 말은 2020년 10월 20일자 한겨레신문 최우리 기자가 그레타툰베리와 영상 인터뷰한 기사에서 가져왔다. 이은호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편지 전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97116.html

③ 단식 이후 이은호는 그날로 면목동의 녹색병원에 입원했다. 몸무게가 17kg이나 줄었다. 수액을 맞고 미음을 먹었다. 단식 7일께부터 변을 못 봤는데 회복식 이틀 후에 다행히 장이 뚫렸다. 병원을 나와 간 곳은 영등포의 꿀잠. 그곳은 투쟁에 지친 활동가들의 치유공간이었다.

이은호가 이곳에서 만난 식단은 양배추, 버섯, 시금치와 미음. 그는 녹색당 활동을 하면서 자신부터 변하려 노력했다. 즐겨가던 제주도도 그레타툰베리를 본받아 비행기를 안 타고 뱃길로 가려고 몇 해를 미뤘다.

고기를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줄이려 하지만 채식은 심심했다. 꿀잠에서 만난 버섯은 달고 찰졌다. 시금치는 봄날의 온기와 촉촉한 땅의 향기가 느껴졌다. 한 달 정도 머무른 꿀잠에서 그는 몸을 완전히 추스렸다. 

④ 대한민국이 국내외에 새로 짓는 석탄발전소는 다음과 같다. 베트남 붕앙 2호기, 인도네시아 자바 9·10호기, 신서천, 고성하이 1·2호기, 강릉안인 1·2호기, 삼척 1·2호기 총 10기다.

⑤ 브라질의 아마존 개발과 그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관한 내용은 <2050 거주불능 지구>(데이비드 월러스 웰즈지음)의 120쪽에서 인용했다.

⑥ 3월 23일에 열린 1차 민사재판에 이어 5월 달 2차 기일이 잡혔다.

⑦ 이은호 위원장의 형사재판에서 세월호시위관련 도로교통법위반 벌금형 50만원은 최종 확정되었고 나머지 세건 가덕도신공항반대행동, 포스코행사에서의 연담점거행동, 두산중공업 앞 스프레이건은 1심 판결은 나왔으나 항소심 진행중이다.

⑧ 이 글의 전문은 A4 6매 분량인데 여기선 축약본으로 게재했다(이 글의 전문은 본 기자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pmsigni)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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