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외여행 중 시간을 내어서라도 양조장 투어를 하려 한다. 좋아하는 술을 마시는 것을 넘어 술의 제조과정을 보면서 원료나 제조 환경 등에 대한 호기심 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각 나라별로 그들만의 독특한 양조장 투어 상품들을 운영하고 있지만 원료나 공장의 규모가 아니라 자연을 하나의 관광 상품화 한 곳으로는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양조장이 독보적인 듯하다.
 
추락하는 위스키 시장에서도 싱글 몰트위스키는 다소 성장하고 있다.
 추락하는 위스키 시장에서도 싱글 몰트위스키는 다소 성장하고 있다.
ⓒ envato elements

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는 위스키를 만드는 국가가 아니다. 위스키의 원료가 되는 맥아(보리)를 비롯해서 제조 공법 자체가 우리가 만드는 제조방법과 달랐기에 오랫동안 쉽게 생산을 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과거 우리나라는 위스키를 전량 수입에 의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땅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술인 위스키에 대한 관심은 구한말 조선 사람들에게도 컸던 듯하다. 140년 전 구한말부터 위스키의 수입 역사가 시작 되었고 위스키 소비량도 제법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위스키라는 단어의 처음 등장은 조선말의 무역 문제 때문이었다.

강화도 조약(江華島條約)으로 알려진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가 1876년 2월 27일(고종 13년 음력 2월 3일) 조선과 일본 제국 사이에 체결된다. 사실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는 조선 입장에서 관세가 설정되지 않은 무관세 무역으로 불평등 조약이었다. 무관세 무역이 진행되면서 조선 정부의 당국자들은 무관세 무역의 문제점을 실감하게 된다.

이에 1878년 조선정부는 관세권을 회복하기 위해 개항장인 부산의 두모진(豆毛鎭)에 해관(오늘날 세관)을 설치하고 관세가 징수되도록 조치를 하였다. 하지만 일본인의 거센 항의로 두모진 해관이 폐쇄되어 1883년까지 다시 무관세 시대를 맞게 된다.

관세가 조약에 의해 규정된 것이 1882년 미국과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부터이고 이것이 조선의 관세 자주권이 최초로 인정받은 사례이다. 이때 수입산 물품들에 대한 관세를 정하면서 수입산 주류에 대해서도 관세를 규정하였다. 본격적인 해외 무역에 따라 '관세'라는 조세 항목이 등장한 것이다.

해관세칙(관세 규칙)을 적은 한성순보 1883년 12월 20일 자 기사에 의하면 수입되는 주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수입 관세를 내도록 하였다(주류 부분만 발취).
 
값의 100분의 8을 관세로 받는 것은 中國(중국)·日本(일본)의 주류, 林禽酒(능금주)
값의 100분의 10을 관세로 받는 것은 적·백 포도주·맥주
값의 100분의 25을 관세로 받는 것은 서양 월뭇(베르무트), 卜爾脫(복이탈 : 보르도와인), 瀉哩(사리 : 쉐리)
값의 100분의 30을 관세로 받는 것은 撲蘭德(박란덕 : 브랜디), 惟斯吉(유사길 : 위스키), 上伯允(상백윤 : 샴페인)·櫻酒(앵주 : 체리 코디얼)·杜松子酒(두송자주 : 진)·哩九爾(리구이 : 리큐어)·糖酒(당주 : 럼) 4별항에 기재되지 않은 일체의 주류
  
한성순보 1883년 12월 20일자 '해관세칙'
▲ 해관세칙 한성순보 1883년 12월 20일자 "해관세칙"
ⓒ 국립중앙도서관

관련사진보기

 
중국·일본의 酒類(주류)·林禽酒(능금주)와 함께 적·백 포도주, 맥주와 함께 위스키, 샴페인 등에 대한 관세를 언급하고 있다. 당시 수입 관세로 받는 주류의 세금 형태는 지금과 비슷하다. 저도주에는 저세율을, 고급 주류라고 알려진 술들이나 증류주들로 알코올이 높은 술들에 대해서는 높은 세금인 30%의 관세를 물린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주류들에게 세금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당시 수입주류라는 것이 유통이 되고 있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또한, 주변 국가인 일본이나 중국의 술들뿐만 아니라 먼 외국의 위스키나 일반 포도주와 보르도와인, 샴페인 등을 확실히 구분했고 고급 주류와 일반 주류의 세금을 차별 징수 까지도 했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정확한 관세를 걷기 위해 각 나라별 주세 및 그 술들에 대한 연구를 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당시 고급 식당이었던 조선 요리옥 등에서도 위스키를 판매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해방 이후에도 우리는 위스키의 대부분을 수입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국산 위스키가 탄생한다. 1981년 오비씨그램, 베리나인, 진로위스키 등 3사에 정부는 위스키 제조면허를 부여했다. 정부가 위스키 제조에 박차를 가한 이유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문이었다.

국제 행사의 손님맞이 술로 전통주뿐만 아니라 국산 위스키도 포함하려했다. 1982년 4월부터 국내에서도 몰트위스키 원액이 생산되기 시작한다. 1987년엔 국산 위스키 원액과 수입 위스키 원액을 섞은 위스키가 탄생한다. 진로의 '다크호스'와 오비씨그램의 '디프로매트'가 그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유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결국 1991년께 국내 위스키 원액 사업은 완전히 종료된다. 동시에 주류 수입의 문이 활짝 열렸다. 주로 수입되던 위스키 원액 대신 해외에서 만든 위스키들이 병째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1987년 동아일보의 위스키 광고
▲ 다크호스와 디프로매트 위스키 1987년 동아일보의 위스키 광고
ⓒ 동아일보

관련사진보기

 
오랫동안 위스키는 지속해서 성장했다. 하지만 음주 트렌드가 고도주에서 저도주로 변하고 '혼술'이 많아지면서 위스키 판매는 급감하기 시작한다. 비싼 술이라는 인식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추락하는 위스키 시장에서도 싱글 몰트위스키는 다소 성장하고 있다.

싱글 몰트위스키는 다른 증류소에서 생산한 위스키를 섞지 않고 한 증류소에서만 만든 것을 말한다. 그동안 위스키 생산은 국내 양조장 주인들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수입 위스키에 견줘 품질, 가격, 장기적인 투자 등에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면서 분위기도 달라졌다.

싱글 몰트위스키를 생산하는 양조장이 몇 년전에 생긴 것이다. 생산 설비를 영국과 독일에서 수입했다. 정통방식에 사용되는 위스키 증류기를 이용해 증류하는 것이다. 현재 증류를 한 위스키 원액은 오크통에서 잘 익고 있고 그 중 일부를 22년에 판매를 했고 다른 숙성 위스키도 올해 출시를 한다.

세계 여러 나라 술이 이미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위스키만은 예외였다. 위스키의 종주국은 스코틀랜드지만, 최근 일본, 대만 등에서 생산한 위스키가 국제 대회에서 상을 타는 등 주가가 고공행진 중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우리나라에서도 싱글 몰트위스키 증류소가 탄생한 건 반가운 일이다. 공항 면세점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위스키'를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남양주 쓰리소사이어티 증류소의 위스키 증류기
▲ 위스키 증류기 남양주 쓰리소사이어티 증류소의 위스키 증류기
ⓒ 이대형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합니다.


태그:#위스키, #해관세칙, #구한말, #관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통주 연구를 하는 농업연구사/ 경기도농업기술원 근무 / 전통주 연구로 대통령상(15년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 진흥) 및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수상(16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