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09 11:04최종 업데이트 22.04.2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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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홍순영은 '피로 물든 젖꼭지' 행동을 하려고 13명의 활동가와 함께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섰다. "시작합시다" 소리에 옷을 벗는데 2월의 찬 바람이 등줄기를 덮쳐 진저리를 쳤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놀라서 발걸음을 멈췄다. 점심시간인지라 보는 눈길이 많았다.

'고통의 연대'라는 팻말을 들고 강제로 젖이 쥐어짜이는 소의 사진을 높이 들었다. 미리 언론사에 알렸기에 금세 카메라가 터졌다. 홍순영은 당황했다. 모든 카메라가 자신의 젖가슴을 향하는 것 같았다. 그는 어젯밤에도, 조금 전 광화문 근처 여관에서 분장용 피를 바를 때도, 옷을 벗을 때도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지 않을까? 햇살 아래 내 가슴을 드러내도 될까? 이 영상이 유튜브에 떠돌텐데?"
 

홍순영은 '피로 물든 젖꼭지' 행동을 하려고 13명의 활동가와 함께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섰다. 사진 제공, 동물권 활동가 그룹 직접행동 DxE ⓒ DxE

 
겁이 났고 걱정이 가득했는데 카메라 세례을 받으니 더욱 움츠러들었다. 마침 "제품이 아니라 고통이다! 고통에 연대하라! 사랑으로 구조하라" 등의 구호가 터져 나왔다. 홍순영은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마음이 다소 진정되었다. 채 30분이나 되었을까? 어디선가 경찰이 나타나 홍순영과 활동가들의 젖가슴을 천으로 가렸다.

그와 동물권 활동가 그룹 직접행동 DxE(Direct Action Everywhere Korea)가 밸런타인데이에 행동한 것은 초콜릿과 같은 제품이 소의 젖을 원료로 하기 때문이었다.


소가 젖을 내려면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한다. 젖소는 강제로 임신당하고 끊임없이 젖이 짜이니 2년만 지나도 서 있을 힘조차 없어 앉은뱅이 소가 된다. 이들은 마지막에 햄버거 패티와 같은 가공육 소재가 되는데 자연수명의 1/10도 살지 못하는 셈이다.

홍순영은 젖꼭지가 피와 염증으로 문드러진 젖소들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망설임을 떨쳐내고 더 많은 존재와 연결하겠다는 마음으로 두려움을 이겨냈다.  

잊을 수 없는 <어스링스>의 충격

홍순영이 공장식 축산의 잔혹함을 알게 된 건 2019년 5월에 본 영화 <어스링스>(earthlings) 덕분이었다. 밤 11시경 방에서 유튜브를 띄웠을 때 놀라운 화면들이 펼쳐졌다.

암퇘지는 몸조차 돌릴 수 없는, 앉고 일어나는 것만이 허용된 감금틀에서 강제로 임신했다. 배설물이 가득한 바닥에서 돼지 새끼들은 버둥거리며 어미 젖에 매달렸다. 출산 능력이 떨어지면 도축장으로 끌려가고, 죽음을 감지해 버티면 전기봉으로 찔리며 들어갔다. 마지막은 부위별로 잘린 몸뚱이뿐.

닭도 마찬가지였다. 갓 부화된 수평아리들은 알에서 깨어 나오자마자 껍질과 함께 산채로 회전 톱날에 갈려 비료가 되었다. 산란용으로 선별된 암병아리는 키워진 후 사과박스 정도의 케이지에 서너 마리가 구겨진 채 살며 알을 낳았다.

비육용은 서로를 공격하지 못하게 부리가 잘렸다. 성장호르몬과 항생제로 갑자기 찐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닭들은 관절이 부러지거나 비틀거리면서 바닥에 널브러졌다. 똥오줌이 범벅인 사육장에서 깃털은 떨어져 나가 붉은 속살이 드러나고 발목은 짓물렀다.

<어스링스>가 고발한 공장식 축산 실태는 처참했다. 홍순영은 구토를 참아가며 힘들게 지켜봤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눈앞에는 끔찍한 장면이 떠다녔다. 
  

홍순영이 비질활동에 나가 도살장 앞에서 마주친 돼지에게 물을 주는 장면 홍순영은 어스링스를 보고 동물권활동가가 되었다. ⓒ 홍순영제공

 
고기를 끊겠어요

<어스링스>를 본 다음 날, 홍순영은 가족 앞에서 "고기를 먹지 않겠다"라고 선포했다.

"어쩌란 말이니, 우리가 외식을 자주하는 집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 식구가 둘러앉아 치킨 먹는 게 기쁨인데 네가 빠지면 어떡해."

