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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3월 고1·2·3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24일 오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시험 전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2022학년도 3월 고1·2·3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24일 오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시험 전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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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냐. 이제는 식상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논쟁거리다. 현재 양시론과 양비론 사이에서 60:40이라는 수치로 어정쩡하게 봉합된 상태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른바 서울 상위권 대학에 한정된 비율일 뿐더러 앞의 60%는 학종을 포함한 수시모집 전체를 포괄한다.

여기서 또다시 둘 중 어느 것이 더 공정하고 교육적인가를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다. 학종은 교육적이되 공정성에 의심을 받고, 수능은 공정성을 다수가 수긍하지만 학교 교육을 황폐화시키는 문제가 있다는 정도로만 요약해 두자. 이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존재할 수 없다.

올해를 끝으로 전면 폐지되는 자기소개서(자소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다. 자소서의 온갖 부작용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24년 차 교사로서 단언하건대, 교육적으로 본다면 자소서는 가장 바람직한 제도다. 대입 전형 자료에 자소서만 남아도 문제 될 것 없다고 믿는다. 

스스로 3년간의 학교생활을 되짚어보고 자신의 성장 과정을 솔직담백하게 기록하는 것만큼 좋은 자료가 또 있을까. 기실 자기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글로 표현하는 능력은 학교 교육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성취 목표다. 성취 목표가 전형 자료로 활용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문제는 내용이 부풀려지기 일쑤고 심지어 남의 손에 의해 작성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자소설'이라고 조롱받는 이유다. '갑'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꾸미고 수백 번을 고치는 '을'의 처절한 몸부림이 자소서라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바다.

수많은 '을'들의 불안감에 기대어 '대서소'를 자임하는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여전히 성업 중이다. 우리 교육의 신뢰를 허무는 행태지만, 대입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온 그들을 탓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대입 제도는 조변석개를 거듭해왔지만, 사교육이 패배한 적은 없다. 

대입 제도에 어떤 바람이 불든 그들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풀'과 같은 생명력을 구가해왔다. 자소서의 전면 폐지 결정은 또다시 사교육의 승리를 공인하는 셈이 됐다. 학종과 수능이 70:30이든 60:40이든, 늘 공교육과 사교육의 대입 지분은 0:100이었다. 

'소스'와 '자소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자소서가 내용이 부풀려지고 남의 손을 거치는 게 문제라면,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는 과연 괜찮은 걸까. 당장 자소서는 아이들이 직접 작성하니 조작 가능성이 크고, 생기부는 교사가 기록하니 그나마 믿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학년말 생기부가 작성되는 '메커니즘'을 본다면, 자소서와 생기부 사이에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전국의 모든 교사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동료 교사들도, 연수 도중 만난 다른 학교 교사들도 기재 과정만큼은 대동소이했다. 아이들이 작성한 내용에 교사의 소견을 덧붙인 게 생기부다. 

만약 아이들이 '소스'를 건네지 않는다면, 생기부는 교사의 '자소설'이 되고 만다. 아이들의 수업과 학교생활 면면을 죄다 기록하고 기억하는 교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설령 그때그때 특이점을 메모해 두었다고 한들 학년말에 항목에 맞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낼 여유가 없다. 

올해 내가 작성하게 될 생기부를 예로 들어보자. 우선, 학급 아이들의 자율활동과 동아리활동, 봉사활동과 진로활동을 일일이 관찰한 뒤 기록해야 한다. 학년말 개별적인 특성이 드러나도록 행동 특성과 종합의견을 상세히 적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나마 학급당 25명 정도니 가능하다.

문제는 225명에 이르는 아이들의 학습 역량을 기록하는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교과 세특)이다. 얼굴과 이름을 외우기도 벅찬데, 수업 중 각자의 활동과 능력을 파악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진도 나가기도 빠듯한 마당에 개별 과외 식으로 수업을 진행할 순 없는 노릇이다.

수업 시간에 모둠활동을 한다 해도 눈에 띄는 아이는 몇 안 된다. 모둠 내에서 눈치껏 '무임승차'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수업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설령 '수포자'라고 하더라도 지침상 교과 세특을 공란으로 비워둬서는 안 된다.

그런 그들의 학습 역량을 생기부에 뭐라고 적어야 하나. 시험 성적이 좋을 리도 만무하니, 하나 마나 한 덕담 몇 마디 적어주는 게 전부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부실한 교과 세특 내용이 그들의 대입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에 위안 삼게 된다.

상위권 아이들의 교과 세특도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쓸 거리가 부족해서라기보다 어떤 내용을 넣고 뺄 것인가에 관한 걱정이다. 그들이 지망하는 학과에 부합하도록 '마사지'하는 게 교사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명문대 진학을 꿈꾸는 아이들에게도 절체절명의 과제다. 

학년말이 되면 자신의 교과 세특에 적어달라며 '소스'를 건네는 아이들이 줄을 잇는다. 물론,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주어만 바꿔 옮겨 적는 교사는 거의 없지만, 세부적인 활동 내용까지 토를 달기도 뭣하다. 아이가 방과 후 심화 활동을 했다는데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도 없다. 

아이들이 준비해온 '소스'를 아예 건네받지 않으려는 교사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소스'를 구하기 위해 자신만의 양식을 만들어 수업 시간에 직접 적어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미리 집에서 써오느냐, 학교에서 직접 작성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생기부와 자소서

결국 생기부도 자소서와 기재 항목과 작성의 주체만 다를 뿐 별반 다를 건 없다. 계량화된 지표로 기록되어 '마사지'가 애초 불가능한 내신 성적을 제외하면, 생기부나 자소서나 '소설책'인 건 매한가지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고작 둘은 '두께'의 차이만 날 뿐이라는 거다.

기실 생기부와 자소서는 묘한 '공생 관계'다. 생기부에서 자소서의 글감을 찾아 써야만 자소서의 신빙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는 자소서 작성의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신의 생기부 분석이 자소서 작성의 선행 작업이라는 이야기다.

거칠게 말하자면, 자신이 '소스'를 건네 작성된 생기부가 자신이 쓴 자소서의 근거로 사용되는 언뜻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다. 자소서의 1번 문항은 교과 세특 내용에 살을 붙이면 되고, 2번 문항은 생기부의 자율활동과 봉사활동 내용을 참고하면 된다. 주로 학과 지원 동기를 적는 3번 자율 문항은 정답이 지망 대학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인재상에 끼워 맞추면 된다. 

'공생 관계'란, 뒤집어 생각해 보면, 둘 중 하나는 필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자소서는 폐지되는 운명을 맞았고, 상대적으로 '두꺼운' 생기부는 살아남았다. 아이들 대다수가 자소서 폐지 방침에 반색하는 건, 어쨌건 두 번 할 일을 한 번으로 줄게 됐다는 인식 때문이다. 

단언컨대, 개별 기록에 관한 신뢰의 문제라면 생기부와 자소서의 차이는 거의 없다. 생기부의 기재 항목이 해마다 대입 전형 자료에서 제외되고 축소되는 건 그래서일 테다. 학종 도입 당시 그토록 기세등등했던 생기부엔 어느덧 내신 성적과 교과 세특만 남았다고 할 지경이다. 

생기부와 자소서 모두 불신을 받는 마당에 하나 마나 한 이야기지만, 만약 내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자소서를 선택할 것이다. 적어도 자소서는 가장 중요한 교육적 가치를 담지하고 있어서다. 다시금 강조하건대, 자기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글로 표현하는 능력은 학교 교육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성취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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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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