엄마는 돼지고기를 썰어 넣은 김치찌개를 식탁에 내려놓으며 볼멘소리를 했다. 언니는 홍순영의 얘기를 듣고 여울이(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트럭에 갇힌 꿈을 꾸었다며 채식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홍순영은 집 냉장고를 점령했다. 아빠는 할 수 없이,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도 할 수 없이 육식을 멀리하게 되었다.

집안은 순조로웠지만 친구들은 달랐다. 홍순영의 호소나 제안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예전대로 삼겹살 집에서 모이자고 하고, 치킨을 먹자고 했다. 갈등이 조금씩 깊어졌다.

친구 : "동물보호도 제대로 안 하는데 동물권이 뭐야? 유럽도 미국도 안 하잖아."
홍순영 : "아니야, 캘리포니아에선 공장축산을 안 한다고 선언을 했어. 모피도 금지하고 거기 딸려 있는 버클리시는 아예 비건 도시를 하겠다고 나섰고."


때론 말싸움으로 번지고 감정이 상한 채로 헤어졌다. 홍순영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친구들이 야속했다. 때론 자기 생각이 너무 과격(?)한가 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애니멀세이브나 DxE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면서 홍순영은 힘을 얻었고 동물의 고통을 마주하는 비질 활동에 나서게 되었다.

동물권을 대변하는 정치가가 되겠어요
 

동물권 활동가 홍순영. 홍순영은 기본소득당 정책실에서 상근한다. ⓒ 민병래

 
홍순영은 2015년 성공회대학에 들어가 정치학을 전공했다. 3학년인 2017년 사회과학부 학생회장에 당선되어 학내 성평등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했다. 교외에선 '알바 노동자' 지원 활동을 했다. 그 자신이 학자금과 생활비 대출을 받았고 대학생 시절 꾸준히 알바를 한지라 알바노동자의 처지를 잘 알았다.

알바라는 이유로 주휴수당·야간수당을 떼이고 휴게시간과 연차휴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과 상담하고, 그들이 업주를 만날 때 함께 옆에 있었다. 수수방관하는 고용노동청에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다. 또 야간알바의 임금실태를 조사하고 당시에는 오천 원대였던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자는 운동을 기획하기도 했다.

홍순영은 학생 시절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 2월 기본소득당이 창당할 때 함께 했다. 전공을 살린(?) 결정이라고 스스로 칭찬하며. 무엇보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혁신 사상이 마음에 들었다.

토지는 누가 만든 게 아니라 본디 존재한 것인데, 누군가 독점하여 불평등을 낳고 현대판 계급구조를 만드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토지세를 매겨 기본소득재원으로 쓰는 게 '정의'라고 생각했다. 빅데이터세도 탄소세도 마찬가지였다.
 

기본소득당은 동물권은 한국정치에 제안했다. 홍순영이 이 기자회견을 주도했다 ⓒ 홍순영제공

 
홍순영은 당내 정책실에서 상근을 했다. 즐거웠다. 불편한 건 동물권에 대한 당내 공감대였다. 그는 삼겹살 집이나 양꼬치 집에서 이뤄지는 뒷풀이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의사 표시를 했다. 마침 뜻을 같이하는 당원이 있어 <고기로 태어나서>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같은 책을 홍보하며 당내에서 지지자를 모았다.

2020년 12월 홍순영은 서울기본소득당 동물권위원회를 만들고 2021년 11월 7일에는 당원 52명을 모아 기본소득당내 동물권·생태의제기구 '어스링스'를 띄웠다. 동물권은 시민운동영역을 넘어 정치와 법률로서 풀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홍순영은 20대 대통령선거에서 기본소득당이 우리나라 정당 최초로 '동물권' 공약을 내세우게끔 노력했다. 오준호 후보와 2022년 2월 21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동물과 자연의 정치적·법적 권리 보장 ▲축산동물 권리 보장과 같은 지구생명체들의 필수요구를 낭독했다. 홍순영과 기본소득당은 '동물권'을 '인권'과 같은 위치에 올리자고 제안한 것이다.

기본 소득당은 젊은 신생정당이다. 대표 신지혜도 30대이고 용혜인 국회의원도 30대 초반이다. 그렇기에 홍순영의 과격(?)한 제안을 대선 정책공약으로 채택하고 당의 주요 의제로 내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나라 밖에서는 도도한 흐름이었다.

뉴질랜드 환경법원은 마오리 족의 세계관을 판결문에 반영해 "나는 강이고 강은 나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우주의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된 친족이고 인간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며 인간은 그들 모두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마오리족의 가치관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는 모든 종의 상호의존성과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며 자연의 권리를 헌법과 법률로 명문화했다. 비인간동물도 인간처럼 지각 능력이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다종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지구에서 시민권을 지닌다는 선언이었다.

2022 지방선거에 출마합니다

2022년 6월 1일 지방선거에 27살 홍순영은 경상북도 도의회 비례대표로 출마한다. 17개 광역시도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를 낸다는 기본소득당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지역구는 아니어도 그로서는 2020년 기본소득당 가입 이래 첫 출마다.

지난 대선에서 청년이 큰 화제였다. 청년의 취업난, 주택난 등 여러 기회의 부족이 큰 이슈였다. 그런데 보수양당에서는 한결같이 청년을 정치나 정책의 대상으로 여겼다. 홍순영은 말한다. 청년은 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라고. MZ세대 청년정치인은 우리나라 문제, 인간종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의 모든 종이 안고 있는 고통에 눈을 돌릴 줄 안다고.

온난화에 따른 인류 대멸종이 임박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보인다. 탄소중립이 절실한데 공장식 축산이 배출하는 탄소가 온실가스의 10~20%를 차지하고 있다. 또 공장식 축산으로 역병이 되풀이되고 있다.

2010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구제역으로 81개 시·군에서 무려 353만 마리 이상의 소, 돼지가 죽임을 당했다. 해마다 조류독감과 아프리카 돼지열병에 몸살을 앓고 항생제와 백신이 더 많이 투여되는 악순환에 접어들었다.

코로나에 이어 어떤 인수공통감염병이 언제 또 세계를 덮쳐올지 모른다.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도 공장식 축산을 중단하고 동물에게 지구의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청년 홍순영의 활동명은 '냉수'다. 친구들이 이름을 '순영아'가 아닌 '수냉아'라고 부르는 것을, 거꾸로 부르는 '냉수'를 활동명으로 정했다. 냉수, 차가운 물이다. 홍순영은 비록 한 줌에 불과하더라도 기후위기를 식힐 수 있는 차가운 물이 되고자 한다. 인간종이 다른 동물종을 살육하는 거에 익숙해진 생각을 맑게 씻어내는 차가운 물이 되려 한다.

"경북은 지진, 태풍, 홍수, 산불 등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가 굉장히 큰 지역이고 기후위기로 인해서 그 양상이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경북에는 밀집된 핵발전소가 존재하고 차기 정부는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를 공약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경북은 기후위기와 에너지문제에 있어서 가장 희생되고 있는 지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수도권의 탄소배출, 에너지 사용에 지역이 착취되는 방식을 중단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또 청년들이 계속해서 자신이 살던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나답게 살 수 있도록 지역형 기본소득을 공약하고자 합니다.

더불어서 경북지역은 축산업, 어업이 발달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산업이 다른 생명체들의 착취에 기반한다는 점, 생태파괴와 기후위기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 또한 그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대규모 공장식 축산·어업에 대한 정의로운 전환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홍순영이 경북도의회 비례대표로 출마하면서 경북도민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다. 2022년 6월 1일 경상북도 도민은 청년 정치인 홍순영의 이런 진정성을 알아줄까?
  
<못다한 이야기>

① 비질(vigil)은 폭력의 증인이 되어 기억하고 기록하여 공유하는 활동이다. 주로 도살장이나 공장식 축산 농장, 수산 시장 등에 방문하여 폭력을 경험하는 동물들의 삶을 마주한다. 토론토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전 세계적인 애니멀 세이브 챕터가 비질 활동을 하고 있다. 

② 이 글에서 뉴질랜드와 다른 나라가 동물권과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 사례는 오마이뉴스 22년 3월 11일자 류제성의 글에서 인용했다.(http://omn.kr/1xr5b)

③ 지난 선거에서 동물보호 공약이 있었지만 주로 반려동물, 정확히는 반려동물 소유주의 표를 고려한 정책으로 '의료보험 적용' 정도에 머물렀다. 그런 접근이기에 반려동물 이면의 여러 문제는 외면되었다. 지자체마다 버려진 동물이 유기동물보호소에 넘쳐나고 안락사 되는 실정, 펫숍과 번식장이 산업화 되면서 강아지와 고양이가 공장식으로 생산되는 실태, 또 폐업하게 되면 그 안에 있던 동물들이 방치되어 죽음을 맞는 상황은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

④이 글은 전문은 a4 8매에 이르는 분량인데 여기선 축약본으로 게재했다. (이 글의 전문은 본 기자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pmsigni)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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